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열린 브라질-독일간의 2002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어 '브라질 우승'의 주역이 된 호나우두가 첫 골을 넣은 뒤 기뻐하며 내달리고 있다. 호나우두 뒤로 볼을 잡았다가 놓쳐 호나우두에거 한 골을 내준 독일팀 골키퍼 칸이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연합뉴스독일 하만의 발끝에서 볼을 빼앗는 순간부터 히바우두의 멋진 속임 동작까지 브라질의 기술은 독일을 물리치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우승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승전, 그것도 후반전이었다.

후반전에 들어선 독일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독일이 얻은 두 번의 결정적인 기회 앞에는 브라질 우승의 숨은 공로자인 골키퍼 마르쿠스가 있었다. 올리버 칸에게 '야신상'이 돌아갔지만 마르쿠스가 없었다면 브라질의 우승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특히, 4분만에 얻어낸 35미터 가량의 프리킥을 노이빌레가 위력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날렸지만 마르쿠스의 손끝을 스치고 골포스트를 때렸다. 후반 38분경 클로제 대신 들어온 비어호프는 골문에서 불과 7~8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번개같은 오른발 터닝슈팅을 날렸지만 이것도 마르쿠스의 왼쪽 다이빙에 무산되고 말았다.

브라질의 골 장면들과 독일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고만 봐도 진정한 스트라이커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 수 있었다.

부진했지만 그래도 믿을 건 너밖에

터키의 귀네스 감독도 준결승전까지 올라온 과정에서 속이 오죽 탔으랴. 말할 수 없이 부진했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던 스트라이커 하칸 수쿠르. 아무리 한국 수비의 실수가 뒷받침되었다지만 그의 발끝에서 1골 2도움이 터져나왔다. 거기에 특급 조커이자 파트너인 일한 만시즈 그리고 하산 사슈까지. 터키가 왜 3위에 오를 수 있었는가를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다섯 골을 머리로만 넣은 독일의 클로제는 1라운드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스트라이커다. 얀커가 파트너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너무 나빴다.

특히, 경기 전체를 읽는 눈이나 상대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브라질 수비수 앞에서 독일의 유일한 스트라이커는 잔뜩 주눅들어 있었다. 더구나 곁에서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하던 미하엘 발락은 한국의 이천수에게 백태클한 죄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스트라이커는 그 자리가 최전방이건 미드필더의 위치건간에 상대 수비수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여야 한다. 터키의 하산 사슈가 그랬고 브라질의 호나우딩유, 히바우두가 그랬다. 결국 대부분의 골은 그들의 발끝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호나우두는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최고다. 여덟 골이라는 대기록도 그렇지만 이번 대회 일곱 경기를 통해 골문 안쪽으로 날린 그의 슈팅 기록은 모두 21차례다. 이중 8골을 성공시켰으니까 글자 그대로 '스트라이커'의 존재 가치를 새삼 알린 것이다. 그의 발을 떠난 볼이 골문 안으로 향했을 때 두세 번 중 한 번은 반드시 골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가 결승전에서 터뜨린 두번째 골 장면은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감아차기는 볼이 어느 정도 뜨게 마련이다. 하지만 호나우두의 오른발 끝을 떠난 볼은 빠르기도 했지만 잔디 위로 깔려 휘어져 나가며 올리버 칸의 '한 손 방어'를 무위로 만들었다.

호나우두와 선의의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던 히바우두의 결승전 몸놀림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의 골 장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것은 바로 그다. 젖어 있는 잔디 위에서 날린 위력적인 왼발 인스텝 슈팅은 철옹성이라 여겨졌던 올리버 칸의 가슴에서 뛰쳐나왔고, 끌레베르손의 빠른 패스를 멋진 속임 동작으로 연결해 완승을 이끌어냈다.

잘 키운 호나우두 열 베컴 안 부럽다?

'지단-피구-베컴-베론-토띠'

이번 대회 4강전에는 이들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현대 축구의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야말로 미드필더 전성 시대다. 사실 몸값이라는 것도 스트라이커보다는 이런 (공격형) 미드필더들에게 더 쏟아붓는다고 하니까 말이다.

축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이런 선수들을 예로 들며 현대 축구는 미드필더가 득세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옳은 지적이다. 오프사이드 함정을 기본적으로 파면서 밀고 올라오는 수비 라인과 최전방 공격 라인이 형성하는 약 40~50미터의 공간에 20명의 선수들이 몰려다니는 것이 현대 축구의 한 단면이다.

어찌 보면 이런 축구는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축구에서 미드필더의 비중은 더할 나위없이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극단적으로 미드필더라는 구분이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승한 브라질에는 저 유명한 미드필더 대열에 선뜻 이름을 올릴 만한 선수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있다고 본다. '호나우딩유'나 '끌레베르손' 정도가 거기에 버금갈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챔피언 브라질'에는 이들 미드필더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스트라이커가 있었다. 적어도 이번 대회 결과를 놓고 볼 때, '잘 키운 호나우두 열 베컴 안 부럽다'라는 말이 통용될 만하다. 스트라이커의 진가가 유감 없이 발휘된 결과다.

현대 축구의 흐름이 미드필더 쪽에 비중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술(개인기)'과 그 기술을 화려하게 선보이는 '스트라이커'의 존재 가치는 무한하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 역사에 있어 '기술과 스트라이커'가 '축구의 법칙'에 중심 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한 두 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시대, 기술만 강조하는 시대는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한 명'과 그 '기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팀내 득점이 골고루 분포된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결과다. 하지만 결과만 보고 그 사실을 과대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쁜 결과는 결코 아니지만 그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고 본다.

우리 한국팀의 골 결과가 이번 대회에 그런 식으로 나왔다. 총 8골이 터졌지만 혼자서 두 골을 넣은 것은 안정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여섯 명-황선홍, 유상철, 박지성, 설기현, 이을용, 송종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영광이었다.

역대 월드컵에서의 한국 득점도 대체적으로 이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창선 선수의 월드컵 사상 첫 득점부터 유상철 선수의 지난 대회 마지막 득점까지.

진정한 스트라이커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먼 이야기일까? 늘 동점골을 염원하며 연거푸 날리는 결정적인 슈팅에 마음을 졸여야할까?

찾아서 기르자. 보다 큰 물에 풀어놓고 키우자. 23명의 그늘에 가려 울분을 삼켰던 이동국 선수, 그리고 김은중 선수. 여기에 유럽의 유명 프로팀에 입단이 확정적인 차두리 선수까지.

이 스트라이커들이 2006년 뭰헨 스타디움의 영웅으로 태어나는 순간을 기다리자. 붉은 유니폼 호랑이 문양 위에도 빛나는 별★ 하나를 달아보자.
2002-07-01 00:51ⓒ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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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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