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축구팀의 신기에 가까운 승전보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미 히딩크 감독은 국가적인 영웅으로 격상되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사생활로 욕을 먹고, 훈련 방식과 전술에 대한 비판을 듣던 '이방인' 히딩크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충무공 동상 옆에 나란히 동상이 세워질 구국 영웅으로서의 '히동구'가 가히 숭배의 대상으로 부상한 것이다. 히딩크가 월드컵 뒤 한국을 떠날 것을 염려한 때문인지 인터넷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떠도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히딩크를 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귀화를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시킨다'는 표현부터가 어딘가 심상치 않다. 장난이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이 얘기를 비중있게 거듭 다루는 언론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무슨 일만 있으면 당사자와 관계없이 귀화 운운하는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히딩크 귀화 주장은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설사 농담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우스개소리를 하는 심정에는 분명 일종의 '이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이념'은 다름아닌 민족주의다. 그것도 아주 독특한 형태의 이중적인 민족주의 말이다. 한국인들이 한국 국적을 고귀한 특권 혹은 영광으로 여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좋다. 스스로 한국인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얘기도 되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매우 이중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히딩크에 대해 귀화하도록 하라는 여론을 상기해 보자. 한국 국적을 영광으로 여기고 히딩크에게 강권할 수는 있다. 그런데 한국 국적만 소중하고 네덜란드 국적은 헌신짝처럼 버려도 된다는 얘기인가? 한국 국적이 무슨 천국 시민권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히딩크 본인의 의사와는 조금도 상관없이, 인터뷰에서까지 귀화 의사를 묻는 망신스런 광경이 벌어진다. 한국인들이 국적을 얼마나 신주단지처럼 여기는지는 귀화한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본래 국적을 버리고 한국을 택한 외국인들을 '기특'하게 여긴다. 물론 이것 역시 그럴 수 있다. 우리의 소속 국가를 기쁘게 여겨서 국적을 취득했으니, 그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것도 김소월이 문제로 출제될 만큼 어려운 귀화 시험을 통과한 외국인들이니 더욱 기특하게 여겨질런지 모른다. 반대로 한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하는가? 우리는 이전에 박세리 '미국 시민권' 사건 당시를 기억한다. 박세리가 미국 국적을 실제 얻은 것도 아니고, 언론의 부풀리기 측면이 강했는데도 그녀를 비난하는 여론이 드높았다. 참기 힘든 인신 공격도 폭주했다. 외국 국적 버리고 한국을 택하는 이들과, 한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을 택하는 이들 간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한국인의 습성은 외국인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극단적일 만큼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외국인, 한국 사람의 정을 잊지 않겠다는 외국인에 대해 베푸는 따뜻한 눈길과 관심은 물론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외국인이 조금이라도 한국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는 게 한국인이다. 박노자 교수를 떠올려 보자. 박 교수는 분명 귀화한 한국인이다. 그는 외부인의 시각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런 박 교수에게 돌아오는 비난은 '러시아인' 내지는 '그렇게 좋으면 너희 나라로 가라', 그것도 아니면 '네가 뭘 알아?' 따위의 저질스런 폭언 뿐이다. 그들 앞에, 분명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는 푸른 눈의 '어린' 러시아인일 뿐이다. 이상한 민족주의의 발동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놈의 민족주의는 '신토불이'를 표방하는 극도의 자부심과 함께 가엾은 사대주의와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한국인임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는 동시에, 서양에 대한 열등감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월드컵 경기에서 실력으로 이겨놓고도 외국 언론이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글로벌 에티켓' 운운하며 외국인의 눈에 잘 보일 수 있는 비법들을 훈육한다. 외국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우리가 이만큼 잘 한 것을 인정해 줄까를 지나치게 고민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서도 히딩크더러 '한국에서는 한국 방식을 따르라'고 충고했다는 것이다. 히딩크의 주가가 치솟은 요즘에는 오히려 히딩크의 국제적 방식을 따라하자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으니, '이 민족주의'는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의 낯빛이 다른 '두 얼굴의 민족주의'인 모양이다. 서양이 부럽지만 그래도 우리가 최고다, 라는 식의 이중적 민족주의. 대체 이것은 어디에서 발현하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이 원인이라 하겠다. 한국인들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혈통이 순수하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반만년 역사동안 타 민족과 피가 섞이는 일 없이, 국가 간판만 바꿔 가며 한 민족이 유지되어 왔다는 관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래 학계의 연구 결과를 보면,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이미 '고조선' 시절부터 타 민족과 교류하며 다른 피를 섞었다. 사실은 위만 조선을 한국계로 봐야 할지 중국계로 봐야 할지조차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설사 단일민족이라 하더라도 큰 상징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종간 분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다인종 국가이며 피가 어디서부터 섞였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혈통의 어울림이 있었다. 게다가 자랑스런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에는 인종 분쟁 대신에 '지역 감정'이란 괴물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 괴물이 국민 통합 같은 가치를 게걸스레 먹어 치우지 않던가. 이런 단일민족의 환상은 극도의 파시즘(이인화, 조갑제 식의 정복자로서의 파시즘)으로 변형되거나 앞서 언급한 이중적 민족주의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중적 민족주의에 대해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한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식민지 경험을 함으로, 민족주의적인 '탈근대 국가'를 설립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왕정에서 입헌 군주제, 그리고 민주주의로 단계적 발전을 거칠 기회도 얻기 전에 식민 통치가 있었고, 이어서 미국 신탁 통치, 그리고 매국노와 친미 세력이 중심이 된 국가가 수립되었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민족적인 열등감(무슨 일만 있으면 '한국은 이래서 안돼..'라고 자조하는 형태)과 함께 묻지마 민족주의(별다른 근거 없이 한국인의 우수성, 한국적인 것의 우월을 강변하는 형태)를 지니게 된 큰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더 풀어 말하면, 근대와 탈근대가 중첩되는 특이한 사회구조 덕분에 '개화 이후'의 사고방식과 개화 이전의 사고방식이 공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히딩크의 귀화를 너무도 쉽게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여론을 보는 기분은 몹시도 착잡하다. 한국은 아직도 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짙은 피부색의 외국인과 흰 피부 히딩크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아함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떻게든 한국을 떠나려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현실까지 떠올리면 더욱더. 이 변태적인 '민족주의'의 함정. 극도의 민족주의가 파시즘으로 변신하는 과거의 선례를 떠올린다면, 단순히 '대~한민국'을 외치기 이전에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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