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월간 윤종신 4월호 '사는 재미'

월간 윤종신 4월호 '사는 재미' ⓒ 월간 윤종신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안 하고.

삶의 기준이 단지 '재미'였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아마도 그건 우리 어른들에겐 한참 지난 시절의 얘기일 것이다. 재미없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됐고, 이제는 재미를 찾는 게 어쩐지 해서는 안 될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내 삶이 그저 무탈하게 흘러가기만 하면 만족한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년일지라도 가끔은 삶의 따분함에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거울처럼 담은 노래가 나왔으니, 바로 '사는 재미'다. 월간 음악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 2023년 4월호의 곡이다. 윤종신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조정치가 편곡했다.

"어떻게 요즘 살고 있니" 하며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가사는 "난 딱히 재밌는 게 없네/ 매일 그 일이 그 일이고/ 하루가 다르게 막 바뀌는/ 세상 속에 그 뻔한 어른 되기"라는 자신의 근황 얘기로 이어진다. 그런데 자기 한탄 섞인 이 근황이란 게 뼛속까지 공감되는 건 물론이고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자기 점검을 하게 만든다. 
 
"꼭 재밌어야 하는 건 아니지/ 꼭 드라마틱할 필요도 없지/ 급변할 배짱은 더군다나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는/ 큰일이 안 생기길 바라는/ 드럽게 재미없는 날들"

'더럽게'도 아니고 '드럽게' 재미없다는 말에서 윤종신의 진심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드럽게' 재미없다고 매일 느끼면서도 막상 삶에 변화를 주는 건 주저된다. 급변할 배짱은 없기 때문이다.

급변에는 위험이 따른다. 1969년생으로 50대를 달리고 있는 윤종신 또래라면 이제껏 쌓아온 것들이 많을 나이고,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나와 내 가족이 가진 걸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말이 정말 옳구나 싶다. 이기고 있는 팀은 경기 종료를 몇 분 앞두고는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는 법이지 않은가.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이해는 되지만, 그럼에도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멍하니 알고리즘이/ 내게 권해주면 난 또 클릭하다 자"라는 구절에는 삶의 권태 속에서 허우적대는 화자의 각성이 들어있는 것 같다. '삶의 관성을 경험하고 있을 이 땅의 모든 50대에게 띄우는 윤종신의 연서'라는 짧은 소개 문구가 이 곡을 잘 말해주고 있다.

청춘이 단지 나이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 질문이 청춘인지 아닌지를 판별해줄 기준이 될 것 같다. "요즘 사는 거 재미있어?"라는 질문. 설렘과 흥분, 두근거림, 열정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물었을 때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한다면 애석하게도 청춘은 저 멀리 달아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윤종신은 이 노래를 통해 세상의 중년 친구들에게 말한다. 생계를 위한 일 말고 온전히 내 가슴이 뛰는 '딴짓'을 해도 우리 망하지 않는다고, 이제 다시 재미를 찾으며 그렇게 살아봐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넌 그냥 그렇게 흐를 거니/ 난 왠지 억울하고 분하다/ 내 남은 날이 예측되는 게

좀 불안한 게 그리 무섭나/ 난 지루한 게 더 무서운데/ 봤잖아 그때 그 선배들"

정곡을 찌르는 이 구절들을 보면서, 현상을 유지하는 데 온 정신을 모으는 게 멋진 삶의 방식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생활의 무게에 '지는' 삶이 아닐까. 이제라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기는 삶이란 오히려 조금 불안한 삶이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가사처럼, 남은 날이 예측되지 않아야 더 불안하고, 적당히 불안해야 우린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윤종신은 "우리 세대가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재미'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3, 4년 뒤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 더 재미있을지 고민하고, 앞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 발생하는 긴장을 기꺼이 껴안아 봤으면 좋겠다"라고 소개 글에 적기도 했다. 

"무리한 변화를 시도하자는 게 아니라 아주 미세하더라도 각도를 틀어보려는 것. 경험치를 믿고 주어진 선택지가 아닌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 무의미한 반복을 끊어냈을 때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기대감을 가져 보는 재미가 우리 세대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삶을 확신하기보다는 궁금해 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확신을 갈구하지만 과연 내 인생을 확신하는 게 좋은 걸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삶의 확실성은 인간을 권태에 빠뜨리기 쉬운 것 같다. 지금 사는 게 지루하다면 당신의 미래가 너무 불 보듯 빤하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뭐라도 설레는 걸 하자/ 수군대는 걔들은 신경 꺼/ 이런 얘길 나눌 수 있는 너와 나면/ 더 이상 누가 필요해

이젠 우린 뭔가 알잖아/ 우릴 떨리게 하는 것들/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를 수 있어/ 꽤 남은 우리 날들/ 건강해 친구야"

노래는 이렇게 끝이 난다. 누구든 이 곡의 마지막 가사까지 다 듣고 났을 땐 안정보다는 위험을, 반복보다는 시도를, 의무보다는 순간의 향유를 더 소중히 하는 마음을 얻었길 바라본다. 그렇다면 좀 더 사는 재미에 가까이 다가선 것일 테니.

뭐라도 해보자, 재밌을 거다. 그러나 두렵다면, 그럴 땐 소설가 헤밍웨이의 문장을 꽉 붙들어보자. 

"When you stop doing things for fun, you might as well be dead(재미를 위한 일을 멈춘다면, 당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윤종신 사는재미 월간윤종신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