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의 마해영 마해영 Xports 해설위원은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뒤 은퇴해 올 시즌부터 프로야구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 2008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의 마해영 마해영 Xports 해설위원은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뒤 은퇴해 올 시즌부터 프로야구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 롯데 자이언츠

국내 프로야구의 금지 약물 복용 실태를 담은 마해영(39) Xports 해설위원의 저서 <야구본색>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마 위원은 이 책에서 "과거 금지 약물에 손을 댔던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호기심에 사용해 본 국내 선수들이 생겼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 두 가지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장이 커지자 그는 5월 19일 "앞으로는 국내 프로야구에 금지 약물이 없어지길 바라면서 남긴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프로야구계에는 금지 약물을 써 온 선수들이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이 없고 자칫 특정 선수에 대한 인권 침해와 명예훼손을 우려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 왔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어도 파장이 두려워 얘기를 못했던 야구인들도 있었다. 이번 마 위원의 발언은 아직 사실 여부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금지 약물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지 약물 문제, 수면 위로 올라

국내 프로야구 출신 선수가 금지 약물의 사용 여부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즉시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KBO는 "2007년 도핑 검사 이후 금지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도핑 검사 실시 전인 2005년부터 선수들에게 수차례 교육을 했고 충분한 계도 기간을 줬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대부분 선수들은 금지 약물을 사용하면 도핑 검사에 걸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신체를 상하게 할 수 있는 큰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KBO도 과거에 금지 약물을 사용한 선수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KBO 반도핑위원을 겸하고 있는 정금조 KBO 운영부장은 "과거에 금지 약물을 썼던 선수들이 있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최근엔 금지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지 약물의 유입은 1998년 국내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본격화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전엔 부상 치료 개념으로 '대포(데포메드롤) 주사'를 맞는 게 고작이었다. 선수들은 '대포 주사'에 포함된 스테로이드가 뭔지 몰랐고 "잘못 맞으면 부작용이 심하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대포 주사'는 지금도 가끔 사용되는 진통제다. 프로야구 선수가 이 주사를 맞으려면 금지 약물 사용 면책 신청서인 TUE(Therapeutic Use Exemption)를 KBO 반도핑위원회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김인식 감독 "외국인 선수에 대한 도핑 검사 강화해야"

5월 19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양 팀 더그아웃에서는 논란이 싹튼 금지 약물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김인식 한화 감독은 "외국인 선수에 대한 도핑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 모든 외국인 선수가 연 2회 이상 도핑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변 검사가 아닌 혈액 검사를 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에이즈(AIDS) 검사를 할 때 채취하는 혈액으로 도핑 검사까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전부터 금지 약물 복용이 의심되는 외국인 선수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올 시즌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가운데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와 프란시스코 크루세타는 미국에서, KIA 타이거즈의 릭 구톰슨은 일본에서 금지 약물을 사용하다 적발된 전력이 있다.

외국인 선수 도핑 검사에 대해 이야기하던 김 감독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KIA와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던 오른손 투수 다니엘 리오스로 화제를 돌렸다. 리오스는 2007년 33경기에 등판해 234⅔이닝 동안 22승5패(승률 0.815) 평균자책점 2.07로 다승, 승률, 평균자책점 1위로 투수 부문 3관왕을 달성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2005년 KIA에서 리오스를 퇴출했을 때 직구가 형편없었어. 그런데 나중에 구속이 더 빨라지고 공이 좋아지더라고. 일본에서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걸리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걸린 다음에야 이걸 약물의 영향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

리오스는 지난해 6년간의 국내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진출했다. 그러다 5월 중에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소변 샘플에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하이드록시스타노조롤이 검출돼 6월 28일 방출됐다. 리오스와 비슷한 사례로 2007년 5월 롯데 자이언츠서 방출된 펠릭스 호세가 있다. 롯데를 떠난 호세는 멕시칸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겼지만 도핑 검사에 걸려 50경기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리오스와 호세가 다른 리그에서 도핑 검사에 적발된 건 KBO의 도핑 검사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다. KBO의 도핑 검사는 각 구단 당 3명씩 전체 24명을 대상으로 연 2회 시행하고 있다. KBO는 2007년 1회, 2008년 2회에 걸쳐 총 3회 도핑 검사를 실시해 대상 72명 전원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뛰어난 성적의 외국인 선수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도핑 검사 명단은 양성 검출자만이 공개돼 누가 도핑 검사를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김시진 감독 "국내 선수 포함 전수 조사해야"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은 외국인 선수뿐만 아니라 국내 선수가 모두 포함된 전수 조사를 제안했다. 김감독은 "도핑 검사는 선수 전원이 실시해야 한다. 선수 보호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외국인 선수만 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힘줘 말했다.

그동안 KBO는 전수 조사에 대해 인력 부족과 금전 문제를 들어 난색을 보였다. 의심이 가는 선수들에게 추적 조사를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수 조사가 아닌 이상 특정 선수만 하게 되는 추적 조사의 한계는 명확하다.

KBO는 이미 세 차례의 도핑 검사로 자신감을 갖고 있다. 만약 KBO의 주장대로 프로야구가 금지 약물에 대해 안전하다면 전수 조사가 이뤄질 경우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도핑 검사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선수 보호와 금지 약물 사용의 예방이다.

프로 구단의 한 트레이너는 "도핑 검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전보다 선수들의 약물 성분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감기약도 함부로 먹지 못한다. KBO의 도핑 검사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엄격해 챙길 게 많다"고 털어놨다.

KBO는 5월 14일 시즌 중 외국인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도핑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각 구단 선수들과 트레이너가 모두 준비된 상태라면 국내 선수들까지 포함된 전수 조사를 못할 이유가 없다. 프로야구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팬들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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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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