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데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뭐지 저 눈빛은?

[유기견 입양기 ⑥] 다시 찾은 행복, 그리고 또 고민

등록 2013.07.13 09:45수정 2013.07.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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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가을 산책 후 꿀잠,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 박혜림


3일을 기다렸다. 흥분이 가라앉기를. 3일 전이었다면 이 지면은 모두 "가을아, 고마워!"로 채워졌을 것이다.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심장사상충 치료를 한 지 어느새 3개월이 지나 재검사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하지말까 싶기도 했고, 혹여나 죽지않은 성충이 있어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다시 겪으면 어쩌나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 안 좋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빨리 치료를 하는 게 맞다 판단했다.

목에서 혈관을 찾아 피를 뽑고 검사 키트에 떨어뜨려 반응을 확인하기까지 약 20분의 시간동안 내 피가 다 말라버리는 줄 알았다. 안절부절,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의사 선생님은 떨리는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그래도 좀 얌전히 기다리라며 의연한 가을이를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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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사 키트 왼쪽 위 파란 작은 동그라미의 뜻은 '심장사상충 따위 없음!' ⓒ 박혜림


잠시 후 "보호자 들어오세요"라는 의미심장한 호출에 달려가니 외국어가 잔뜩 쓰인 키트의 설명서를 펴놓고 선생님은 일장연설을 하신다. 총 다섯 개의 반점이 나타날 수 있으며, 여기가 정상이고, 이것과 이것은 피부병이며 이것이 위험한 것인데 운운... 결론은, 가을이가 완쾌했다는 것! 아아 두괄식으로 설명하시지 선생님도 참, 극적인 결말을 위해 서론을 늘이는 이런 개구쟁이 같으니!

블록버스터급 흥분에 나는 그만 총각 수의사 선생님을 껴안을 뻔 한 건 당연히 아니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가을이를 얼싸안고 병원을 튀어나왔다. 이제 마음껏 산책해도 되고 다양한 사료를 섭렵해도 되고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이리도 가볍다.


우리는 가까운 공원에 가서 축하 잔치를 벌였다. 케이크에 초를 꼽고 폭죽을 쏘는 건 당연히 아니고, 동네 고양이들에게 인사와 자랑을 늘어놓는 우리식으로. 안녕, 길냥이들아 아침은 해결했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마렴, 가을이는 이제 아프지 않단다! 오오 옆집 강아지야 너도 산책 나왔구나, 그만 짖으렴, 이제 친해질 때도 됐잖니? 통실통실한 가을이의 뒷모습에 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늘따라 가을이의 응가는 유난히 황금색이고 혀도 건강한 분홍빛을 띤다. 지금껏 심적, 물적으로 응원, 성원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렇게만, 이렇게만 살자, 가을아.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어찌 좋은 얘기만 하며 살 수 있겠나. 어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나.

나는 최근 이사 결심을 굳혔고, 현재 본격 추진 중이다. 가을이가 오기 전, 혼자 그럭저럭 지낼 땐 이만큼 절실하지 않았지만 새식구가 생기니 내 가치관에도 변화가 왔다. 단순히 근처에 공원이 없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지금껏 가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무수히 들어온 비난과 질책 때문이다.

희귀한 찬사를 듣기도 한 가을이지만 사실 가을이를 향한 열에 다섯의 반응은 마뜩잖았다. 먼저 밝히자면, 가을이는 맹세코 세상에 해악을 끼친 게 없다. 흔한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일삼는 배변 미처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 가을이는 아스팔트가 아닌 폭신한 흙바닥을 찾아 배설을 하고 그 즉시 내가 뒤처리를 한다. 겁이 많은 가을이가 짖거나 사납게 군 적도 없고 물건을 파손하는 경우는 상상도 못한다. 가서는 안 될 곳에 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너 저 어른들께 방귀 뀌었어?"
...가을의 눈빛은 결백하다.

그러면 왜 그럴까? 왜 우리동네의 많은 어르신들은 '개 데려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시는 걸까. 난 이 문제로 엄청 골똘히 생각했다. 동물과 친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의중을 묻기도 했다.

지구엔 태생적으로 인간 아닌 생명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있고, 후천적 영향으로 동물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안 좋은 기억이 있어 기피하게 된 경우, 스스로의 삶이 버거워 다른 존재를 살필 여력이 없는 경우도 있다. 허나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사유지도 아닌데 어찌 자신의 기호만으로 타인(견)의 보행을 막으려 하느냐 하는 점이다.

가을과 나는 그저 묵묵히 자리를 피해왔지만, 다양한 어르신들로부터의 유사한 경험이 누적되니 서운한 감정이 일어났다. 개는 재수가 없나요? 개는 더러운 동물인가요? 안 좋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개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보는 그분들의 표정은 이미 한껏 찌푸려져 있기에 차마 묻지는 못하고, 종로에 와 눈을 흘겼다(동년배 지인들에게 한풀이를 했다). 그리고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겐 단속을 가했다. 서로 욕먹게 하지 맙시다. 좋은 인상을 남겨 서서히 문화를 바꿔봅시다. 그 와중에 내 개가 밉보일까봐 눈에 띄는 응가는 모조리 치운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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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비옷 가을의 짧은 다리가 돋보이려는 찰나이다. ⓒ 박혜림


그리하여 가을과 나는 조금은 반려동물에게 너그러운 동네로 이사를 하려고 한다. 그곳이라고 또 다른 난관이 없을 리는 없지만, 이곳에서의 좋은 추억만을 간직한 채, 새로운 환경에서 가을과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 우선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애완견 사절' 조항은 없는지 살펴야겠지만.

가을은 오늘 선물 받은 우비를 입고 빗속을 걸으며 산책을 즐겼다.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곳은 피해 멀리멀리 다녀왔다. 그리고 보송보송하게 목욕을 하고 맛있는 간식을 먹고 곯아떨어졌다. 숨소리조차 달콤하다.

아무래도 이번 글의 마무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겠다.

"가을아, 고마워!"   
#가을이 #심장사상충 완치 #입양 #강아지 산책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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