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갇혀 지낸 아이 또 가두라고?

[유기견 입양기②] 애처로운 눈빛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등록 2013.04.06 14:28수정 2013.04.0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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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 심장사상충을 확인하는 신기한 물건 ⓒ 박혜림


가을이는 두 번째 피검사에서도 심장사상충 양성 판정을 받았다.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그 작은 '키트'라는 발명품에 피를 한 방울 떨어트려 무시무시한 기생충의 존속 여부를 확인하다니 너무 초현실적이지 않은가. 맞다, 내가 무식하다. 난 소리나 영상을 어떻게 물질 안에 저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의심과 걱정을 안고 산다.


소장님의 권유로 보호소 전속인 안성 소재의 병원으로 가을이를 데려갔다. 세 번째 키트에서도 양성이 나왔다. 이젠 믿고 치료하는 수밖에 없다. 병원에 데려간 김에 절뚝이는 뒷다리 상담도 했다. 가을이는 엑스레이를 찍는 게 고통스러운지 자꾸만 움직였다. 다시, 또다시. 잠꼬대 말고는 소리도 내지 않는 가을이가 '끄응' 한다. 아픈가 보다. "선생님, 가을이 다리가 아픈가 봐요." 그때부터 울음이 터졌다.

사진으로 본 가을이의 골격은 좋지 않지만, 당장 손을 써야 하는 상태는 아니니 우선 사상충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을이는 24시간 간격으로 척수 주사를 맞는다. 주사 전에 혈전용해제를, 고통과 위험이 따르는 만큼 진통제도 맞을 것이다. 아무리 씩씩한 아이도 '꺄울' 하고 운다는 그 주사. 차마 못 보고 병원을 나왔다.

달리기도 금지, 간식도 금지, 흥분도 금지...

가을이가 입원한 이틀의 시간은 온통 어둠. 하루에 두 번씩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곁에 없는 가을이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나의 무능력함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왜 그 멀고 낯선 병원에 가을이를 혼자 뒀나. 왜 입양하자마자 검사하지 않았나. 건강한 가을이에게 왜 그런 병이 걸렸나. 혹시 오진이면 어쩌나. 주사 맞을 때 옆에 있어줄 걸.'

그중 제일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왜 가을이를 이제야 데려왔나'였다.

"한 달은 케이지에 가두세요. 그동안 매일 처방약을 먹입니다. 그 후 석 달은 집안에서만 활동합니다. 한 달 한 번 예방약을 먹입니다. 그 후 6개월까지는 산책할 때 목줄은 필수, 달리기는 금지입니다. 정해준 사료와 통조림만 먹이세요. 일체 간식은 금합니다. 흥분해도 안 됩니다."

10년을 갇혀 살았는데, 입양 오고 채 두 달도 뛰어놀지 못했는데, 다시 가두라니... 예후가 좋으려면 주사를 맞은 후의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강한 주사약으로 사상충은 이미 죽었지만, 사체가 혈관을 이리 타고 저리 다니다 어느 기관에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은 '즉사'라고 했다.

가을이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꾹 참잖아. 한여름도 실내에서 견디라고? 얘는 나이도 많고, 개의 수명은... 고민은 자꾸 제자리에서 겉돈다. 누가 신에게 메시지라도 좀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투병 지켜보는 이의 마음, 이제야 이해합니다

집에 돌아와 연신 잠만 자던 가을이가 배시시 일어나 처음으로 입에 뽀뽀를 해줬다. 단 한 번. 역시 그녀는 밀당녀. 입맛이 도는지 가을이는 밥도 싹싹 먹었다. 그런데... 아뿔싸, 새로 사온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6개월이나 지났다. 벽에 머리를 찧고 싶다. 병원에서는 미안하다며 다시 보내주겠다고 한다. 큰 탈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 다행히 설사나 구토는 없었다. 그러나 안 그래도 쇠약해져 있는 애한테 방부제 덩어리 엉터리 음식을 먹인 것 같아 열불이 났다.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나. 나는 심장사상충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총 다섯 군데의 병원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검색한 결과, 치료의 과정과 처방약은 거의 같았다. 하지만 지역별로 비용이 두 배 이상 차이 났고, 퇴원 후 활동의 제한은 백이면 백 모두 달랐다. 그것들을 종합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나는 '그래야만 했다.'

▲ 산책 : '6개월 까지 절대 안정을 취하라'와 '살살 걷는 정도는 괜찮다'의 간극. 평균치를 내보니 한 달까진 실내에서 극조심. 4개월까지는 나가더라도 주의 요망.
▲ 밥 : '전용 사료'라는 건 없지만 심장에 좋고 소화가 잘 되는 영양식은 있다. 단, 간식은 고단백인 경우가 많으므로 심장에 무리가 올 수 있으니 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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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눈빛 끊임 없이 묻는다. "왜요?" ⓒ 박혜림


정답은 없다. 병원에서 겁을 주려고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며 내 귀에 달콤한 말을 해준다고 최고의 병원도 아니다. 가을이와 내가 최대한 조심하며 지내는 게 최선이다. 치료해준 의사 선생님을 믿고 따라야 마음이 편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가을이의 '삶의 질'을 생각하라는 조언도 깊이 와 닿았다. 한 사람이 투병 중이라면 가까운 사람들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갈 것이다. 이제야 감히 헤아려 본다.

중심을 잡고 나니 이젠 가을이의 애처로운 눈빛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왜 묶여있나요?" 밥을 먹고 나면 "산책 가요!" 응가를 누이고 나면 "나 달리면 안돼요?" 집에 들어오면 "왜 벌써 끝나요?" 외출 준비를 하면 "날 두고 나가요?" 외출에서 돌아오면 "이제 산책 가요?" 가을아! 이게 다 네 몸속의 벌레 때문이야! 미안해! 안 돼! 그만!

밤비야, 너 가을이 문병 오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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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초 후 이젠 각자의 길로...그동안 즐거웠다 ⓒ 박혜림


폭폭한 이야기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된다. 잠시 즐거운 추억을 하나 더듬고 가자. 가을이는 입원 전, 친구 '밤비'(한 방 친구였던 '아름이'의 새 이름)와 소풍을 다녀왔다. 그냥 소풍이 아니었다. 출소 동기와의 전격 상봉이었던 셈이다. 얼마나 감동적일까. 벌써부터 이모들은 지구 상에 한 번 이상은 있을 법한 일이라며 기대를 모았다. 왁왁 떠들어대는 수백 마리의 강아지들 속에 오붓하게 붙어있던 밤비와 가을. 다시 만나면 눈물을 흘릴까. 얼싸안을지도 몰라! 

하지만 상봉의 감격은 '2초' 만에 결론 났다. '너냐?' 냄새만 맡고 제 갈 길이다. 딱 2초.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밤비는 엄마 찾아 총총. 가을은 숲 탐색하느라 킁킁. 손에 손을 붙잡고 의기투합하며 모인 인간들은 그저 허허로운 입맛만 다시며 녀석들의 목줄을 잡아끌었다.

풀냄새 실컷 맡고 간식으로 배를 채우니 가을과 밤비의 심리가 이해됐다. 이 아이들은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와서인지 다른 개들을 피한다. 아무리 살가운 친구를 만나도 겁내거나 질색하는 표정이다. 그러니 서로의 존재에 거부감 없이 두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밤비와 가을이가 친한 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밤비야, 2초라도 좋으니 가을이 문병 오지 않을래?
#가을 #심장사상충 #밤비 #치료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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