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섬세하고 민감해야 하는 일이다. 입양인의 평생을 완전히 뒤바꿀 가정을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이니 말이다.

불행히도 한국사회에선 입양의 문턱이 매우 높다. 제 핏줄이 아닌 아이를 제 자식처처럼 기르는 일이 부담스럽고 버거운 탓이겠다.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적 기준에 더해 아이 하나 기르는 데 수억 원이 우습게 들어가는 경쟁적 교육이 부담을 더 심화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고아 등 입양이 필요한 아이는 꾸준히 발생하는데, 입양처를 찾기가 어려워서 시작한 일일 수 있겠다. 해외입양이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늘어나게 된 이유 말이다. 국가는 사회의 부담이 되는 가정이란 울타리 바깥의 아이를 그대로 남겨두려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국가 바깥으로 보내도 좋겠다고 여겼을 테다. 말 많고 탈 많은 현행 해외입양 체계가 자리잡기까지 정부의 역할이란 책임의 방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외입양을 담당하는 건 국가나 공적 기관이 아닌 민간단체다. 정부와 수상한 관련성이 있는 이들 기관이 해외입양을 전담해 중개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는 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일이다. 아이 하나의 입양을 성사시키면 직원 한 명의 한 해 몸값이 나오는 일이 지속됐다. 담당자는 물건을 판매하듯 서둘러 아이 입양을 원하는 해외 부모에게 맺어줬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정, 사회, 문화에 적응해야 할 아이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설된 다큐멘터리 관객상은 조세영 감독의 에 돌아갔다.
부산국제영화제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설된 다큐멘터리 관객상은 조세영 감독의 에 돌아갔다.부산국제영화제

입양조차 외주주는 나라, 한국의 초상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한 < K-Number >는 한국의 해외입양 체계, 그로부터 고통 받는 입양인들의 현실을 내보인다. 미국에 입양을 가 수십 년을 살아도 국가가 절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으로 시민권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2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들 중 상당수가 저를 보낸 나라와 받은 나라 사이에서 떠돌며 고통 받는 참혹한 지경에 있음을 보인다.

조세영 감독은 해외입양이 마땅히 한국사회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라고 강조한다.

"다큐를 제작하며 스스로 생각한 화두는 '돌아오고 있는 입양인들과 함께 지내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였어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죠. 그러다 배냇을 알게 됐고 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 원하는 방향으로 다큐가 흘러가지 않았죠. 힘들었어요. 6개월가량 편집을 하면서 그동안 안 풀리고 답답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질문이 틀렸던 거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란 질문이 성립하려면 입양인들이 돌아와 우리와 함께 있다는 '인지'부터 해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입양인들이 20만 명 넘게 입양을 갔다는 사실도, 정부와 기관과 평범한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을 보태서 그 부조리한 체계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인지를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질문을 바꿨어요. 그제야 다큐의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하는 질문, '한국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이 거였죠. 사실 유럽에 촬영을 갔을 때 현지 입양인에게 직접 받은 질문이었는데요. 제가... 사실 제대로 대답을 못했어요. '한국인들은 입양인에 대해 관심이 없어',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던 거죠. 이 모든 체계를 알고 난 뒤 내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굉장히 창피한 상태인거죠. 그래서 이 영화로 한국 관객에게 입양이 입양인과 기관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의 매력이자 고통은 사실을 진실한 방식으로 담아내야 한다는 점일지 모르겠다. 카메라를 든 이는 카메라 앞에 펼쳐질 일을 꾸며낼 수 없다. 기대하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불행히도 그 기대와 예측이란 수시로 비껴 나간다. 그 비껴나감이 때로는 더 멋진 순간을 빚기도 하지만. 듣자니 < K-Number > 또한 마찬가지.

"대부분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갔죠. 이 다큐는 지금 입양인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를 따라가면서 그 현재를 관객에게 체험시키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모험의 성격이 강했죠. 미오카님이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서류가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일지도 예측하기 어려웠고요. 반대로 어떤 입양인은 서류가 정확히 맞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체험'을 중심에 놓고 계속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너무 특별한 서사를 가진 개인이나 캐릭터가 너무 도드라진 사람보다는 미오카님이 하나의 사례로 적합해 보였고 나머지는 상황을 따라가자고 판단하고 흐르는 대로 흘러갔습니다.

미오카님이 기대 없이 들렀던 과거 아동보호소가 있던 장소에서 옛날 서류를 읽어줄 줄 알았던 사회복지사가 다음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결정적 힌트를 알려줄 때 저와 스태프들이 그 자리에서 모두 소름이 돋았던 적이 있어요. 다들 본능적으로 '이 장면은 찍어야 해' 하고 느낀 거죠. 당시 저희가 계획 없이 그냥 들렀던 곳이고, 담당자도 카메라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의외의 힌트를 얻고 모두 너무 흥분해 눈빛이 달라지면서 촬영을 요청하니까, 담당자가 그 자리에서 윗선에 가서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돌아와 그 자리에서 촬영을 허락해 주셨죠.

