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의 한장면
홀리가든
남성 한 명과 다수 여성으로 구성된 영화의 관계 구도는 작위적이면서도 퍽 흥미롭다. 영화는 내내 여성을 타자화하며 남성 판타지를 한껏 자극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상에 머물지 않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그린다. 후루야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여대생, 남편 몰래 후루야와 외도를 저지르는 여배우는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역할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루야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한편, 고고한 외피 속에 숨은 그의 보잘것없는 민낯을 만천하에 까발리기까지 한다.
두 여자와 각각 관계를 가진 후루야가 자신의 영화 GV(관객과의 대화) 무대에서 이들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신의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한 후루야에게 분노하는 남성, 자신을 두고 서로 질투하는 두 여성은 후루야가 일궈온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유쾌하게 무너뜨린다. 중년의 후루야가 젊은 세 남녀에게 쫓기며 골목을 달리는 신은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지점이다. 겨우 추격자들을 따돌린 그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신의 학생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그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영화는 자신의 욕망을 거의 자제하지 않는 후루야를 결코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피아노 앞에 앉아 '짐노페디'를 연주하던 아내의 기억을 재생하며 그의 내면에도 '사랑'이 있었음을 조명한다. 일주일 동안 만나는 여자마다 섹스를 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내의 부재에 대한 공허로 비치는 것도 그래서다. 그저 자위를 위한 그의 섹스는 물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성욕 그 자체인 셈이다. 영화 말미, 혼수상태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 앞에서 간호사와 벌이는 마지막 섹스 신은 그런 의미에서 강렬하다. 결국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가 역설하는 건 사랑을 잃고 욕망에 집착하는 남성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