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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불펜에서는 잘 던졌는데 내일 어떤지가 더 중요하죠."

5월 7일 구리구장에서 경찰청과 경기를 마친 김영직 LG 트윈스 2군 감독이 입을 열었다. 재활군에 있는 외국인 오른손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32)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옥스프링은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올 시즌 단 한번도 1군에 오르지 못했다. 이날 불펜 투구는 옥스프링의 올 시즌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 무대였다.

재활을 거친 투수들은 불펜에서 전력 투구를 한 다음날 통증이 없어야 경기에 꾸준히 나설 수 있다. 만약 통증이 발생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재활 과정을 밟거나 심할 경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옥스프링의 오른쪽 팔꿈치는 정상이 아니었다. 옥스프링은 불펜 투구 다음날인 8일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11일 LG 구단 지정 병원인 김진섭 정형외과에서 검진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옥스프링의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손상돼 수술을 피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당장 수술을 하고 재활을 빨리 끝내도 사실상 올 시즌은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LG는 12일 한국야구위원회에 옥스프링의 웨이버 공시를 신청했다. 그리고 13일 대체 외국인 선수로 릭 바우어(32)를 영입했다. 바우어는 199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텍사스 레인저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 메이저리그에서 뛴 적이 있는 오른손 투수다. LG 이적까지 올 시즌 독립리그 요크 레볼루션에서 3경기에 등판해 14이닝 동안 1승 무패 평균자책점 3.86의 성적을 올렸다.

오른쪽 팔꿈치

옥스프링의 오른쪽 팔꿈치에는 뼛조각이 돌아다니고 있다. 많은 야구 선수들이 옥스프링과 같이 팔꿈치에 뼛조각을 지닌 채 경기를 치른다. 일상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러나 팔꿈치를 많이 쓰는 투수들은 경기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김재박 LG 감독은 4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 명단에 옥스프링을 뺐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컨디션 난조였다. 큰 문제가 없다면 4월 7일부터 잠실서 치르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3연전에는 1군 등록이 가능할 것 같았다. 옥스프링이 늦게 발동이 걸리는 '슬로 스타터'라는 점에서 일시적인 부진 정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옥스프링은 홈 개막전이 열린 7일 잠실구장 불펜에서 다카하시 미치다케 LG 1군 투수 코치가 보는 앞에서 불펜 투구를 마쳤다. 직구 구위는 수준급이었고 슬라이더와 커브 등 변화구도 섞어 던졌다. 공을 받아본 LG 불펜 포수 서인석은 "당장 경기에 나서도 손색이 없다. 변화구는 평소와 비슷했다. 직구는 정상 구위에 80% 정도인데 조금 쉬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LG 구단 관계자들도 단순한 컨디션 난조로 휴식을 가지면 괜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염경엽 LG 운영팀장은 "야구선수치고 팔꿈치에 뼛조각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옥스프링의 팔꿈치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염팀장은 온전하게 펴지지 않는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를 보여줬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의 결과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옥스프링의 컨디션은 올라올 줄 몰랐다. 오히려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심해져 투구를 중단하고 4월 16일 재활군에 합류했다. 재활군에 내려간 옥스프링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없애기 위해 보강 운동에 전념했다.

원래는 비시즌에 했어야 할 훈련이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호주 대표팀에 뽑혀 훈련이 부족한 게 문제로 지적됐다. 옥스프링은 WBC 1라운드를 앞두고 팀 내 계투진과 보직이 겹쳐 최종 명단에서 빠졌고 3월 10일 입국했다. 옥스프링은 "WBC 출전과 부진은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했지만 염팀장은 "WBC에 가면서 보름 정도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한 게 팔꿈치 통증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재박 감독도 "대표팀에 합류하면 정상적인 훈련은 어렵다"고 말했다.

에이스 봉중근에 이어 마운드를 책임져야 할 옥스프링이 2군에 오면서 LG 2군 코칭스태프에 비상이 걸렸다. 김용수 2군 투수 코치는 "옥스프링이 무리한 투구를 하는 건 되도록 피했다. 투구 수도 철저히 조절했다"고 귀띔했다. 김영직 2군 감독 또한 "선발진이 부실한 팀 사정상 빨리 1군에 올려야 했지만 조심 또 조심했다"고 말했다.

옥스프링에 대한 기대는 여전했지만 만약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LG는 옥스프링의 팔꿈치 부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4월 20일 염경엽 운영팀장과 나도현 운영팀 과장을 미국으로 보내 영입 대상이 될 외국인 선수를 찾도록 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시즌 시작과 함께 보금자리를 찾은 상태여서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경력직 선호

시즌 초반 LG는 선발 투수인 박명환과 옥스프링을 예비 전력으로 분류하면서 선발진이 붕괴된 상태였다. 시범경기가 막 끝난 시점에 김재박 감독은 "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투수진이 우려된다. 선발진이 미덥지 못하고 마무리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의외로 불안해 보이던 선발진은 잘 버텼다. 봉중근, 정재복, 심수창, 이범준, 최원호로 짜인 선발진은 5월 14일 현재 12승(14패)을 거두며 선전하고 있다. 구멍이 나지 않은 선발진과 달라진 타력으로 LG는 이날 현재 18승1무16패(승률 0.514)로 3위를 달리며 본격적인 순위 경쟁에 들어갔다. 그 사이 박명환과 옥스프링은 2군에서 재활 훈련을 했다.

