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우승후보 이탈리아, 스페인과 연거푸 연장전까지 가는 체력전을 펼치며 투혼을 발휘해야 했던 태극전사들. 어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선 몇몇 주전선수들의 교체투입이라는 히딩크식 엇박자 용병술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 선수들은 기진해 있었으며 이전의 투지와 기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야신상을 놓고 이운재와 올리버 칸의 불꽃 튀는 수문장 대결이 관심을 모으면서 한국의 선축으로 킥오프된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4강전은 시작되자마자 체력전의 양상을 띠었고 한국의 최후 수비수로 나선 홍명보는 명성과는 달리 번번히 상대의 기습적인 공간침투를 허용하는 실망스런 플레이로 일관했다.

최진철과 김태영이 노장 투혼을 발휘하며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던 우리 수비라인은 독일의 긴패스와 고공 플레이에 쉽게 무너지면서 전반 16분 노이빌레에게 기습적인 1:1 슛을 허용하며 불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시아 최고의 파워 미드필드라고 외신들이 다투어 극찬하던 김남일이 부상으로 빠진 중앙 미드필드에 유상철과 박지성이 나섰으나 게르만군단의 파워 넘치는 고공 공격을 맞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평균신장 185cm의 위력적인 전차군단의 고공 공세 앞에 슈퍼체력을 앞세운 한국의 투지와 깡다구도 위력을 잃었다.

체력전을 대비하여 선발 기용된 이천수와 차두리의 발끝은 무디었으며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했다. 무작정 뛰기만 할 뿐 상대의 골문을 압박하고 위협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했다. 축구는 발로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쓰며 쉴새 없이 상대를 교란하고 공격하여 11명의 투혼이 합해져 마침내 골을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들은 잊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천금 같은 기회는 있었다. 후반 26분 중앙선 근처에서 얻은 공을 이천수가 드리볼하여 상대 골지역에 이르렀을 때 오른쪽 문전은 텅 비어 있었으며 안정환이 상대 골키퍼와 1:1로 맞서 있었다. 그러나 이천수는 완벽한 찬스의 동료선수에게 공을 주지 않았고 지나치게 개인 위주의 플레이를 하다 상대 수비수에 걸려 넘어졌다. 프리킥을 얻었으나 상대 골문을 위협하는 강력한 슛을 하지는 못했다. 이천수가 찬 공은 상대 수비수 몸을 맞고 골라인 바깥으로 나가고 말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결정적인 득점기회를 살리지 못한 한국에겐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4분 뒤인 후반 30분 상대 노이빌레에게 좌측 측면돌파를 허용하였고 그의 땅볼 패스를 받은 독일의 중앙 미드필더 발락에게 결국 실점을 하며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후반들어 히딩크는 안정환과 이민성 그리고 후반 34분 홍명보를 빼고 설기현을 교체 투입하며 사력을 다하여 득점 기회를 노렸으나 이미 체력에 한계를 드러낸 태극전사들은 경기내내 상대의 파상공세를 막기에도 힘이 부쳤다. 경기 끝나기 직전 박지성이 또 다시 꿈같은 동점 드라마를 연출하는가 싶었지만 그의 오른발 슛은 골포스트를 훨씬 벗어나 하늘로 치솟으며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4승1무1패. 아쉬움은 남지만 지난 1년 우리 태극전사들의 진한 눈물과 땀방울 그리고 히딩크의 `파워프로그램`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실로 48년만에 꿈같은 월드컵 4강신화를 일궈내며 그동안 이기는데 목말라왔던 우리 민족의 응어리진 한과 설움을 여름하늘에 훠이훠이 날려보낼 수 있었다.

지난 4일 폴란드전 이후 경기마다 수백만이 거리응원전을 펼치며 대이변과 파란에 5천만이 흥분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던 한일월드컵-잊기도 어렵고 잊혀지지도 않을 감동적인 민족 대합창이었으며 대감격이었다. `한국축구, 더이상 변방이 아니다`라는 어느 시인의 찬사와 함께 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맘껏 만끽하며 5천만이 함께 승리의 잔에 입맞춤 하자!

코리아여 영원하라!
2002-06-26 04:0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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