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사반세기란 말을 무심코 쓰곤 했습니다. '프로야구 25년, 그 때 그 얼굴'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25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한번쯤 정리해 두지 않으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이름들이 많습니다. 투수를 뺀 나머지 선수들은 편의상 포수와 내야수를 묶고, 외야수를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투수편처럼 일부 예외선수를 빼고 '포지션별 올드스타'와 감독 추천선수로 뽑힌 선수들은 기사에서 빠집니다. 강정길 빙그레 이글스 창단 멤버. 호리호리한 체격에 스윙이 날카로웠던 1루수. 초창기 빙그레 다이나마이트 타선에서 '소총수'로 활약했다. 크게 기복 없이 2할7푼대 안팎의 안정된 타율을 유지했다. 구천서 OB 베어스 창단 멤버. 1루를 뺀 내야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 신일고 졸업후 상업은행에서 성인야구 경험을 하고 프로에 입문해 어린 나이에도 안정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유격수 유지훤, 3루수 양세종, 2루수 김광수 등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하며 프로 원년 OB 우승에 한몫을 했다. 금광옥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멤버. 프로 원년 꼴찌팀 삼미의 주전포수 겸 중심타자로 프로 첫 해 힘든 시즌을 보냈다. 백업 포수 최영환과 김진철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 마스크를 썼다. 김경문 OB 베어스 창단 멤버. OB는 프로 첫 해 김경문(고려대) 외에 조범현(인하대), 정종현(한양대) 등 대학야구에서 이름 깨나 날리던 우수 포수가 한꺼번에 입단해 '포수 풍년'을 이뤘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 OB 안방은 김경문이 차지하게 된다. 김광수 OB 베어스 창단 멤버. 작은 키(169cm)였지만 안정된 2루 수비를 자랑했다. 1984년 시즌에는 전 경기(100)에 나설 정도로 수비력을 인정받았다. 타격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2번 또는 하위 타순에 섰다. 김무종 198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1982년 시즌이 끝나고 그해 성적 역순으로 재일동포선수가 배정되는데 삼미슈퍼스타즈로 장명부(투수)와 이영구(내야수)가 갔고, 주동식(투수)과 김무종(포수)은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주동식, 김무종 배터리는 해태가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한 몫을 했다. 김무종, 주동식, 장명부는 1975년 10월 장훈, 김일융, 송일수 등과 함께 재일동포선수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찾은 바 있어 고국무대가 그리 낯설지 만은 않았다. 김민호 1984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김용희, 김용철로 대표되던 롯데 타선의 뒤를 이었다.전형적인 중거리 타자로 1980년대 후반 이후 매 시즌 20개 안팎의 2루타를 날렸다. 1루수. @IMG2@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창단 멤버. 프로원년과 1986년 홈런왕. 올드팬들 가운데에는 '콧수염' 김봉연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와 MBC 청룡이 맞붙었다. 그 때 김봉연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그해 6월 30일 대구에서 열린 올스타전을 앞두고 김봉연은 전라도 지역에서 지인과 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큰 부상이었지만 김봉연은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툴툴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코 아래 상처가 보기 싫었다. 상처를 감추느라 콧수염을 길렀고, '콧수염' 김봉연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19타수 9안타 8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모두가 놀란 활약이었다. 교통사고의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을 이겨낸 인간 승리였다. 김봉연은 교통사고가 없었으면 올스타전에서도 MVP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김봉연은 올스타전이 벌어지기 전에 끝난 전기리그의 홈런과 타점 1위였다. 김봉연은 이번 올드스타 감독 추천 지명타자로 올라 있지만 프로원년에는 1루수로 많이 뛰어 내야수로 소개한다. 김상훈 1984년 MBC 청룡 입단. 첫 해 75안타 이후 1985년부터 6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전형적인 중거리타자로 입단 7시즌만에 통산 100개 2루타를 넘어섰다. 깔끔한 외모 만큼 정제된 스윙을 했다. 1루수. 김성래 1984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1987년 홈런왕. 18개의 이만수(삼성), 15개의 김성한(해태),14개의 이광은(MBC)을 제치고 22개로 홈런 1위가 됐다. 삼성이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한 이후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맞았다. 3루수.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창단 멤버. 올드스타 1루수로 선정돼 있지만 워낙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 따로 소개한다. 김성한은 1982년 5월 16일 삼성전에서 3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다.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가 5회부터 방수원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고, 8회 김용남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3루수로 갔다. 이런 식으로 김성한은 프로야구 원년 그라운드 곳곳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10승대 투수에 3할대 타자, 그리고 원년 타점왕까지. 김용달 MBC 청룡 창단 멤버. 이름에서 비롯된 '용달차'라는 별명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이 많을 것이다. 