LG가 애타게 옥스프링을 기다린 까닭은 그만한 투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2007년 LG는 외국인 선수로 오른손 투수 팀 하리칼라, 외야수 페드로 발데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하리칼라가 16경기에서 86⅓이닝 동안 6승8패 평균자책점 5.21로 부진하자 방출한 뒤 옥스프링을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했다.

2007년 7월 LG에 합류한 옥스프링은 그해 14경기에 출전해 80⅔이닝 동안 4승5패 평균자책점 3.24로 호투했다. LG는 주저하지 않고 재계약했고 지난해 옥스프링은 봉중근의 186⅓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74이닝을 책임지면서 선발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재계약을 낙관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난해 옥스프링은 29경기에 나서 10승10패 평균자책점 3.93의 무난한 성적을 냈다. 최하위인 팀 성적을 고려하더라도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선발 투수치고는 뛰어난 성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던진 이닝보다 8개의 안타를 더 많이 맞았고 볼넷을 77개나 내줘 WHIP(이닝당 안타+볼넷)이 2007년 1.33에서 2008년 1.49까지 올랐다. 에이스 봉중근의 WHIP 1.19와 비교해 실점 확률이 훨씬 높은 불안한 투수였다.

예전 같으면 재계약과 퇴출을 저울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LG는 옥스프링의 재계약에 처음부터 긍정적이었고 결과도 그랬다. LG는 옥스프링이 성실한데다 친화력이 있고 프로 의식이 뛰어난 선수라는 점을 고려해 재계약했다. 더 큰 이유는 옥스프링이 한국 야구를 이해하는 투수라는 사실이었다. 2년간 국내 프로야구에서 뛴 경험을 높이 산 것이다.

염경엽 운영팀장은 "옥스프링은 평균 구속이 시속 140km대 중반으로 경쟁력이 있고 제구력도 나쁘지 않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풀 시즌을 뛰고 10승을 올려 본 투수인 만큼 검증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재계약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염팀장은 "이제 평균 구속이 시속 140km대 초반에 그치는 투수들이나 공이 빨라도 정교한 제구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는 더 이상 국내에서 통하지 않는다. 타자들이 예전보다 변화구를 잘 치고 철저한 분석이 이뤄져 어중간한 투수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년간 옥스프링을 기용했던 김재박 감독도 "외국인 투수로 그만한 선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악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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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군에 포함된 옥스프링의 복귀는 불투명해져 갔다. 2군에서 한번 이상 등판을 한 뒤 1군에 승격될 예정이었지만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등판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대신 재활을 끝낸 박명환과 이동현의 회복세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6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은 박명환은 5월 10일까지 5경기에 출전해 투구 수를 늘려가고 있었고 2007년 11월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동현은 9번 구원 등판해 4홀드를 올렸다. 김용수 2군 투수 코치는 "이동현은 1군에 올라가면 구원 투수로 나설 것이다. 그 같은 등판 형태에 대비해 2군에서 마무리로 기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LG는 박명환과 옥스프링이 5월 중 1군에 올라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옥스프링의 복귀 시점을 오히려 빠르게 잡았다. 하지만 박명환이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단계별 투구 프로그램)를 거쳐 수술을 받은 오른쪽 어깨에 대한 재활을 조기에 마치면서 둘의 상황이 역전됐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던 이동현이 회복세를 보인 게 LG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김영직 LG 2군 감독은 "박명환은 좋은데 옥스프링은 회복세가 더디다"고 말했다. 박명환은 이미 4번의 선발 등판에서 투구 수를 서서히 늘려 100개에 가깝게 던지고 있었다. 김용수 투수 코치는 "박명환이 2군에서 100개의 공을 던지면 1군에서는 50개 정도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선수에 대한 LG 2군 코칭스태프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김감독은 "박명환은 지난해 오른쪽 어깨를 수술해 가능하면 늦게 1군에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옥스프링은 달랐다. 옥스프링은 외국인 선수여서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실전에 투입하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5월 7일 불펜 투구로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자 LG 구단은 옥스프링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옥스프링의 퇴출 소식을 전해 들은 김재박 감독은 옥스프링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퇴출이 확정된 12일 옥스프링은 LG 구단 사무실을 찾아 구단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옥스프링은 이 자리에서 "LG가 꼭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꼭 한국에 와서 LG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LG 구단 관계자는 "모두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외국인 선수와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LG는 옥스프링과 수술 경과와 재활 과정에 대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옥스프링이 재활을 마치고 지난해의 구위를 회복한다면 언제든 다시 불러오겠다는 생각에서다. 옥스프링은 조만간 호주로 떠나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훈련에 전념할 예정이다.

옥스프링 LG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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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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