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편에 이어 A.A모임에 참석하는 멤버들의 경험담과 회복 사례들을 들어보고자 한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과장된 게 아닐까 의구심을 품기도 하고, 다른 이는 알코올 중독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 시각이 다소 유연해지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모든 알코올 중독자들은 각각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환경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개인의 과거사를 일일이 다루는 것은 지면이 허락지 않을 뿐더러, 자칫 중독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어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주변에 알코올로 인해 힘들어 하는 이들이 있다면, 부디 편견을 버리고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신체적 질병의 개념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예년과는 달리 송년회 모임도 레크리에이션을 곁들인 행사 형태로 건전하게 진행했다. 1차 자리에서 40여명이 마신 술이 겨우 소주 열병뿐...
▲ 단주 후 송년회 모임 예년과는 달리 송년회 모임도 레크리에이션을 곁들인 행사 형태로 건전하게 진행했다. 1차 자리에서 40여명이 마신 술이 겨우 소주 열병뿐...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술 마시고 시비걸고, 파출소를 내 집처럼"

C선생님은 2년째 단주 중이다. 그동안 네 번의 입원 생활을 거쳤으며,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능력 있는 사업가였던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은 겨우 벌어먹고 삽니다만, 하룻밤 술값으로 몇백만 원씩 써댈 정도로 사업도 잘 나갔었지요. 특이하게도 제게는 부정적인 사고가 살아가는 힘이었습니다. 뭔가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매고, 늘 분노해 있으며, 항상 공격적인 상태였습니다.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술 마시고 시비 걸고, 파출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며칠 전, 석 달 동안 어렵사리 모은 20만 원을 옷 한 벌 사 입으라고 큰 딸에게 건넸다고 한다. 대학생이 된 딸의 눈물 섞인 고맙다는 말에 이게 사람 사는 맛이구나 느꼈다는 C 선생님. 그의 회복 과정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단주를 결심하고 초기에는 아내가 매우 불편해 했습니다. 술 취한 남편에게 화도 내고 성질을 부려야 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는데, 본인도 그런 상황에 익숙지 않았던거죠. 그러다 우울증까지 왔어요. 술 때문에 가족들까지 비정상적으로 성격이 변해 버린 겁니다. 술 끊기로 마음먹고 점을 본적이 있어요. 술 귀신이 씌어 푸닥거리를 해야 한다고 해요. 수백만 원 들여 굿을 했습니다. 소용 없었죠. 교회에도 3년 가량 착실히 나갔습니다. 하지만 절대자도 저의 오만과 교만함은 어쩌지 못하더군요."

단주를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그는 요즘 일부러 상갓집이나 동창회 등에 나간다고 한다. 주변의 반응은 극명하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단주에 대해 좋은 말 해 주고, 격려해 주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에, 술을 권하고, 시비걸고, 심지어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순간순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결국 예전에 자신이 했던 행동과 말을 돌려받는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한다.

하루는 모임에 나갔다가 관할 지역 파출소(지구대) 순경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동안 선생님 때문에 정말 애 많이 먹었는데, 술 끊기를 정말 잘하셨네요"라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휘두르고, 피해자들과 합의 보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의 마지막 말에는 힘들었던 그간의 단주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노름꾼들이 마누라 팔아먹는다고 하는데, 술꾼도 마찬가지예요. 술에 취하면 그때부터는 악마의 조종을 받습니다. 내 의지로는 조절이 불가능하죠. 술 끊고 지금까지는 내 안에 살아 있는 악마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아직 이겼다는 확신은 없어요. 다만, 평온함을 찾았습니다. 먹고 사는 건 전보다 힘들지만, 그래도 사는 재미가 있어요. 사람답게 사는 게 무언지 이제 느낍니다..."

"술 먹다가 죽고 싶어 여관방에 들어가기도"

D선생님은 모임에 나오는 멤버 중 가장 오랜 시간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자그마치 12년간을 병원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마지막 6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끝으로 A.A 모임에 나오면서 현재까지 단주 중이다.

"나는 술을 마실 때 잘못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술 마시고 크게 사고를 친 적도 없고, 후회한 적도 없어요. 남자가 술을 마시다 보면 작은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12년, 참 긴 시간입니다. 병원에 들락거리면서도 나는 아닐 거야,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절대 아니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몇 개월 병원에 있다가 나오면, 그깟 술쯤 쉽게 끊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술을 다시 입에 대는 순간부터 병원에 들어가기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퇴원부터 재입원까지의 기간이 점차 짧아져 갔다. 중간에 뇌출혈과 장출혈 등으로 생과 사의 기로에 섰던 적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치료가 마무리되면 다시 술을 찾았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술을 먹다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여관방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매일 술 마시고 깨고를 반복하던 14일째, 화장실에 기어가면서 하느님을 찾고 있더라구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리고는 마지막 입원을 했습니다. 혼자서 술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자살까지 생각하던 그의 중독상태에 한 줄기 빛으로 찾아든 것이 A.A 모임이다.

"퇴원을 열흘 앞두고 A.A 모임에 처음 나갔습니다. 중독자들끼리는 백일 작전이라고 표현합니다만, 백일 동안만 눈 딱 감고 모임에 나가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하루도 빠짐없이 6개월을 나갔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그저 알코올 중독자들끼리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에 안정을 찾고, 모임에 나가는 것으로 술자리를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지요."

그는 모임에서 가장 연배가 높다. 자조적인 말투로 내뱉는 한 마디 한마디에 연륜이 묻어난다. 3년 넘게 단주를 지키면서도 연신 캐러멜 껍질을 벗기고 있는 백발의 장년에게서 언뜻 아이의 동심이 묻어난다. 마음을 다스리는 평온함이 드러나는 얼굴 어디에도 예전에 자살을 시도했던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병뚜껑 돌려 술마시는 게임. 짧은 시간에 술 마시는 속도를 증가시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공포의 행위들이 술자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술마시기 게임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병뚜껑 돌려 술마시는 게임. 짧은 시간에 술 마시는 속도를 증가시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공포의 행위들이 술자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누누이 강조하지만 A.A 모임에 단주를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임에 나왔던 모든 중독자들이 회복의 길로 접어든 것도 아니다. 한 두 번 참석 이후 발길을 끊은 사람들도 허다하다. 모든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A.A모임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현재 단주를 시행하고, 회복중인 사람들이 단주를 지탱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이 바로 A.A 모임이다. 멤버 중 한 분의 이야기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술 때문에 직장도 잃고, 막상 집에만 있으면 할 일도 없고, 술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 모임은 내가 오는 유일한 곳입니다.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고 인정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서로의 단주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A.A모임입니다."


태그:#알코올중독자, #A.A모임, #단주모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