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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 대표님 강의 후 뒤풀이 자리. 치명적 유혹이었다.
▲ 첫 번째 유혹 오연호 대표님 강의 후 뒤풀이 자리. 치명적 유혹이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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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상담센터 두 번째 방문일. 술기운이 남은 상태에서 쭈뼛거리며 들어서던 첫날과 달리 오늘의 발걸음은 위풍당당하기까지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있던 술자리에서 알코올의 유혹을 물리치고 사이다 한 병으로 꿋꿋이 버텨냈던 것이다.

그 술자리의 성격에 비추어 보건대,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어제의 술자리는 다름 아닌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님과의 술자리였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대구에 특강을 오셨는데, 강의 후 뒤풀이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운전을 핑계로 술잔을 피하긴 했지만 속사정은 눈치 못 채셨을 게다. 내심 대표님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또 참았다.

상담이 시작되며,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어제의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 생각보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술을 끊겠다는 생각이나 술자리에서 술을 참겠다는 생각들은 단주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입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술을 원하는 중독적 성향이 발현되는 것이지요. 그걸 억지로 억누르는 것이기 때문에 버텨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당분간은 술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내 안의 못된 욕망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두 번째 상담의 시작은 지난주에 받은 숙제 검사로 시작했다.

술을 끊고 한 달 후와 1년 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첫째, 한 달 후의 내 모습은 뱃살이 3인치 빠진 '11자' 복근의 꽃중년이다. <뱃살 빼기 한 달 프로젝트>라는 책을 구입하고 사나흘씩, 도전에 재도전을 거듭했지만, 술과 함께 뒹군 다음 날 아침이면 술과 안주로 부풀어 오른 뱃살을 부여잡고 일어나기조차 버거웠다. 지금은 소파 밑에서 동전 몇 개와 뒹굴고 있을 책, 내 너를 부활시켜 줄 것이야! 

둘째, 1년 후의 나의 모습. 나의 인생 후반의 꿈은 희곡작가 및 연출가이다. 어찌 보면 술을 끊는 결심에 있어 인생 2막을 충실히 살아보고자 하는 미래의 꿈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1년 후에는 술 끊고 얻은 자유로운 시간 동안 희곡을 한 편 쓰는 계획을 세웠다.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를 소중한 지면상에 쓰는 이유는 이러한 목표와 꿈이 단주를 실천함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술에 대한 생각의 자리를 기쁨과 재미를 주는 다른 것으로 채우십시오. 중독적 성향을 가진 무언가가 좋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이나 마약 같은 대체 중독은 곤란합니다. 그 무언가는 재미와 건강을 동시에 주어서 도파민 분비를 원활하게 해주는 것일수록 좋습니다."

인생에서 남은 시간, 여러분들의 꿈은 무엇인가? 허황되고 추상적인 꿈이 아니라면 술 마시고, 술 깨고, 술 때문에 무기력하게 흘려보낸 시간을 투자한다면 어느 정도 그 꿈에 접근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주의 시작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정도의 가슴 설레는 무엇과 술을 통째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라고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말은 쉽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을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다.

술 한 잔 안 하면 폭발할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알코올의존자의 술에 대한 끌림은 나비가 꿀을 찾는 것처럼 본인의 의지로 거부하기 어렵다
▲ 나비가 꿀을 원하듯 알코올의존자의 술에 대한 끌림은 나비가 꿀을 찾는 것처럼 본인의 의지로 거부하기 어렵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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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검사가 끝나고, 지난 한 주간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 '술을 마시면 무엇이 좋아집니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글쎄, 술 마시면 일단 정신줄 놓게 기분이 들뜨고, 세상 두려울 것 없이 용감해지고, 그리고….