김용윤(김바위로 개명), 유승안과 원년 MBC 1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김용철 롯데 자이언츠 창단 멤버. 김용희와 함께 롯데 타선을 이끌었다. 1984년 홈런 2위(21개, 1위 이만수 23개)를 차지할 정도의 장타력도 있고, 3할대 안팎의 정교함도 지니고 있었다. 1988년 시즌이 끝난 뒤인 12월 장효조와 맞바뀌어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11월 김시진<->최동원 트레이드에 이은 삼성-롯데의 2차 대형트레이드였다. 1루수. 김인식 MBC 청룡 창단 멤버. 1982년 80게임으로 시작해 1987년 시즌까지 그의 개인기록에 있는 출장경기수는 팀 경기수와 일치한다. 이제는 최태원(SK)이나, 김형석(OB) 등 후배들에게 밀려 있지만 프로야구 초창기 그의 606경기 연속 출장기록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원년 18개의 몸에 맞는 공 기록은 그의 파이팅 정신을 말해준다. 2루수. 김한근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원년 삼성의 주전 3루수. 김성래의 입단 등으로 팀내 입지가 좁아졌다. 1985년 시즌 중 박찬, 송상진 등과 빙그레로 트레이드됐다. 다른 구단에 비해 선수층이 두꺼웠던 삼성은 이후에도 성낙수, 김성갑, 황병일, 임순태 등을 신생팀 빙그레의 전력 강화를 위해 내줬다. 그래서 초창기 빙그레를 '삼성 2군'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었다. 서정환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그러나 이듬해 곧바로 해태로 트레이드됐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트레이드가 되면 마치 죽으러 가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서정환은 이같은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공로자다. 해태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은 서정환은 1980년대 해태 전성기 내야진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IMG3@신경식 OB 베어스 창단 멤버. 내야수들의 부정확한 송구도 188cm의 큰 키에 유난히 긴 다리를 쭉 뻗어 척척 받아 올렸다. 1루수 신경식의 멋진 포구 동작이 아니었다면 프로 원년 25개의 실책을 저지른 유격수 유지훤의 실책수는 30개를 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심재원 1983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1970년대 후반 한국야구가 세계로 나아갈 때 대표팀의 안방을 든든히 지킨 영리한 포수였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선수의 프로진출 유보 방침에 따라 1983년, 우리나라 나이로 31살의 나이로 프로에 입문했다. 그리고 롯데가 삼성을 4승3패로 누르고 1984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섰을 때 주전 마스크는 후배 한문연이 쓰고 있었다. 1994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양세종 OB 베어스 창단 멤버. 올해 고교야구는 서울 장충고가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 2관왕에 오른 게 최고의 화제다. 프로야구 초창기 장충고가 낳은 스타플레이어를 꼽으라면 OB 주전 3루수 양세종이다. 기록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 1990년 폐지된 '승리타점상'의 초대 수상자다. 1984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한 뒤 1987년 시즌 복귀했다. 오대석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프로야구 첫 사이클링히트의 주인공. 1982년 6월 12일 삼미전에서 나온 기록으로 한국야구에서는 아마추어 시절 건국대 황병일(1980년 4월), 대구상고 이종두(1980년 8월)만이 기록했던 진기록이었다. 유격수 수비도 뛰어났다. '삼성맨'으로 남을 것 같던 그는 1988년 11월 김시진·오대석·허규옥·전용원<->최동원·오명록·김성현의 프로야구 출범이후 최대 규모 트레이드에 끼어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이광은 MBC 청룡 창단 멤버. 대학시절(연세대)까지만 해도 투타 만능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프로에서는 3루수로 자리 잡았다. 신언호와 배재고→연세대를 거쳐 MBC에서도 함께 뛴 흔치 않은 인연을 갖고 있으며 1970년대 여자농구 국가대표 이옥자가 친누나다. 이선웅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 입단. 김진우, 정구선 등과 함께 약체 삼미의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멤버로 이듬해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팀명이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로 바뀌는 가운데에도 팀을 지켰다. 내야수(3루수)로서는 다소 통통한 몸매였지만 동작은 날렵했다. 정구선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 입단. 안정된 2루 수비에 전성기 2할6푼대 안팎의 타율과 시즌 1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일정 수준의 장타력 등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1987년 8월 롯데 소속으로 전 소속팀인 청보를 상대로 한국프로야구 3호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조충열 해태 타이거즈 창단 멤버. 20명이 채 안되는 선수로 프로 첫 시즌을 치른 해태에게 조충열은 그의 별명 '땅콩'이 아닌 '감초'였다. 주로 유격수로 2루수도 보면서 프로 원년 전 경기(80)를 소화했다. 차영화 1982년 해태 창단 멤버. 날렵한 몸매에 물찬 제비같은 2루 수비를 펼치던 차영화를 기억하는 해태팬들이 많을 것이다. 또 김일권·김성한·김종모·김봉연·김종윤 등 김씨 일색이던 라인업에서 '비 김씨'로 차영화를 추억하는 이도 적지 않으리라. 한문연 1983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동아대 재학중이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멤버. 입단 이듬해인 1984년 시즌 일약 주전포수로 자리 잡은 뒤 그해 10월 9일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삼성을 6-4로 잡고 최동원과 감격의 '하이 파이브'를 하는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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