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구나. 걸음이 헛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또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동안, 나는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기를 정말 잘 했다고 여겼다. 이 정도 영화를 건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본 뒤의 내가 얼마쯤 달라졌음을 느꼈다는 말이다.
 
아마도 상영관 안에 나와 같은 이가 얼마쯤 더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어색하고 보기 불편한 순간들을 건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열의와 관심, 또 문제의식이 어느 관객의 가슴에 가서 닿았으리라고 여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드레날린 라이드 섹션에 공식초청된 독일 영화 <데블스 배스> 이야기다.
 
영화를 보기 직전, 이 영화를 추천한 전북영화문화방 소속 조성민씨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 영화를 고른 이유를 이야기했고, 이 영화와 끝까지 고민했던 다른 작품에 대해 말했다. 이 영화가 끝내 한국 영화사에 의해 수입돼 한국 상영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영화를 고른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질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영미권 영화가 아니고, 스타 감독의 작품이 아니며, 알려진 배우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 모두가 하나하나 단점이었다.
 
나는 그에게 작품의 제목, <데블스 배스>가 아쉽다 말했다. 직역하여 악마의 목욕이라거나 악마의 욕조쯤이라 했다면 차라리 강렬한 장르물의 인상이라도 살렸으리라고. 데블스 배스라니 이도저도 아닌 어색한 제목이 아니냐고 말했다. <The Soul Eater>를 <영혼의 포식자>로 고쳐놓는 영화제가 어째서 <데블스 배스> 만큼은 그대로 놓아두었는지, 좀처럼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데블스 배스 스틸컷

▲ 데블스 배스 스틸컷 ⓒ BIFAN

 
첫인상 완전히 뒤바꿔낸 주목할 작품
 
이제와 나는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놓아둔 이유를 이해한다. <데블스 배스>는 그처럼 어중간한 장르물로 소비하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그러하듯, 제목에도 선명한 의중이 담겨 있다. 영화를 본 뒤 <데블스 배스>란 제목을 곱씹다보면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으로 바꾼다면 그 감상이 덜해진다. 영화의 가치에 깊이 공감하여 쉬이 손볼 수 없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단 얘기다.
 
베로니카 프란츠와 세버린 피알라 감독이 함께 연출한 <데블스 배스>는 18세기 북 오스트리아 스티리아 지방 산골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아그네스(안야 플라슈그 분), 집을 떠나 인근 마을 사내에게 시집을 가게 된 처녀다.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 친정집에서 얼마 떨어진 숲을 찾아 꽃을 꺾고 화관을 만드는 장면으로 처음 모습을 비춘다. 꽃과 예쁜 것을 좋아하는 처녀, 결혼에 대한 순박한 기대를 품고 옆 마을로 시집가는 아그네스에겐 행복한 삶이 기다릴 것만 같다.
 
그로부터 영화는 시집 간 아그네스의 일상을 그린다. 남편인 볼프는 성실하지만 어딘지 좀 모자란 인상이다. 종일 일만 하고 놀 줄 모르는 그는 집에 돌아와도 아그네스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투박한 사내인가 싶기도 하지만 밤에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 이상하단 생각이 들밖에 없다. 글로 적기 민망한 일들은 마침내 처녀인 아그네스가 부끄러움을 딛고 제 욕구를 드러내게까지 하지만, 볼프는 제대로 그에 응하는 일이 없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욕구불만이 쌓일 밖에 없는 일이다.
 
아그네스를 괴롭히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아들 집에 매일같이 찾아오는 시어머니는 보통 억센 이가 아니다. 척박한 북녘 작은 마을에서 남편 없이 가정을 건사하려니 그럴 밖에 없겠지만,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서도 억척스러움이 묻어나는 깐깐한 할멈이다. 작은 배 하나를 갖고 있어 마을 사람 십 수 명을 부리며 고기를 낚는데, 대가라고 내놓는 건 마른 빵과 물고기 몇 마리뿐이니 영 인색하단 평이다.
 
데블스 배스 스틸컷

▲ 데블스 배스 스틸컷 ⓒ BIFAN

 
마이크로 매니징 시어머니, 무관심한 남편
 
그토록 만만찮은 시어머니가 매일 같이 찾아와 사는 모양을 두고 사사건건 잔소리를 한다. 냄비는 여기에 걸고, 요리를 끓일 땐 주기도문을 몇 번씩 외야 한다는 둥, 그다지 중요한 얘기도 아니다. 일터에서도 온통 매여 있는데 둘 사는 집에서까지 마음껏 숨 쉴 수가 없다니. 아그네스로선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남편의 무관심과 시어머니의 간섭, 고된 노동과 기댈 곳 없는 삶 가운데 인근 마을에서의 신혼생활이 지구 반대편으로 쫓겨온 듯 막막하기 그지없다.
 
<데블스 배스>는 그 오프닝부터 몹시 인상적이다. 열 살 쯤이나 되었을까. 한 아이가 제가 돌보던 갓난애를 들판에 살포시 놓아두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안에서 저를 부르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 때문이다. 아이가 아이를 돌보는 건 그 시절의 일상일 테고, 또 아이가 제가 돌보는 다른 아이를 잠시 홀로 내버려두는 것 또한 흔한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흔치 않은 일이 그로부터 벌어지니,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 여자가 바닥에 놓인 아이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든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겨 숲으로 나아가는데, 안긴 아이는 무언가 불편한지 몹시 울어대고 안은 여인은 그를 외면한 채 걸음만 빨리 하는 것이다. 그렇게 원래 아이가 있던 집에서 멀어진 여자는 숲 깊숙한 곳으로 거듭 나아간다. 그리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어느 높은 절벽 위에 이르러 아이를 높이 들고 단번에 놓아버린다. 아이가 절벽 튀어나온 바위에 거듭해 부딪치며 저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이 <데블스 배스>의 오프닝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제 가족으로부터 떼어내어 던져 죽이다니. 절로 악마가 떠오르는 일이 아닌가.
 
