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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탄산음료로 버티던 사람이 먼저 위암에 걸렸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전해진다.
▲ 술자리 버티기 술자리에서 탄산음료로 버티던 사람이 먼저 위암에 걸렸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전해진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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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상담센터에 다닌 지 2주가 지났다. 그 2주는 참으로 긴 시간이어서 내게 좌절과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단주에 실패했다. 한 달간의 금주가 소주 몇 잔에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과연 무엇이 아킬레스건이었을까? 위기는 단주 시작 3주 만에 찾아왔다. 알코올에 대한 갈망의 욕구가 점차 높아지면서, 무력감과 우울함이 찾아 온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다. 그때의 상황을 갈망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힘없어 보인다는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가 내 무의식을 타고 들어가 어느 순간 뇌구조 전체를 지배했는지 사실 의욕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 담배는 늘었지만 술 생각이 간절하지는 않다. 알코올의 과다 섭취로 인해 쪼그라든 뇌는 원상복귀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원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뇌가 현저히 컸으므로 지금부터 단주하면 정상인의 뇌와 비슷해지리라. 하지만 단주로 인해 뇌의 위축은 중단되었을지 모르나, 마음이 쪼그라들어 소심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주 3주차에 접어들며,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토이의 노래 가사처럼 "예전만큼 웃질 않고 좀 야위었"다는 표현이 딱이다. 책 읽는 것도 시큰둥, 원래 소질 없던 운동은 아예 관심 밖, 식욕도 떨어지고, 도대체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화라도 버럭 내면 좀 시원해질까 생각해보지만, 사실 그럴 이유도 기운도 대상도 없다.

그러던 차에, 서너 달에 한 번 만나는 작은 모임이 있었다. 멤버 전원이 나보다 연장자인데다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기운에 이끌려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신에 퍼지는 알코올의 기운은 쓰나미처럼 모든 세포와 신경들을 휩쓸어버렸고, 주인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 저항하는 단 한 명의 우국지사 없이 단칼에 함락되고 만 것이다.

사실 마실 땐 그저 그랬다. "술아, 너 본 지 오래다" 하던 이몽룡 같은 반가움도 없었다. 감개무량하거나 희열에 들떠 술잔을 연거푸 들이킨 건 더더욱 아니다. 그저 형식적인 건배에 따라 몇 잔 주고받음으로써 그날의 일탈은 끝을 맺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의식 속으로 쑥물처럼 번지고 점차 죄의식에 사로잡혀 견딜 수가 없었다. 후회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변명하고, 다시 후회하고, 이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다가 드디어 상담 예약 날짜가 되었다. 평소처럼 차 한 잔 건네며 안부를 묻는 선생님의 자상함. 고해성사의 심정으로 단주 실패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선생님의 반응은 생각보다 무덤덤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처음 1주, 그리고 한 달, 그 후 석 달간이 고비라고 말씀드렸지요? 한 달, 쉽지 않은 시간이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련이자 고비입니다. 여기서 포기하고 주저앉는냐,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느냐의 차이인 거죠. 술 끊고 하시려던 일들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운동으로 뱃살 빼기, 과연 술만큼 즐거운 일일까요? 술자리를 피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말고, 술을 피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고민하세요."

"술을 피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세요"

그렇게 마신 술은 달거나 기쁘지 않았다.
▲ 금주의 실패 그렇게 마신 술은 달거나 기쁘지 않았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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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해주신 말씀이 저 유명한 매슬로우 박사의 욕구 5단계에 관한 이야기다(인문 사회학 개론에 대부분 등장하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분석한 이론). 그 이론에 따르면 음주에 대한 갈망은 제1단계인 생리적 욕구의 수준인 것이다. 반면에 술을 끊고자 하는 단계는 5단계인 자아실현의 단계로 그 차원이 현격하게 다른 수준인 것이다. 중간의 2, 3, 4단계의 욕구가 일정 부분 해결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으로써의 금주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술을 갈망하는 1단계의 생리적 욕구는 받아들이기는 쉽고, 거부하기는 어려운 본능적인 단계이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일에 만족을 느끼는 단계인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술을 끊음으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5단계의 욕구는 포기하기는 쉽고, 성취하기는 어려운 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으면, 대부분 중간에서 포기하기 마련이다. 나는 현재 어느 단계의 욕구까지 충족되었는가? 단주를 단순하게 술을 참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현재 어떤 단계의 욕구에 도달했는가'부터 냉정하게 분석해볼 일이다.

자신이 술을 끊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만큼의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가? 예를 들어 3단계인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거나, 가족 해체의 위기 등에 있는 사람에게 금주는 관심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알코올이 원인이 되어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술을 끊으려 하는 분명하고 명확한 목적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하며, 그 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길 때 금주는 비로소 출발의 경적을 울리는 것입니다. 금주와 관련된 여러 가지 도움의 말들이나 약물 치료 등도 자신이 금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때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갑니다."

그랬다. 제 발로 술을 끊겠다며 알코올상담센터를 찾아간 이유를 나는 잊고 있었다. 남은 인생의 절반을 또다시 술독에 빠져 살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금주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다. 시련이며 고비이자 시험일 뿐이다. 금주는 하나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 자체니까. 통 크게 양보하여 한 달에 한 번씩 금주에 실패하면 또 어떤가? 그래봤자 1년에 열두 번 술 마시는 것 아닌가? 한창 때 2주일간 마시던 횟수다. 다시 시작하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선생님의 권유로 일별 감정지수를 체크해보기로 했다. 우울한 기분, 무력감, 알코올 갈망에 대한 그날그날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해보면 자신의 감정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 마인드 컨트롤이 우선이다. 나를 다스리고, 타이르고, 나에게 기쁜 일을 만들어주자. 다시 한번 상기하라, 금주는 술을 끊는 것이 아니고, 술 대신 더 행복한 것을 얻는 것이라는 것을.

