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아픈 아이랍니다

[유기견 입양기③] 투병중인 가을이에게 선물한 유모차

등록 2013.04.26 09:52수정 2013.04.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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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자가용 앞 발을 올린 채 여유부리고 있다 ⓒ 박혜림


가을이는 요즘 제 이름이 '호강'인 줄 알 거다. 하루 두 번 바람 쐬러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아이고, 호강하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땡칠아!", "개똥아!" 하고 멋대로 이름 짓는 분도 있다.


내가 아무리 동물을 좋아한다지만 자기네 반려동물 너무 자랑해대면 재미없다. 어르신들 모임에서도 손자 칭찬 늘어놓으면 벌금낸다고 하지 않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이겠지만 지나친 유별은 보기 불편하다. 염색한 강아지, 배낭 멘 강아지, 안경 쓴 강아지… 유모차도 그 중 하나였다. 강아지가 유모차에 앉아있고 사람이 뒤에서 미는 모습이란, 달리기 좋아하는 애를 왜 가둬뒀나 의혹이 들었단 말이다. 그런 내가 유모차를 사다니….

이건 모두 '심장사상충'이란 몹쓸 기생충 때문이다. 가을이도 나만큼이나 유모차는 꼴사납다고 생각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라, 이 세상에서 나들이를 제일 좋아하는 가을이를 집안에만 두는 게 얼마나 큰 고역이겠는가.

초반엔 가을이를 안아서 데려나갔다. 쉬를 누이고 꽃도 보여주고. 하지만 6.2kg인 가을이는 운동을 못해서인지 점차 무거워졌고, 것도 모자라 익숙한 곳에 내려놓으면 응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눈치 챘구나. 배변과 동시에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조금 더 새롭고 한층 더 낯선 환경을 원한다. '그럼 그냥 집에 두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병원에 입원한 3일간 응가를 참고 차에서도 두 시간 넘게 내색 없이 쉬를 참던 아이에게 그럴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을 안고 돌아다니는 데에 한계가 올지니….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도 결려오더니 어느 날 아침엔 내 목이 깁스를 한 것 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참, 사람 잡겠네.

투병중인 가을이를 위해 유모차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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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가을 콧등에 벚꽃잎이 앉았다 ⓒ 박혜림


인터넷에는 이미 강아지 유모차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특히 노견에겐 필수. 백내장이나 관절염이 온 개라고 산책을 싫어할 리 없을 테고, 지켜보는 가족은 또 얼마나 안타깝겠나. 가을이처럼 '산책금지령'을 받은 투병중인 개들도 마찬가지. 어차피 몇 개월은 무리하면 안 되니까 유모차를 타고 안전하게 나가자. 가장 저렴한 것으로 주문했다.

짧고 통통한 다리로 숲을 헤치는 능력을 타고난 가을이답게 유모차 첫 탑승은 보기 좋게 실패였다. 뛰지 말라고 간곡히 애원을 해도 가볍게 유모차에서 날아올라 바닥으로 안착한다. 아, 이래서 목줄이 유모차 바닥에 연결되어있군! 최대한 짧게 가을이의 목걸이와 연결하니 가을은 몇 번 시도해보다 알아차렸다. 탈출은 단념하자.

사람은 상상만으로도 쉽게 아는 게 있는가하면 꼭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우리 동네의 땅은 정말 울퉁불퉁했다!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가파른 언덕과 비뚤어진 연석들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이제야 짐작이 갔다. 심지어 보통 신발을 신은 채로는 느껴지지도 않을 1cm정도의 엇갈림이나 틈새도 바퀴를 끌고 지나가니 연신 걸림돌이었다.

계단은 또 어떤가. 어느 상점에 들어가려다가도 계단 때문에 포기하고, 지하철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구를 찾아 먼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직장에 다니던 지인이, 매끄러운 길을 찾아다니는 그 시간이 매우 굴욕적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도 택시도 어려움이 컸겠구나.

가을이는 이렇게라도 바깥 구경을 하니 호강이 맞긴 하겠지만, 턱에 걸려 자꾸만 가을이 몸이 앞으로 쏠릴 땐 "미안해"를 연발했다. 그동안 무심하게 살아서 죄송한 마음도 함께.

약도 잘 먹고, 애교는 늘었고, 잠도 잘 자는 가을이

가을이는 습득이 빠른 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목걸이가 아닌 유모차 앞에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젠 속도를 내 달려도 바람을 느끼는 여유를 부린다. 며칠 전부터는 한 쪽 발을 유모차 가장자리에 올려놓고 세상을 굽어본다. 내가 잠시 숨고르기라도 할라치면 뒤돌아 보며 채근하는 눈빛이다. "벌써 지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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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탑승 첫날 얼굴에 써있다. "무서워!" ⓒ 박혜림

가을이에게 가장 상냥한 상대는 어린이들이다. 보호소 봉사자들에게야 예쁜 식구였겠지만, 입양 이후 어느 곳에 가도 외모 칭찬은 아끼더라. "순하네" "영리하네" 정도가 어른들의 극찬이라면 아이들은 다르다. 멀리서부터 달려오면서 "귀엽다!"고 외친다. 얘들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유모차를 타고는 다정한 인사가 더욱 인색해졌다. "아파요? 개가 얌전하네?"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미간엔 주름이 깊다. 입언저리도 비틀린다. 무슨 말을 삼키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차근히 설명을 하면 그제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물어보시면 얼마든지 대답하겠습니다. 무엇에든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진리를 나도 배워가고 있는 참이다.

바람이 차가워도 유모차를 끌고 걷다보면 땀이 맺히곤 한다. 이러다 덜컥 여름이 와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나보다는 가을이가 더 답답할 텐데. 가을이는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신 덕에 여타의 후유증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의사선생님은 치료 중 2, 3주차에 큰 탈이 나는 경우도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라지만, 현재까지 가을이는 괜찮다. 밥은 예전보다 더 잘 먹고(비싼 사료 덕일까), 약도 잘 먹고, 애교는 늘었고, 잠도 잘 잔다. 하도 곤히 자서 숨 쉬는 여부를 자주 확인하긴 한다.

심장사상충은 1~5기까지 나뉘는데 가을이는 숨차거나 지쳐하는 증상이 없으니 1~2기 일 것이다. 그간의 눈물 바람, 마음 고생은 접어두고, 늦지 않게 발견하여 조치를 취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가을 #강아지유모차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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