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스틸컷
티캐스트
켜켜이 쌓여 눌린 취향은 보기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윌리엄 포크너는 어떤가. 인간 내면에 대한 섬세하고 깊은 관심을 내보이지 않는가. 인화한 흑백사진을 선별하며 마치 장인이 흠 있는 도자기를 깨듯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을 좍좍 찢어버리는 모습도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말한다. 그는 강단 있는 사내다. 분명한 취향과 지향이 있는.
물론 그의 삶이 기대만큼 잘 풀려온 것 같진 않다. 누가 태어나 처음부터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되기를 꿈꾸었겠나. 포크너를 읽고, 벨벳언더그라운드와 패티 스미스를 듣는 이라면 더욱 그러했을 테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쉽게 마음을 다쳐가면서도 손을 뻗고 나아가려 하던 이가 아니었겠나.
그의 사연은 짐작될 뿐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작품을 쓰고 찍은 빔 벤더스의 미덕이다.
히라야마의 단조롭지만 완전한 듯했던 일상에 순간 균열이 가는 때가 있다. 처음은 가볍게. 여느 때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엄마를 찾는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주의하지 않는다면 외면하기 딱 좋은 크기로, 그러나 히라야마가 누군가. 그는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변기에 앉아 엄마를 부르는 아이를 찾는다. 아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 밖 공원에 나온 히라야마. 그런 그에게 멀리서 아이 엄마가 다가든다.
아이의 손을 빼앗듯 낚아채며 다그치는 엄마. 히라야마에겐 한 마디 말도 없이 물티슈를 빼어 아이의 손부터 닦는다.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부, 아이엄마는 대도시의 깔끔한 젊은 아줌마다. 멀어지는 모자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선 히라야마. 이런 일에 마음 상하기엔 그는 너무 많은 일을 겪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마쳐지지 않는다. 슬쩍 뒤를 돌아보는 아이, 그가 히라야마에게 손을 흔든다. 히라야마는 활짝 웃는다.
완벽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번엔 함께 일하는 젊은 청소부다. 설렁설렁 일하는 뺀질이를 찾아 젊은 여자가 온다. 뺀질이가 어지간히 마음을 빼앗긴 모양, 그러나 그녀는 영 마음을 연 것 같지 않다.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차도, 돈도 있어야 한다는 뺀질이의 부탁. 히라야마는 끝내 차를 빌려주고, 주머니도 연다. 물론 뺀질이는 형편없는 녀석이다. 여자를 꼬시는 데도 실패한다. 그러나 히라야마에겐 꽤나 멋진 순간이 다가든다.
세 번째는 보다 전격적이다. 히라야마의 조카가 그를 찾아온다. 엄마와 싸운 뒤 가출을 했다고. 그로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적잖이 흔든다. 그로부터 똑같은 듯하지만 전혀 다른 일상이 히라야마에게 펼쳐진다. 조카가 잠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지나쳐 나무에 물을 주고, 아침에 캔커피를 두 개 뽑고, 점심 도시락도 두 개를 사고, 일이 끝난 뒤 목욕을 함께 가는 것이 그토록 큰 차이를 빚는다. 조카가 읽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다시 읽고,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히라야마의 삶은 예기치 않은 일이 빚어지는 순간마다 작게, 또 크게 요동친다. '안온한 것 같은 독신의 삶, 규칙적이고 취향으로 가득한 그 삶이 결코 완벽하지 않음을 요동치는 순간들이 일깨운다. 그럼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퍼펙트 데이즈'는 흔들림 없는 안온한 삶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흔들리고 눈물을 흘리고 실망하고 짜증도 나게 하는 일상을, 어쩌면 그를 오늘의 청소부로, 독신남으로, 말 없는 아저씨로 만든 인생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진 진나라 옥새처럼 영영 없어져 나타나지 않는 무엇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히라야마의 삶은 완전해진다. 흠 없는 옥 따위 없는 세상, 흠집 난 돌멩이 그대로, 흔들리는 모든 것이 퍼펙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