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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장소에 모임이 있을때만 걸리는 문패
▲ A.A단주모임 모임 장소에 모임이 있을때만 걸리는 문패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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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던 지난 15일, 원래 겨울은 깊어질수록 추워지기 마련인데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느니 하는 말들은 무슨 이유인지 조금 호들갑스러워 보인다. 그냥 '어제보다 좀 더 추운 날'이라든가 '평년 기온보다 약간 낮다'고 하면 될 것을…. 매스컴의 일기예보는 사람을 더 춥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여하튼 그런 추운 일요일에 가족들을 근처 미술관에 내려주고 세 번째 A.A 모임에 참석했다.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A.A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작에 앞서 A.A 모임의 가장 큰 전통인 '익명성'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A.A 모임은 철저한 익명성을 원칙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중매체나 언론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알코올중독자요'라고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한편으로 언론 홍보나 광고 등을 통해 모임의 프로그램이나 성공담 등을 알려 알코올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도 들지만, A.A모임은 참여하는 멤버들의 사생활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따라서 모임을 마칠 때, 오늘 들었던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의 마음 속에만 간직하기로 서로 간에 약속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지면을 빌려 A.A모임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모임의 취지와 성격 등을 있는 그대로 일반인들에게 소개해 문턱을 낮추고, 용기를 내도록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목적이 있지, 그 외의 개인적 욕심은 티끌만큼도 없음을 밝혀둔다(더불어 다음 글에는 A.A모임에 속한 알코올 중독자들의 단주 경험담과 회복 과정을 소개할 계획이다).

오후 3시 정각. 정해진 모임 시간이 되면 1초의 지체도 없이 대표봉사자(모임의 진행을 맡은 멤버를 대표봉사자라 하고, 운영과 관련된 다른 분들에게도 봉사자라는 칭호를 붙인다)가 모임의 시작을 알린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므로 "누가 안 왔으니 5분만 기다렸다 합시다" 따위의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모임은 크게 두 부분으로 진행되는데 전반부는 '12전통'과 '12단계'라는 A.A모임의 기본 원칙과 관련된 글귀와 책자를 나눠 읽으며, 후반부는 개인의 단주 경험담과 회복 과정 그리고 과거의 중독 상태 등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특징은 글을 읽을 순서가 되거나 개인의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안녕하십니까, 알코올 중독자 O입니다"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이다. 역시 익명이 중요하므로 성만 이야기한다. 나의 경우, "안녕하십니까, 알코올중독자 이입니다"라고 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으나, 모임에 참석을 거듭할수록 이런 소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모임에 나오는 유일한 기준인, 본인 스스로 알코올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 패배를 시인하라

시중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책자들인데, 새로운 멤버를 위해 어렵게 구해주신 애정과 관심에 감사드린다
▲ A.A 모임 책자들 시중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책자들인데, 새로운 멤버를 위해 어렵게 구해주신 애정과 관심에 감사드린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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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A.A 모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이나 타인의 손에 이끌려 혹은 병원에서 강제적으로 A.A 모임에 참가시킬 경우, 오래갈 수 없을 뿐더러, 단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단주의 첫걸음이자 성공 여부는 본인이 알코올 중독자임을 먼저 깨닫는 데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A.A 모임의 12단계에 잘 나타나 있다. A.A모임의 12단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A.A모임의 12단계에는 단주를 행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 단주 매뉴얼 혹은 지침서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중 몇 단계를 소개한다.

제1단계.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시인했다. 누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시인하기를 원하겠는가? 완전한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회복의 첫 단계다.

알코올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밑바닥을 경험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다. 이 단계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매우 용기있는 결정이다. 스스로 알코올에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은 단주를 위한 가장 결정적이며 중요한 마음가짐이라는 이야기다.

제4단계. 두려움 없이 우리 자신에 대한 도덕적 검토를 했다.

이는 극단적인 본능으로 인한 충동이 저지른 여러 가지 문제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제8단계. 우리가 해를 끼친 모든 사람의 명단을 만들어서 그들 모두에게 기꺼이 보상할 용의를 갖게 됐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며 소외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단계다. 여기서 보상이란 물질적인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알코올 중독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받은 정신적 피해까지 포함해 사과하고 용서를 받는 과정이다.

단계 하나 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며,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과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관용적으로 다듬고, 단주를 행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12단계의 지속적인 인식과 생활 방식으로의 실천을 통해 단주과정에서 겪는 흔들림을 이겨낸다. 각각의 단계에 대한 내용 설명들은 책자에 잘 정리돼 있다.

단주 모임이 60년 넘게 유지될 수 있는 비결

다음으로 멤버들이 함께 읽고 공유하는 내용은 '12전통'이다. 모임의 성격이나 원칙과도 같은 '12전통'에 대해서도 일부 알아보자.

제3전통. 술을 끊겠다는 열망이 A.A의 멤버가 되기 위한 유일한 전통이다.
제7전통. 모든 A.A그룹은 외부의 기부금을 사절하며, 전적으로 자립해 나가야 한다.
제11전통. A.A의 홍보 원칙은 적극적인 선전보다 A.A의 본래 매력에 기초를 둔다. 따라서 대중매체에서 익명을 지켜야 한다.

위와 같은 전통들은 1950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개최된 최초의 세계 단주 친목 모임에서 채택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전통들이다. 혹자는 전통이라는 것이 어떻게 법적인 힘을 전혀 가지지 않았는데도, 오랜 시간 효력을 발휘하며 멤버들의 동료애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것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모임에 참석하는 멤버들의 절실함과 자발성이 그 어떤 구속력보다 단단하게 그들을 결속시키기 때문이다. 지면 관계상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책자나 누리집(바로 가기)을 참조하길 바란다.