아쉽게도 다큐 안엔 그 느낌이 온전히 표현되진 않았는데 저희가 미오카님의 상황에 너무 몰입이 되어 우리끼리 더 흥분했던지라... 도리어 미오카님이 한국어를 할 수가 없어 상황을 정확하게 따라오고 있지 못했는데 저희 상태를 보고 이건 직감적으로 중요하단 걸 아셨어요. 그래서 모두가 다 같이 담당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물어보게 됐고요. 옛날 서류들이 너무 뒤엉켜 있고 엉망이라서 그런 부분을 자세히 표현하다보면 관객이 더 헷갈릴 것 같아 축약하다보니 영화가 제작진이 느낀 강렬함을 조금 벗어나 있긴 합니다. 하지만 관객들도 그 부분을 신기해하면서 재밌어 하더군요. 물론 과정이 재밌는 거지 드러난 사실은 끔찍함이겠지만요."

K-Number 조세영 감독
K-Number조세영 감독조세영

아이 팔아 수익 올리는 입양기관, 누가 허락했나?

영화 속 부조리한 입양의 체계, 그 중심엔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4대 입양기관이 있다. 이들이 국가의 허가 아래 입양을 중개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혹여 제 뿌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는 입양인을 위한 조치는 물론이거니와 입양인이 시민권을 확보하는 등 최소한의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확인하는 역할조차 소홀히해왔다.

영화를 차근히 따라가다보면 이들 기관이 아이가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하는 입양의 본래 목적보다 수수료를 버는 일에 더 진력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밖에 없는 일이다(관련기사: 지금도 아이 팔아 돈 버는 한국... 출산율 꼴찌 선진국의 민낯).

그러나 영화는 이들 기관과 책임 있는 인사에 대한 인터뷰 시도 등의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4대 입양기관에 2020년부터 3년 간 전화나 공문을 돌렸으나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이후 한국 및 외국 방송사에서 홀트 같은 입양기관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방송프로그램이 나왔고, 그 뒤엔 더욱 외부접촉을 차단한 상태예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자막으로 쓰고 2004년도에 인터뷰했던 당시 홀트 대표의 장면을 넣었었지만, 마지막 편집본에서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아 삭제했습니다. 영화를 앞에서부터 본 관객이라면 유추가 가능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굳이 후반부에 러닝타임을 늘이면서 나올 만큼 임팩트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다큐는 기록하는 일이라지만 거기서 그칠 수는 없다. 기록하고 알림으로써 세상을 변화하게 하려는 의지가 그 안에 담겨 있기 십상이다. 특히 < K-Number >와 같이 한국의 지난 과오를 고발하는 작품은 더욱 그렇다. 감독은 누구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어떤 변화를 기대했을까.

"만들 때 다큐를 봐주길 원한 주 관객은 한국의 2,30대 젊은이들이에요. 20만 명 이상이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갔다면 그 가족이 100만 명은 될 테고, 그와 관련한 정부 및 입양기관 종사자와 거기서 자원봉사를 해온 사람까지 생각하면 족히 몇 백만이 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 체제를 70년 이상 유지해왔어요. 이제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돌아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저는 우리 개개인 스스로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인 사이에선 해외입양 문제를 자기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일, 남의 문제로 멀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국가적 재난사건을 보면서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로 느끼기는 어렵죠.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때 본인이 그곳에 없었다고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대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내가 혹은 내 지인이 그 곳에 갈 수 있었고, 우리도 그 체계 안에서 살고 있고,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감각이 있기 때문이죠. 이 다큐를 통해서 지금도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외입양이 한국인 개개인이 겪고 있는 문제처럼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해외로 보내졌던 아이들의 귀환

영화가 한국, 나아가 아시아 제일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건 해외입양인들 사이에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영화의 출연자이기도 한 메리 쉬라프만이 따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메리는 해외입양인이 처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전단지를 배포하고 라디오 방송에 나서는 등 물심양면으로 기여해온 이다. 후반부엔 그녀가 노력한 과정이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그녀가 말한다.

"여러분은 한국의 입양 역사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약 25만 명에 달하는 한국의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진 이야기를 알게 되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아이들입니다. 이제 다 자란 우리는 이 사회적 비극에 대한 인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친가족들이 부끄러움 없이 아이들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입양된 아이들이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인식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 K-Number >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씨네만세 865'에서 이어집니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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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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