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실리카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실리카겔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지난 8월 4일부터 6일에 걸쳐,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다. 매년 8월, 인천 송도에 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해외 뮤지션이 출연하는 수도권 대형 락 페스티벌은 펜타포트가 여전하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한국 록팬들에게 펜타포트는 '당연히 가는 것'이었다. 특히 2013년부터 페스티벌의 부지가 송도달빛축제공원으로 고정되면서, 펜타포트는 고정된 장소와 풍경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올해 18회째를 맞이한 펜타포트의 첫날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는 일본의 팝펑크 밴드 엘르가든이 맡았다. 2008년 펜타포트 출연 이후 오랫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이들은 15년 만에 펜타포트에 돌아왔다. 15년 만에 한국에 왔지만, 밴드의 연주력과 보컬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그들은 쉰을 넘긴 나이조차 잊게 했다.

"옛날 생각 나네요. 기억나요? CM송."

엘르가든의 보컬 호소미 타케시는 팬들에게 꽤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추억의 노래 'Marry Me'가 연주되었다. 1980~1990년대생이라면 모두 정일우가 출연했던 그 휴대폰 CF를 기억할 것이다. 오직 한국 팬만을 위해 준비한 팬서비스였다. 수많은 이들을 록의 세계로 인도했던, 추억의 사운드트랙들이 팬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명곡 'Make A Wish'가 울려 퍼지자 모두가 거대한 원을 그리며 소리쳤다. 아티스트와 관객 간의 깊은 유대를 확인했다. 2019년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스트록스(The Strokes)도 17년 만에 펜타포트에 돌아왔다. 스트록스는 올해 펜타포트에서 토요일 헤드라이너를 맡아 공연했다. 중년이 된 록스타가 청년 시절의 명곡을 연주했다.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무대 매너나 셋리스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You Only Live Once', 'Reptilia', 'Last Nite' 등의 옛 명곡은 관객들을 광란으로 몰아 넣었다.

전설의 관록, 신예의 자신감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엘르가든(Ellegarden)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엘르가든(Ellegarden)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이처럼 이번 펜타포트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 역시 모두 존재했다. 장기하는 얼굴들의 명곡과 솔로곡으로 훌륭한 완급 조절을 보여주었다. 김윤아는 모든 관객의 예상을 깨뜨리는 구성으로 무장했다. 뮤지컬과 1인극을 혼합한 듯한 공연은 한국 페스티벌에서 유례를 볼 수 없었다. '봄날은 간다' 등의 히트곡은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증오는 나의 힘' 등 치명적인 노래로 대체되었다. 김윤아는 개인적인 삶의 족적을 한 시간의 공연에 과감히 녹여냈고, 현실과 극의 경계를 흐릿하게 했다.

최근 앨범인 'TEEN TROUBLES'(2022)의 매미 소리로 시작된 검정치마의 공연도 만족스러웠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페스티벌 무대에 섰지만, 그의 공연은 큰 무대에 잘 어울렸다. 특히 'Antifreeze'의 떼창을 듣는 동안에는, 그가 Z세대 록 팬들에게 있어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세대 헤드라이너의 자격을 입증한 실리카겔과 이승윤도 있었다. 실리카겔은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대표곡 'NO PAIN'을 첫 곡으로 선택했다. 앞으로도 들려줄 것은 무궁무진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승윤은 관객들에게 '이제는 자신이 환영받는 쪽이냐'고 물었다.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 출신인 자신에게 쏟아진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이제 편견과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채, 큰 무대를 장악했다.

청량한 기타 사운드를 들려준 히츠지분가쿠를 비롯해 오토보케 비버, 키린지, 넘차 등 일본 뮤지션들의 공도 컸다. 새벽에는 '뉴진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듀서 250이 틀어주는 뽕짝에 맞춰 막춤을 추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운영에는 만족스러운 점이 많았다. 의료버스 등의 폭염 대책, 원활하게 진행된 앱을 통한 음식 주문, 빨라진 입장 동선 등이 그랬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혼잡함이 덜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지점이다.

바뀐 것, 바뀌지 않은 것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스트록스(The Strokes)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스트록스(The Strokes)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코로나19 이후, 펜타포트를 둘러싼 공기는 달라졌다. 팬데믹이 축적한 공연에 대한 수요를 증명하듯, 이례적인 인파가 모였다. 주최측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3일 동안 13만 명, 올해에는 3일 동안 15만 명이 모였다. 과거에 비해 해외 뮤지션의 비중이 적었는데도 가능한 일이었다. 펜타포트에 이 정도의 인파가 모였던 적은 없다. '록이 죽었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그렇게 모인 Z세대 록팬들 역시 과거와 달랐다. 이들은 해외에서 온 록스타를 더 이상 숭배하지 않는다. 자신의 '최애' 국내 밴드를 보러 오거나, 축제 자체의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한다. 돗자리에 앉아 먹거리와 공연을 즐기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뛰어가서 춤춘다. 이들이 바로 '록 순수주의자'를 대체한 주요 관객이다. 지난해 낮에 출연한 체리필터, 올해 낮에 출연한 밴드 Surl 등은 코로나 이전의 웬만한 헤드라이너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이 사실은 꽤 상징적이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명물이 된 김치말이국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명물이 된 김치말이국수 ⓒ 본인 촬영

 
어느새 나의 여덟 번째 펜타포트다. 여전히 음악은 폭염 경보에도 불구하고 인천을 찾게 되는 근거로 충분하다. 아티스트를 대신해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몰라도 춤추는 관객들이 있다. '나락도 록이다', '락페의 민족', '퇴사' 등 개성있는 깃발, 그리고 슬램과 스캥킹, 노 젓기 등 락 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가 있다. 언제든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다. 페스티벌이 직면한 변화 가운데에서도 바뀌지 않은 것은 많다.

시대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높아진다. 최근 몇 주 동안 국내에 비극적인 뉴스가 이어져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서 춤을 추고 맥주를 마셔도 괜찮을까?' 하는 노파심도 든다. 그러나 펜타포트는 음악은 현실의 문제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절망을 덜어내줄 수는 있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는 'Antifreeze(검정치마)'의 노래 가사처럼.
펜타포트 스트록스 엘르가든 김윤아 검정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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