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몽예리(한예리 분)와 세 루저(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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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왼편에서 보면 성장드라마이고 오른편에서 보면 스릴러이며 정면에서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조각보일 뿐이다. 초점을 맞춘 캐릭터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에피소드에 따라 영화는 성장드라마가 됐다 스릴러가 되고 멜로드라마나 버디무비, 블랙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두고 고민하는 딸의 이야기로 영화를 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아버지에게 세탁기 사용법을 가르치듯 아버지를 걱정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반면 조금만 달리 보면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어 살해하려는 스릴러처럼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또 주인공 여자인 한예리가 추는 세 차례 춤에 집중하면, 만약 그 춤을 자아표현이나 꿈, 혹은 이상으로 본다면, 영화는 이상에 대한 추구가 좌절되는 한 편의 현실적인 드라마가 된다. 영화 속에 춤은 모두 세 차례 등장하는데 하나는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할 때고 둘은 세 남자와 상암동을 찾았을 때며 셋은 예리의 가게에 이상형인 유연석이 들렀을 때다.
이 가운데 한예리가 처음 춤을 추던 장면에서 카메라는 한예리의 시선에서 그녀와 세 남자가 술을 마시던 평상을 비추는데 그곳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두 번째 춤을 추던 장면은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 있는' 상암동에서 한예리가 춤을 추면 장면인데 그녀는 다른 남자들이 자신을 따라 춤을 추는 모습을 보자 프레임 밖으로 나가버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가게를 찾은 유연석 앞에서 '구애의 춤'처럼도 여겨지는 몸짓을 하는데 이번엔 그녀가 스스로 춤을 멈추지 않았음에도 유연석이 가게를 나가버린다.
어쩌면 처음엔 그녀의 세상에 세 남자가 없었고 다음엔 세 남자가 들어왔으나 마음에 들지 않으며 마지막엔 자신이 꿈꾸는 이상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모두는 부질없는 해석일 뿐이다. 조각보 위 비슷한 천 조각 몇 개를 이어붙인 것일 뿐이니.
영화는 뼈대가 살아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한바탕 놀이판에 가깝다. 비슷한 문양의 퍼즐 몇 개를 이어붙이면 팡하고 터지는 모바일게임처럼, 영화 곳곳 흩뿌려진 장면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꿰어지는 재미난 놀이판인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화장실 사각 타일에서도 의미 있는 모양을 찾아내곤 한다. 모래밭이나 고구마, 구운 빵에서 예수나 석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달에서 절구 빻는 토끼를, 지구상 가장 오래된 생명체보다 훨씬 오래 그 자리에 있었을 바위로부터 온갖 동물의 형상을 찾아내곤 하는 것이다. 이건 연상과 상상, 관찰을 통해 의미가 없는 것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해내는 고등생물의 지적 유희다. 그리고 <춘몽>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다양한 지적 유희가 가능한 조각보 같은 영화다.
앞 장면과 뒤 장면, 그렇게 서로 연결될 법한 몇 장면을 꿰면 성장드라마나 범죄극도 되지만 그보다는 친한 영화인들이 모여 한바탕 놀이를 벌인 영화쯤으로 편히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이 모든 해석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정답이 없어 더욱 매혹적인 것이 영화라는 예술이므로.
비주류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