좀 진지 모드로 변경하여, 난 사실 소심한 편이라서 평상시 싫은 소리를 잘 못 꺼내는 편이다. 상대가 들으면 언짢아할 내용이나 불쾌한 대화는 대부분 침과 함께 꿀꺽 삼킨다. 그런 꽁생원이 술이 한 잔 들어가서 취기가 거나해지면 간이 자가증식을 일으킨다. 독설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어쩌면 술의 힘을 빌려 본심을 말했던 것이 술과 나의 돈독함을 유지했던 비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랬던 해방구가 사라졌다. 지난 일주일간 평소보다 예민해지거나 난폭해지지는 않았던가? 전문용어로 그러한 행위를 '마른 주정'이라고 한단다. 술을 꾸준히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경우, 도파민 공급원이 차단됨과 동시에 스트레스가 내부적으로 쌓이면서 화낼 일이 아닌데도 화를 내고, 신경이 매우 예민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을 스쳐가는 술 한 잔의 간절함.

그렇다면 이렇게 하늘이 노랗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지 않으면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은 때, 예를 들자면 심판의 개입으로 다 이긴 게임에서 3% 차이로 승패가 뒤집힐 때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감정을 다스릴 것인가?

전문가의 조언은 이러했다. '갈망일기를 써라'. 갈망이란 술을 간절히 원하는 정도이다. 이 갈망이 사라지는 상태,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술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금주가 성공할 수 있는 길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1년이 지나든 2년이 지나든 갈망 상태를 느낀다면 그것은 여전히 알코올 의존의 위험군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현재 상태가 초절정 갈망 상태인지, 간헐적 갈망 상태인지 아니면 드디어 갈망 상태를 벗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가장 정확한 방법은 본인 스스로가 그러한 갈망을 느낄 때, 혹은 마른 주정을 행할 때마다 그것들을 솔직하게, 상세하게 기록해두는 것이다. 처음에는 5분 간격으로 알코올의 환영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면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점차 갈망을 느끼는 빈도수가 줄어들 것이다. 마른 주정은 또 어떠한가? 3분 간격으로 화를 내던 헐크 같은 인간이 점차 알코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온순하게 길들여질 것이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는 길목에는 여러 사람들과 많은 프로그램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서 퇴장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인 것이다. 자신과의 뚜렷한 약속, 결심을 지키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바탕으로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헤쳐 나가는 것만이 바로 알코올 의존과 남용이라는 늪에서 탈출하는 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술에 대한 갈망을 느낄 때마다 '갈망일기'를 써라

진정 풍류를 안다면 소주를 즐길 것이다
▲ 주당의 술, 소주 진정 풍류를 안다면 소주를 즐길 것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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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교장 선생님 훈화스럽게 흘러간 감이 있다. 어서 빨리 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글 분위기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몇 가지 예시를 통해 '주당'과 '풍류'의 차이를 견주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안주의 가치에 대해서. 주당은 안주에 개의치 않는다. 술이 있는데 그깟 안주가 대수 인가? 술배와 밥배가 따로 있는 것은 하수의 범주이며, 주당에게 내장은 한결로 통한다, 오로지 술배. 그러므로 주당과 술을 마실 때 안주를 고르라고 메뉴판을 들이미는 것은 주도가에서는 일종의 결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풍류는? 당연히 안주의 질을 중요시 여긴다. 그에게 있어 안주는 단순히 술과의 오랜 인연으로 인해 억지로 끌려나오는 부속품이 아니다.

막걸리에 두부김치, 동동주에 파전, 소주에 곱창, 양주에 과일… 이딴 식의 무성의하고 지조 없는 술과 안주의 조합을, 풍류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풍류에게 있어 안주의 가치는 다음 잔을 위한 보위의 개념이자 세정의 개념으로, 위를 보호하지 않고 무작정 마셔대다 초장에 실려가는 어리석은 이들에 대한 경멸의 의미와 혀끝에서 천천히 알코올의 달쌈한 맛을 음미하지 않고 목구멍으로 바로 처넣다가 화장실로 달려가는 무지한 종족들에 대한 측은의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삼아 그러한 풍류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최고의 안주는 번데기다. 막걸리, 소주, 맥주, 양주, 전통주에 고량주까지 그 어떤 술과도 조화를 이루며, 특유의 고단백으로 위를 보호해 내고, 독특한 식감으로 직전에 마신 술의 알코올 맛을 가시게 해줄 뿐더러, 가격 또한 부담 없으니, 예부터 기본안주로 번데기를 내놓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마음 씀씀이를 다시 한번 새겨볼 대목이다.

