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가든
<안티포르노>는 여성을 극단적으로 대상화하면서 역설적으로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다. 주인공 쿄코와 노리코를 중심으로 한 극중 주요 인물들은 모두가 여자다. 이들은 다른 여성 위에 군림하고, 어느 순간에는 반대로 다른 여성에게 억압당한다. 이 와중에 남성이 끼어들 틈은 좀처럼 없다. 익숙하게 여겨져 온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구도가 이 영화에서만큼은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귀엽고 예쁜 얼굴의 '여성'들이 서로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또는 착취당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마조히즘과 사디즘이 혼재된 여성들만의 포르노다.
소노 시온 감독 작품답게 <안티포르노>는 광기에 가까운 주인공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가한다. 첫 시퀀스에서 성공한 소설가이자 현대미술 작가인 쿄코는 다음 장면에서 포르노 영화 배우에 도전하는 풋내기 배우가 된다. 툭툭 끊어지며 각각 단편적으로 주어지는 에피소드들 사이의 인과 관계는 불투명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희미하다. 종횡무진으로 뻗어나가는 서사를 따라가기란 어느새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쿄코와 노리코 간의 권력 구도는 '컷'이란 세트 밖 감독의 소리, 또는 꿈에서 깨어 눈을 뜨는 순간 몇 번이나 정반대로 바뀐다. "처녀이자 매춘부"라는 표현은 극 중 쿄코의 정체성을 그대로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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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이후 조금씩 드러나는 쿄코의 내면은 이 시대 여성의 현주소를 아릿하게 조명한다. 특히 "나는 멀쩡한 삶을 살며 이 여자를 연기하는 것"이라는 쿄코의 대사는 성적 대상과 주체로서 여성이 각각 맞닥뜨리는 모순에 대한 것으로도 비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심어준 섹스에 대해 죄악감, 그리고 그런 부모의 성관계를 본 뒤 겪은 혼란까지. '음탕하고 천박한 것'을 경멸하면서도 동경하는 쿄코의 태도는 그가 지닌 트라우마들을 통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남자를 통해 처녀성을 '버리'고, 포르노 영화 오디션을 찾아가 "당장 내 몸을 포르노로 만들어 달라"고 말하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안티포르노>는 여성 스스로가 본 여성의 이야기이자 포르노에 대한 포르노 영화다. 그 와중에 주인공 쿄코가 상징하는 건 권력에 취한 강자이자 무력감에 매몰된 약자다. 더 나아가서는 옳고 그름의 허울을 집어 던진 욕망의 민낯이자 진정한 자유이기도 하다. '변태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쿄코의 일거수일투족이 남성성과 시스템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투로 읽히는 건 그런 맥락에서다. 색색의 페인트를 온몸에 뒤덮은 쿄코가 방바닥을 나뒹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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