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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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일본 등 프로야구가 인기 있는 국가는 모두 10월은 '뜨거운 가을 야구' 의 시즌이다. 특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우승팀을 정하는 '월드시리즈'는 말 그대로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매년 양대 리그로 나눠진 30개팀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지만 트로피의 주인공은 단 한 팀뿐이다.

수많은 구단이 우승의 기쁨을 누리지만 왕좌와는 거리가 먼 팀들도 수두룩하다. 지난 2004년 감격의 축포를 터뜨린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 보스턴은 무려 5회에 걸쳐 우승을 차지했던 전통의 구단이었다. 하지만 1918년 이후 더 이상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포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시킨 후 보스턴은 침체에 빠졌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루스의 별명에 빗대어 '밤비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과연 보스턴은 거의 100년 가까운 무관의 치욕을 어떻게 털어냈을까? 글로벌 OTT 넷플릭스 신작 3부작 다큐멘터리 <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The Comeback : 2004 Boston Red Sox)에 그 해답이 숨어 있다.

라이벌 양키스? 웃기고 있네​

 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당시 MLB 최고 연봉 스타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 맨위)를 보유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은 앙숙 관계로 유명하다.
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당시 MLB 최고 연봉 스타 알렉스 로드리게스(사진 맨위)를 보유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은 앙숙 관계로 유명하다.넷플릭스

지난 23일 전 세계 동시 공개된 <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는 제목 그대로 2004시즌 보스턴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담고 있다. 메이저리그 특성상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려면 먼저 정규시즌에서 양대 리그 각 3개 지역(동부-서부-중부) 1위 또는 와일드카드 자격을 얻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게 관건이다. 보스턴으로선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함께 속한 뉴욕 양키스의 벽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까지 무려 27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양키스는 말 그대로 '악의 축'이라고 불릴 만큼 철옹성 같은 전력을 자랑하는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보스턴은 양키스를 잡지 않고선 월드시리즈 도전의 관문조차 통과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두 구단 및 팬들은 늘 신경전을 펼치는 앙숙 관계지만 '라이벌'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만큼 양키스의 압도적 우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의 코웃음을 자아낼 만큼 일방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보스턴은 결단을 내렸다. 2001년 말 구단을 인수한 존 헨리를 비롯한 새로운 투자자들은 팀 재편을 위한 움직임에 돌입했다. <머니볼> 열풍을 일으킨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영입이 당사자 개인 사정으로 무산됐지만 그의 밑에서 수업을 받은 테오 엡스타인을 새 단장으로 선임(2003년)하면서 변화를 주도했다.

86년 만에 깨뜨린 저주​

 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 당시 우승을 이끈 테리 프랑코나 감독(맨 위), 에이스 커트 실링
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 당시 우승을 이끈 테리 프랑코나 감독(맨 위), 에이스 커트 실링넷플릭스

엡스타인 단장 부임 후 보스턴은 활발해진 타격을 앞세워 이전과는 다른 야구를 보여줬다. 코리안 메이저리거 김병현의 이적 또한 이 시기에 이뤄졌다. 그토록 간절했던 우승의 꿈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또다시 양키스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진출권이 달린 2003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애런 분(현 양키스 감독)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돌아섰다. ​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스턴은 또 한 번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테리 프랑코나 (현 신시내티 레즈 감독)를 새 사령탑에 임명하고 기존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호흡을 맞출 원투 펀치로 관록의 투수 커트 실링을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선발-불펜진 강화로 기존의 약점도 채워졌다. ​

그리고 간판스타였지만 부상, 부진 등으로 제 몫을 하지 못했던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과감히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시키는 등 팀 분위기 쇄신에 주력했다. 데이비드 오티즈, 매니 라미레즈, 제이슨 배리텍, 조니 데이먼 등 지금까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 뜨거워지는 타선을 앞세운 보스턴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

그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1년 만에 다시 만난 양키스를 상대로 0승 3패 위기에서 4연승을 거뒀다. 리버스 스윕으로 한해전 당했던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기세를 모아 월드시리즈에선 내셔널리그 챔피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4승 무패로 제압, 그토록 간절했던 트로피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86년 만에 저주를 털어낸 것이다.

야구가 전부인 사람들

 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2004시즌 우승 주역인 테오 엡스타인 단장 (사진 맨 아래)
넷플릭스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2004시즌 우승 주역인 테오 엡스타인 단장 (사진 맨 아래)넷플릭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 대역전 : 2004 보스턴 레드삭스 >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그해 양키스와의 7차전 승부로 펼쳐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였다. 월드시리즈 자체가 워낙 싱겁게 끝나기도 했지만 당시 보스턴의 기운을 잘 드러낸 경기가 양키스와의 가을 혈전이었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우승을 일군 2004년 시즌의 주역들은 스스로를 "형제 같은 팀"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현지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팀을 만든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4 보스턴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20년이 지난 2024년 시즌 개막전 행사를 위해 보스턴을 다시 찾은 영웅들은 엡스타인 현 구단 수석 고문의 선창과 더불어 다시 한번 축배를 들어 올렸다. 그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우리는 그저 하나의 무리였을 뿐입니다. 아구선수요." (1루수 케빈 밀라)

누군가는 야구를 '그깟 공놀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스턴 선수단, 그리고 그들을 응원했던 여러 세대의 보스턴 팬들에겐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다. 이후 보스턴은 세 차례(2007, 2013, 2018) 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목마름은 이렇게 단숨에 해소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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