두 번째, 술의 종류에 대해서. 주당은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소주를 마시다가 맥주도 마시고, 애초에 섞어 마시고, 그러다 막걸리에 양주까지. 앞에 펼쳐진 알코올의 향연에 그 어떤 거부감 없이 동화된다. 그냥 쉽게 말하면 닥치는 대로 퍼붓는다.

하지만 풍류는 다르다. 그가 즐겨 마시는 술은 소주다. 소주 이외의 술은 단호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인생의 씁쓸함이 소주에는 진하게 배어나오기 때문에, 잔 너머의 세상을 투명하게 비추는 그 고결함 때문에, 한 입에 털어넣을 수 있는 그 단호함 때문에,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그 저렴함 때문에, 풍류는 소주를 즐겨 마신다.

물론 그에게도 특별한 날이 없을 리 없다. 어쩌다 예상치 못한 수입이 생기거나, 그의 생활 신조인 '뿜빠이'가 아닌 물주를 만난 날이거나, 각종 경조사에서 주류를 무한정 제공받을 때와 같은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도 가끔 외도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풍류에게 있어서 하나의 스쳐가는 바람일 뿐, 본질이 흐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확고한 철학이 존재하니까. 술은 싸야 한다는.

음주의 고수 '주당'과 '풍류'는 어떻게 다른가

풍류의 술자리는 점잖게 흐른다
▲ 풍류의 술자리 풍류의 술자리는 점잖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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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술자리의 분위기에 대해서. 주당은 왁자지껄 소란스런 분위기를 좋아하고, 그런 분위기라면 체면, 염치 불구하고 바로 휩쓸린다. 그러다가 결국 분위기를 주도하고, 종국에 가서는 진상 짓으로 분위기를 파토내는 역할까지 1인 3역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물론 십수 년에 걸친 주당의 내공은 그런 자리 하나 정도 파한다 하여 그 수명에 위협을 받지는 않을 뿐더러, 어차피 주당의 분위기에 휩쓸린 소인배들이라면 그 다음 날 기억을 못할 것이 뻔하므로 그러한 술자리는 며칠 지나 또 다시 반복되게 마련이다. 여하튼 주당의 술자리 분위기는 호탕하고 때론 음탕하며, 때때로는 방탕하다.

그 반면에, 당연히 풍류 주변의 술자리 분위기는 고요에 가깝다. 그에게 주변의 떠들썩함은 이미 관심 대상이 아니며, 오로지 앞에 놓여진 술잔을 비워내고 채우고 다시 비우는 것만이 그의 존재감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행여나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 감정이 개입되어 술맛이라도 떨어지는 날은 풍류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다.

풍류는 자주 오지 않는 술과의 만남 자리에 최대한 집중할 뿐이며, 그 외의 어떤 가치도 용납하지 않는다. 같이 간 일행들 간에 말싸움이 벌어지고, 술상이 엎어지고, 주먹다짐이 오가는 순간 속에서도, 묵묵히 남겨진 반병의 뚜껑을 잠그는 정신, 그 반병을 챙김과 동시에 마른 안주 한 주먹을 아무도 모르게 안주머니에 찔러 넣는 그 필살기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른 풍류의 진정한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주당과 풍류는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 양식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지만, 이는 오랜 술자리의 경험을 통해 감각적으로 발달한 고수의 시각에서 분류된 패턴일 뿐,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 술을 즐기는 민초들의 눈에는 다 똑같은 놈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본인 역시 주당과 풍류 사이를 오고가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기간이 존재하였으며, 풍류의 경지에 오른 지금 돌이켜보면 주당은 오래 할 짓은 아닌 듯싶다.


태그:#알콜상담센터, #갈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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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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