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투병을 파병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침략군인 러시아 측 우군으로 1만2000명에 이르는 병력을 파병키로 했단 소식이다. 이미 1차로 1500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 가운데, 포탄과 미사일, 대전차지뢰 등 무기 또한 지원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우전쟁을 비롯해 세계 각지 전장과 테러현장에서 북한군이 활동해온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대대적으로 군대를 파병한 징후가 포착된 건 지극히 드문 일이다. 한국이 지난해 포탄 최소 50만발을 미국에 대여하는 형식으로 우회지원하고 군수물자 등을 추가 지원할 가능성을 검토하는 와중에서 북한군 파병 결정은 또 한 번의 민족적 비극이 될 수 있다.

전쟁 초기 이어진 미국발 외신보도와 달리 러시아군은 군사적 요지를 점거한 채 전쟁을 지속할 의지를 강력하게 내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치명적 타격을 입었음에도 미국의 지원 아래 국토 회복을 목표로 장기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등 지역패권국을 상대로 신냉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러우전쟁이 일종의 대리전이 아니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전쟁은 당사국 두 나라의 것만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버림받은 영혼들 스틸컷
버림받은 영혼들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실수 반복하는 인류, 그 이유가 보인다

북한의 대규모 파병은 실리적 결단으로 풀이된다. 마치 한국이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전투부대를 대대적으로 파병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의 요청 없이 선제안에 의해 이뤄진 파병 결정으로 군단급 5만 명의 병력, 누적으로는 30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밟았다.

참전한 대가로 한국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설립과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현대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통킹만 사건의 조작으로 출발된 부당한 전쟁이라거나 베트남이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굴곡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 상당한 참전군인 및 현지 민간인 피해가 있으리란 건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북한이 러우전쟁 파병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이와 얼마 떨어져 있지는 않을 터다.

인류는, 또 국가는 어째서 이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가. 한국과 북한 모두 전쟁의 고통을 더없이 잘 알고 있는 데 말이다. 한반도부터가 불과 70여 년 전 전화를 겪은 땅이다. 전국에 무덤 아닌 곳이 없고 일가친척 중 피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 만큼 큰 화를 입었다. 국토 전체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초토화 상태, 다시 일어서 경제강국이며 문화대국이 된 것을 모두가 기적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여기 있다. 2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버림받은 영혼들>이 바로 그 영화다. 감독은 로베르토 미네르비니, 미국에 이주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로 미국 남부 농촌공동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점차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떠오르던 그가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은 건 극영화로 변신해 찍어낸 첫 장편 연출작 <버림받은 영혼들>을 통해서다.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감독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미국 서부개척 시기 국경 너머로 파견된 정찰대의 이야기다.

영화는 통상의 전쟁영화와는 시점이며 분위기를 달리한다. 서쪽 경계 너머로 나아가는 정찰 기마대의 일상을 뒤따르며 소소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군복무를 마친 이들이라면 마치 다시 군대에 온 듯한, 그것도 혹한기와 같은 거친 훈련을 다시 받는 듯한 감상을 일으킬 정도다.

버림받은 영혼들 스틸컷
버림받은 영혼들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그들이 추운 겨울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이유

서쪽 국경을 넘는 순간 위협은 현실이 된다. 어디선가 갑자기 총알이 날라들고 사람이 죽어나간다. 실제 전쟁이 그러하듯 적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훈련받은 그대로,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대응사격을 해나갈 뿐이다. 길은 끊어지고 보급받은 식량도 동이 나간다. 날은 몹시도 추운 겨울, 동상을 입은 이까지 발생한다. 그럼에도 전진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니 나아갈 밖에 없다. 그러나 저 반대편에 선 이와 내가 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는 말인가.

기승전결이 확고한 흥미진진한 영화가 아니다보니 통상의 전쟁영화를 기대한 이는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독이 다큐멘터리적으로 포착해낸 전쟁의 일상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군인들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쟁을 결정한 이는 저기 위험하지 않은 도시의 제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을 터다. 전쟁터로 끌려온 이들 가운데선 왜 전쟁을 하고 있는지는 물론 저희 편이 이겨야 한다는 의식도 없는 이가 있을 정도다.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 병사는 신이 저희 편을 수호하리라고 확고하게 믿는다. 그러나 경험 많은 병사들은 신이 저희를 돌보는 만큼 경계 너머의 적들도 돌보리라는 걸, 다시 말해 아무도 돌보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는 터다.