이 12단계와 12전통은 A.A모임의 큰 축을 이루며, 전 세계적으로 60년이 넘게 지속되게 한 원동력이다. 다만 그 압축된 문구 속에 숨겨진 내용들을 하나씩 음미해본 사람들만이 그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 책자는 시중에서 구매하기 어려우나, 한국 A.A 누리집을 통해서나 문의전화(02-774-3797)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연말연시 각종 술자리, 일단 '피하라'

술꾼은 술꾼들끼리 꽁꽁 묶어둔다
▲ 술자리 배치 술꾼은 술꾼들끼리 꽁꽁 묶어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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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의 여담은 술자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다. 술자리가 잦은 연말,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술을 덜 마시는 방법에서부터 술 취한 다음날 빨리 깨는 법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므로 한번씩 따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한 다양한 방법들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는 심정으로 두 달여간 나의 술자리 대처 노하우를 공개한다.

첫 번째, 술자리 모임은 가급적 피한다. 특히나 모임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연장자인 경우는 갖은 핑계를 다해서라도 피하는 게 좋다. 계시지도 않은 이종 고모 할머니의 상갓집 핑계라도 좋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음주문화 중 하나가 윗사람의 술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부 당한 윗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고약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잔은 받아야지!"라며 성질을 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나 평소에 친분이 별로 없다가 모임 때만 마주치는 연장자들이 권하는 술은 대략 난감하다. 그러므로 이런 모임은 무조건 피하고 본다.

두 번째, 술을 안 마시겠다고 결심했으면 확실한 명분을 내세워라. 어제 과음을 해서라거나, 다이어트 중이어서, 몸이 좀 안 좋아서 따위의 유약한 명분은 똥고집 진상들의 제물이 되기 쉽다. '지난 주에 내시경을 했는데, 용종이 몇 개 발견돼서 조직 검사 보냈어, 결과 나올 때까지는 좀 힘들겠어'라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미리 조제된 약봉투(병원 가서 소화 안된다고 하면 소화제 위주로 지어줌)를 술자리에서 꺼내 먹으며 '엊그제 위궤양이 도져서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왔다네…'라고 말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배를 문지른다거나 하는 식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 알코올 중독 증상이 심해져서 상담센터에 다닌다는 한마디로 술 권하는 이들 모두를 잠재웠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었나?"라고 물으며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속으로는 '니가 나보다 100배는 심각해 보이거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물잔을 들고는 손을 살짝 떨어 보인다. 그 액션 하나면 어지간한 주당들도 꼬리를 감추기 마련이다.

세 번째, 화장실에 최대한 자주 들락거려라.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회사 모임이나 송년 모임에는 대부분 전체 건배를 하게 마련이다. 모두들 잔을 높이 치켜세우는데, 미운 오리 새끼 마냥 탄산음료나, 물잔을 들었다가는 오히려 주당들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있다. 분위기를 잘 감지하고 있다가 전체 건배 분위기가 돌면 슬쩍 화장실을 가거나, 미리 부탁한 지인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뜬다. 괜히 어설프게 소주잔에 물 채우다 걸리면 괘씸죄까지 가중 처벌된다.

술자리에 가방 들고 간다고? 절대 그러지 마라

최대한 비주류(?)를 섭외하여 뭉쳐 앉으면 술을 덜 마실 수 있다
▲ 직원들과의 회식 최대한 비주류(?)를 섭외하여 뭉쳐 앉으면 술을 덜 마실 수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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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술자리에 갈 때는 최대한 짐 없이 혈혈단신으로 가고, 상의를 벗어야 할 때는 입구 가까이에 걸어둔다. 지갑이나 가방 따위는 모두 두고 회비만 날돈으로 주머니에 챙겨 간다. 술자리가 시작될 때 단주를 이해하는 척하던 사람들이 취기가 오르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할 때가 있다. "딱, 한 잔만!"이라고 들이미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과감히 악의 구렁텅이를 벗어나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럴 때 최대한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데, 가방 등의 소지품은 볼모가 되기 십상이다. 나 역시 회식 때 도망가는 직원들을 잡아두기 위해 대여섯 개의 가방을 짊어지고 노래방 소파 위를 날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후환이 두렵다는 생각은 버려도 좋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슬쩍 자취를 감춰도 다음날 기억을 못할 테니까.

마지막, 다섯 번째. 단주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임에 참석할 때는 술 대신 마실 음료를 챙겨라. 매실청이나 오미자청 등을 작은 물병에 챙겨가면 지긋지긋한 탄산음료와 이별할 수 있다. 여건이 여의치 않아 준비를 못하는 경우는 탄산음료 대신 차라리 물을 마시는 게 몸을 덜 망가뜨린다. 자리의 사람들이 좋아서, 2차, 3차 따라가다 보면 하루 저녁에 콜라나 사이다 서너 병은 후딱이다. 다음날, '술도 안 마셨는데 나는 왜 속이 더부룩할까?' 고민 끝에 찾은 원인은 바로 탄산 음료였다.

이상으로 지난 두 달간 단주를 시행하며 술자리에서 터득한 시답지 않은 노하우 몇 개를 적어 봤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날개를 접었거들랑 한시라도 빨리 털고 날아올라라. 무엇보다 술자리에 대처하는 우리의 궁극적 자세는 바로, 술자리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하루빨리 깨닫는 것이다.


태그:#12단계와 12전통, #A.A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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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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