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힘든 영화가 있다. 영화의 서사부터 담긴 메시지가 자연스레 와 닿지 않는 영화다. 아주 실험적이라면 실험영화라고 부르겠으나,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게 가미됐을 뿐 기본적으로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어 극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상징성이 강한 예술영화라고 부를 따름이다.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고 보고난 뒤 오래 생각해야 의도가 잡힐까 말까 하니 인기가 있을 턱이 없다. 때문에 비슷한 영화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영화계를 하나의 생태계라 한다면 희귀종도 이런 희귀종이 없다. 곧 개봉을 앞둔 폴란드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이야기다.
시사회 직후 평론가들의 해석을 원하는 평이 빗발쳤다. 기자단 시사회에서도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 영화가 도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따진 리뷰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때깔이라도 별로였다면 영화가 졸작이라 말하겠는데 촬영과 연기, 음향, 미술 등이 상당히 좋다. 심지어 감독은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와 마셀 엔그레르트의 공동 연출작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차례 수상하며 차세대 거장이 될 재목으로 꼽힌 그 슈모프스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