한 달에 한 번씩 실패하면 어떤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날 그날의 행복지수, 무력감지수, 알코올 갈망지수 등을 수치화해 적어보면 감정의 흐름이 한눈에 보인다.
▲ 일별 감정지수 체크표 그날 그날의 행복지수, 무력감지수, 알코올 갈망지수 등을 수치화해 적어보면 감정의 흐름이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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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담은 이른바 '빠돌이'의 심리에 관한 글이다. "도저히 술자리를 피할 수가 없었어요"라는 구차한 변명을 달갑지 않아 하는 원조 술꾼들. 사회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자리를 가져야 하는 필수과목 수강자들과 달리, 귀가는 제쳐두고 '바(bar)'에 앉아 잔을 홀짝거리는 선택과목 수강자들. 필시 이들은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이다.

누가 이들을 담배 연기 자욱한 어두운 공간으로 내모는가? 대부분 제 발로 찾아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혼자 술을 마시기 위해 바를 찾는가? 지난 경험에 의거,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바를 찾는 사람들의 목적 중 50% 이상은 바텐더에게 작업을 걸기 위함이다. 이른바 '늑대형 빠돌이'. 어느 바에 어떤 바텐더가 수려한 용모를 자랑한다더라, 이런 소문은 발 없는 말보다 빠르다. 굳이 소문이 아니더라도 우연히 들른 바에서 '꽂히는' 상대를 만나면 그 사람은 그 다음 날부터 출근부 도장을 찍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비싼 양주를 한 병 시켜서 조금씩 나눠 마신다. 일단 킵을 해야 다음에 올 명분도 쌓이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여 물질적 인력의 법칙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은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대리운전비조차 빠듯한 사람들의 허세가 작렬하는 것이다.

'바'를 찾는 빠돌이들 중 절반 이상은 '늑대형 빠돌이'

진열된 양주병은 빠돌이들의 허황된 꿈과 욕망을 대변한다
▲ 어느 동네 바 진열된 양주병은 빠돌이들의 허황된 꿈과 욕망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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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부류.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하고 술 마시는 것이 귀찮은 게다. 대부분 1차에서 접대를 마치고 술이 좀 모자란 사람이거나, 하루 종일 대인 관계에 시달린 '영맨'들이 포함된다. 사람 마주 대하기 지긋지긋하고 옆에서 말 시키는 것이 귀찮지만, 그렇다고 놀이터 미끄럼틀이나 그네에 걸터앉아 술 마시기는 사회적 위치가 용납되기 어려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고독형 빠돌이'가 된다. 맥주 한 모금에 담배 한 모금, 그 연기에 인생을 실어 멀리 날려보내고만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용필의 노래 가사처럼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고 애쓰느냐"고 묻는 건 대단한 결례다. 대부분 간단히 한두 잔 정도로 고독을 달래고 쓸쓸히 퇴장하지만, 냅킨에 신청곡을 적으며 늑대형으로 돌변하려는 부류들도 가끔 존재한다.

세 번째는 왕따형 빠돌이다. 지난 시간에 설명했던 진상들 중 한 명인데, 술 마시다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진 경우다. '뭐지? 이제 삘(feel) 받았는데, 다 어디 간 거야?' 이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를 찾는 경우다. 이 부류들은 이미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이므로 첫 등장부터 흐트러져 있으며, 매우 호전적이므로 이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자칫 당신이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부류들의 절반 가량은 술값 가지고 실랑이 하다가 쫓겨나듯 퇴장하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어디다 그렇게 전화를 해대는지 일행이 있는 사람처럼 떠들다가 마누라 전화 받고 끌려가듯 떠나가고, 그 나머지는 엎어져 자다가 실려간다. 아마 대부분은 바에 들른 기억조차 없을 것이다. 가장 슬프고, 역동적이며, 뒷맛이 씁쓸한 빠돌이 형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외로운 존재의 사람들로 '고독형 빠돌이'의 반대적 개념이다. 일명 기러기형 빠돌이. 실제적으로 외롭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도 있지만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경우도 있다. 그저 누군가가 마주 앉아 이야기 받아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절대 과음하지 않으며 적당히 마시고 자리를 뜰 줄 안다. 간혹 팁을 남기기도 하는 매너 있는 부류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외로움을 이용하는 '기러기의 탈을 쓴 늑대'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품격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점차 증가 추세에 있는 부류다. 왠지 허전하고 춥다.

이상으로 네 가지 부류의 빠돌이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외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이는 곳이 아마 '바'라는 장소일 것이다. 지난 회에 언급한 진상들과 마찬가지로 위의 네 가지 유형은 사실, 내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다중인격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고 산 적이 있다, 소싯적에 내가. 이제와 솔직히 인정하고 표현해보는 것은, 새로운 우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저렇게 살고 싶나? 에휴~.

아무렇게나 찢겨져 나간 메모장에 적힌 광석이형의 노래 제목이 더 슬퍼보인다
▲ 신청곡 아무렇게나 찢겨져 나간 메모장에 적힌 광석이형의 노래 제목이 더 슬퍼보인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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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매슬로우, #욕구 5단계, #어느 째즈 바, #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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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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