다음은 또 한 차례 예상을 뒤엎는다. 아이를 던진 여자가 마을로 들어와 성처럼 웅장한 건물의 문을 두드린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제가 죄를 지었다고 말하자 잠겨 있던 문이 열린다. 그곳은 성당, 그녀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고 제 죄를 말한다. 살인이다. 그것도 납치한 유아를 살인한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죄를 받아 처형되고, 시신은 숲의 처형장 가운데 괴기하게 전시된다.
 
데블스 배스 스틸컷

▲ 데블스 배스 스틸컷 ⓒ BIFAN

 
자살할 수 없는 이들, 살해를 택하다
 
영화는 관객이 전혀 예상치 못할 사건의 연속으로써 본격적인 이야기의 포문을 열어젖힌다. 아이를 납치해 죽이고 스스로 죄를 고한 뒤 마침내 처형돼 죽어간 여성, 그 여성이 살던 마을로 시집온 아그네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엔 웬 망령 들린 미친 여자인가 싶던 것이 아 그러하였구나, 그럴 수가 있겠구나 하는 이해와 안쓰러움으로 화하는 게 <데블스 배스>의 작업이다. 말하자면 멀리서 볼 땐 악마와 괴수의 짓거리처럼 보이던 것이 가까이서 바라보면 시대와 사회, 인간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처음 등장한 여자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 부조리함을 알리는 일이다.
 
18세기 북 오스트리아의 전근대적 시골마을, 그러나 그곳에도 인간이 있었다. 그곳을 지배하는 질서는 봉건적 가톨릭이었고, 인간의 삶 아주 작은 부분까지를 간섭하고 통제하며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까지 금하였던 것이다. 자살자는 지옥에 가 영원을 고통을 받게 되는 것으로써 묘사됐고, 마을 공동체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 또한 허용되지 않았다. 인간의 욕구와 종교적 태도가 불협화음을 내는 순간이 곳곳에서 벌어지지만, 그때마다 패하는 건 인간의 욕구이던 시대다. 아그네스와 같은 선한 이조차 이 마을에선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린다.
 
영화는 전근대 유럽에 실제했던 사회문제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우울증과 그 우울의 결과로써 시도될 수 있었던 자살이 종교적, 사회적 제약으로 이뤄질 수 없었을 때 발생한 기묘한 사건들을 포집한 역사연구를 참조했다.
 
무려 400여 건의 사건이 하나의 형태로써 모여든다. 자살을 원하는 이가 아이를 납치해 죽이고 스스로 교회에 제 죄를 고변한다. 교회법에 따라 고회성사를 하면 죄가 사해지고, 그 뒤에 인간의 법에 따라 처형을 받게 되면 영원한 지옥에서의 고통을 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사후 받게 될 고통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제 가족에게 주어질 아픔까지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죽을 수 있는 죄 가운데서 가장 쉬운 것을 저지르기에 이르니, 그것이 유아납치와 살해라는 게 이 연구, 또 영화의 결론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BIFAN

 
스릴러와 호러를 넘어 인간사 부조리를 고발하다
 
신을 미워할 수 없어 인간을 미워하기로 선택한 불쌍한 이들이 영화 가운데 제 표정을 드러낸다. 교회의 설교와 고해성사는 더없이 폭력적이어서, 그 죄를 씻는 작업이 신이며 천사가 아닌 악마의 그것이 아닌가를 혼동케 한다.
 
아이를 살해하며 "넌 이제 죄를 짓지 않을 거야, 천사로 남을 거야"하고 되뇌던 아그네스의 모습은 그저 영화적 상상만이 아니다. 독일어권에서 벌어진 400여 건의 아동살해와 그 범인들의 얼굴, 그 간절했을 마음을 이 시대 연구자와 작가가 이해한 결과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한 편의 스릴러며 호러로만 남지 않는다. 인간과 사회와 종교와 역사가 건너온 부조리를 고발하고 여전히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불합리를 해소해야 한다는 자각이다.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한 건 전주를 중심으로 예술애호 활동을 이어가는 전북영화문화방 소속 조성민씨다. 벌써 십 수 년 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고 있다는 그는 현실적 이유로 한국에서 개봉하기 어렵지만 이 시대 관객에게 분명한 영향을 주는 걸작을 만나려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데블스 배스>가 꼭 그와 같은 영화일 테다.
 
조성민은 "18세기 한 가족의 목가적인 풍경과 생활이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를 연상시키고, 종교적인 신념과 사회적 관습은 <위커맨>이나 <미드소마>도 떠올리게 한다"면서 "이들 작품이 외지인의 시선을 통해 이질적인 요소들을 보다 강조한 반면 <데블스 배스>는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들의 풍습을 묘사하고, 불완전하고 편협한 인간의 사고가 만들어낸 비극을 그리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영화는 느린 템포로 진행되지만, 불필요한 장면 없이 촘촘하게 짜인 각본 덕분에 이야기의 전달력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곱씹을수록 많은 여운을 준다"며 "심리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종교적 신념과 사회적 관습의 폐해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추천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데블스배스 베로니카프란츠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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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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