이들에게 보다 중요한 건 눈앞의 고통이다. 그 가운데선 어린 병사의 동상 입은 발을 두 손으로 감싸 녹여주는 이가 있다. 부상 입은 이를 지키려 위험한 터에 홀로 남은 이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전쟁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은가.

영화를 함께 본 이가 있다. 한국 3대 영화제를 꾸준히 찾는 건 물론, 한국에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 절반쯤을 놓치지 않고 보는 대단한 마니아다. 전주와 부천, 부산에서 그의 의견을 듣는 일을 이제는 빼놓지 않고 한다. 영화산업을 지탱하는 근간엔 영화를 애정하는 씨네필의 존재가 있으니 말이다. 전주 일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모임 전주영화방에서 활동하는 조성민이 바로 그다.

버림받은 영혼들 스틸컷
버림받은 영혼들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영웅도 악당도 없는 전장, 전쟁의 민낯

조성민은 이 영화에 대해 "시작부터 늑대들이 사슴의 시체를 먹는 고정샷을 무척 길게 보여주며, 무거운 분위기를 단번에 조성한다"며 "자연의 냉혹한 먹이사슬을 강조하는 이 장면은 이후 펼쳐질 인간 간의 처절한 전투를 은유적으로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 미국에 대한 다큐멘터리만 찍어왔던 감독이 어째서 이번에는 극영화를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 흥미롭다"면서 "아마도 극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외부인의 시각에서 미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씨는 "이 영화 속에는 뚜렷한 영웅도, 악당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일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투 장면조차 스펙터클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의 처절한 생존 투쟁에 더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병사들의 대화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이는 전쟁 이전에 그들도 일상의 소소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전쟁과 멀리 떨어진 일상을 비출수록 영화가 전쟁의 비극성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는 뜻일 테다. 조씨는 이에 더하여 "감독은 광활한 자연의 배경과 인간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대비시킨다"며 "광각렌즈로 황량한 대지를 담고, 자연광만을 이용한 얕은 심도의 클로즈업은 등장인물들이 전쟁 속에서 고립된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러한 연출 방식은 테렌스 맬릭이나 클로이 자오의 작품을 연상시킬 만큼 자연 속에 홀로 남겨진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공개된 다른 작품 한 편을 특별히 함께 언급했다. 조성민은 "이번 영화제에는 원제가 'The Damned'인 영화가 두 편 상영되었는데 한글 제목은 '버림받은 영혼들'과 '저주'가 됐다"며 "전자는 전쟁영화, 후자는 호러영화지만 장르적 차이를 넘어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절망과 고통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요약했다. 그는 이어 "전쟁 속에서 버림받은 영혼들과 공포에 직면한 인물들이 마주하는 절망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도 인간 본성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버림받은 영혼들

요컨대 <버림받은 영혼들>은 전쟁의 비극을 말한다. 그를 극적으로 소비하는 흔한 극영화의 문법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채 인간이 전쟁 가운데 서면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려 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군대에 다녀온 이 땅의 청춘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자긍심이 움틀법한 여지가 전혀 없는 공간에서 의미 없이 구르는 일이 얼마나 참담한지를 말이다. 병역 이행은 민주시민으로 마땅한 권리이기도 하다지만, 사회적 존중이 없는 가운데 형편없는 처우까지 겹친다면 좀처럼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물며 전쟁이야. 전쟁을 결정하는 데 실제 몸 던져 싸우고 다치며 죽어나가는 이에 대한 고려는 얼마나 있었는가. 그들의 존재가 바로 '버림받은 영혼들'이 아닌가.

지난 세기 우리의 죄상을 뼈아프게 자각하며 오늘 북한의 참전을 비판하는 건 한반도는 물론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이 전쟁 가운데 놓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탓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버림받은영혼들 로베르토미네르비니 예레미아눕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