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수천 편 본 소위 씨네필 중에선 도입, 그러니까 앞부분만 보고 전체를 짐작할 수 있다 자신하는 이들이 많다. 어디 영화뿐이겠나. 음악과 미술, 문학, 예술이 아니고도 여러 분야에서 처음 잠깐만 보고도 전체 수준을 알 수 있다 말하는 이가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테다. 나조차도 내가 잘 아는 특정 분야에선 그리 말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요리사는 재료를 손질하는 걸 보고 상대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고, 검객은 상대의 기수식만 보고도 실력을 알아챈다. 가수가 입을 떼자마자 돌아본 경험이 누구나 있고, 화가가 드로잉 몇 번을 슥슥 한 것만으로도 종일 매만진 내 스케치북이 민망해질 때도 있는 것이다.
1년 쯤 되었을까. 지휘자로 변신한 첼리스트 장한나가 어느 쇼프로그램에 나가 연주자의 재능을 알아보는 데는 '5초면 충분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작품 안에 깃든 열망과 노고를 알아채는 데 5초보단 더 많은 관심이 주어져야 하지 않느냐 발끈하게 되는 마음이지만, 위에 적었듯 단 몇 초면 재능 있음과 없음이 가려질 때가 많음을 떠올리고 수긍할 밖에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