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부르는 강아지, 여기 있습니다

[유기견 입양기⑤] 가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등록 2013.06.13 09:46수정 2013.06.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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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분의 개, 미니 감사의 뜻으로 친구를 초대했으나...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 박혜림


5층에 사는 선화(가명) 언니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언니도 나들이를 좋아하는지 산책 나온 가을이와 자주 마주치곤 하는데, 그날은 마침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서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언니는 그저 의아한 눈빛만 보낼 뿐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우연히 편의점에서 만났다.


"언니, 또 만났네요."
"응! 잘 지냈어?"

언니는 하루 만에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아주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줬다. 그렇게 가을이와 나는 언니와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언니는 '딸 보러간다'고도 하고 '오빠의 기념일'이라며 발걸음을 재촉하는가 하면,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서 있기도 한다. 어떤 날은 들고 있던 비닐봉투에서 뭔가를 한 움큼 집어 주기에 얼떨결에 받고 보니 낱개로 포장된 땅콩차였다. 다음에 마주쳤을 때는 내가 가방에 있던 초콜릿 빵을 줬다. 내가 하도 스스럼없이 '언니'라 불러서인지 언니는 나를 '올케'라고 부른다.

그러던 언니가 어느 비 오는 저녁, 바람 쐬러나온 가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너도 상처가 됐을 텐데, 미안해."

어? 언니가 가을이의 사연을 아나?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또 언니는…. "너도 힘들었지? 괜찮아"라며 안아줬다. 나는 겨우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웃었다. 언니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무리겠지만 확실한 건 '이건 참 괜찮은 그리고 고귀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가을이 건강 걱정하던 소장님, 건강하셔야 해요

보호소에서 자그마한 소장님이 커다란 개를 안고 있다. ⓒ 이진희


자그마한 소장님이 커다란 개를 안고 종종 걸어가는 모습은 무지 귀엽다. '유기견 보호소'의 '소장'이란 분은 어떤 사람일까? 봉사활동을 처음 갈 때 사람들은 한 번쯤 떠올려 볼 것 같다. 어떤 개들이 어떤 환경에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그 큰일을 대체 어떤 분이 맡고 있는지도 못 견디게 알고 싶은 것 중에 하나다.

그리곤 한 번 더 놀란다. 생각보다 젊고 생각보다 작은 소장님을 보고 말이다. 유기견·유기묘들은 하루가 멀게 늘어나고, 그 중 대다수가 아프고 굶주린 상태다. 그리고 개들은 먹은 즉시 배변을 한다. 치워도 끝이 없고 안아주느라 어깨가 빠질 지경이다. 자기들끼리 울타리를 넘나들다 유혈사태가 생기는 경우를 막기 위해 못질·톱질도 해야 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수도에서 펄펄 끓는 물이 나와 아이들은 사료에 손도 대지 않고 넋이 나가 있다. 후원물품이 들어와도 봉사자가 뜸한 평일에는 골고루 나눠주기에도 힘이 부친다. 그 많은 일을 당신의 온 삶을 바쳐 일하시는 소장님을 뵈면 얼마나 황송한지.

소장님은 가을이 병원에도 함께 가주셨다. 경계가 심한 가을이가 소장님에게는 편한 얼굴로 꼬리를 쳤다. 10년을 보살펴준 어머니 격이니 왜 안 반갑겠나. 소장님은 행여 가을이에게 탈이 날까봐 사료며 이동장이며 꼼꼼히 살펴주셨다. 그런데 며칠 전엔 소장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한다. 지금껏 아이들만 챙겨오다 정작 본인의 건강에 탈이 나고 만 거다. 그런 소장님께 난 그저 다이어트 음료 몇 개 챙겨드린 게 다다.

"예... 예뻐지세요, 소장님."

끊이지 않는 '선물 공세'

선물 받은 가을 "고맙습니다, 냠냠." ⓒ 박혜림


가을이를 입양하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엄청난 소포를 받았다. 크기도 크기지만 알뜰살뜰한 속내는 더 엄청났다. 누가 보냈을까? 딱 한 번 본 봉사자였다. 봉사를 하면서 수 년 동안 가을이와 남다른 친분을 쌓아오신 그분이 입양을 축하한다며 선물을 보내신 게다. 폭신한 방석, 치석제거용 껌, 종류별 육포, 다양한 통조림들. 댁에 개가 여러 마리 있다고 했는데 거기로 가야 할 택배가 잘못 온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양이었다.

가을은 복을 부르는 존재인지 지인들도 좀체 가만히 있질 않았다. 관절약·어깨줄·세정제·간식 등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선물 공세가 유난했다. 덕분에 난 보호소의 강아지들에게 가을의 간식을 나눠 먹이며 유세를 떨 수 있었다. 로또에 당첨되면 이런 기분이려나. 이제 은혜 갚을 일만 남았다.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가을이는 성품 칭찬을 많이 받는다. 순하다, 영리하다, 속이 깊다 같은. 사람들에게 가을이의 외양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지, 연탄재를 쑤시고 왔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가슴팍이 벌어진 거 보니 내장비만이냐는 우려를 듣기도, 또 억울한 일을 당했냐고 심문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여느 개들이 평생 들을까 말까한 찬사를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받기도 한다. 그 중 최고는, "강아지가 신선 같다" "정말 깨끗하게 생겼다" "자기 관리를 잘 해온 거 같다" 등이다.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웠겠지만 자꾸 봐서 정이 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가을이의 진가를 슬슬 알아주시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다.

가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를 바란다. 물론 여러분도 함께.
#가을이 #봉사활동 #유기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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