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참 투박했습니다. 신나는 응원가도 없었습니다. 화려한 응원도구도 없었습니다.

이회택, 박이천이 공을 몰고 상대 진영으로 밀고 들어가면 그냥 "와~"하고 소리 지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응원을 조직적으로 하지 못해 한 차례 함성을 지르고 나면 그 다음엔 썰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힘을 모아 응원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빨간 마후라',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 같은 대중가요입니다. 한국이 골을 넣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해 신이 나면 함께 불러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노란~'은 그런대로 리듬감이 있었지만 '빨간~'은 영 아니었습니다. 두어 차례 불러 봤지만 역시 썰렁했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요즘처럼 눈 만 뜨면, 거리에만 나서면 온통 월드컵은 아니었지만 올림픽이나 월드컵 예선 같은 큰 경기가 열리는 서울운동장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2만5천여 관중이 통로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꽉꽉 들어찼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지만 축구 보는 재미에 엉덩이가 아픈 줄 몰랐습니다.

그냥 축구가 좋았지만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욕을 했습니다. 1971년 9월 뮌헨올림픽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 0-1로 졌을 때입니다.

그날 경기 내내 주룩 주룩 비가 내렸습니다. 스탠드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빗물에 깔개로 쓴 신문지는 죽처럼 뭉개졌습니다. 게다가 이쪽저쪽 우산에서는 빗물이 계속 흘러 내렸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었습니다.

한국은 미드필더들까지 나서 말레이시아 골문을 두들겼지만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화가 난 어른들은 본부석으로 몰려가 대한축구협회를 성토했습니다. 요즘은 게시판에다가 화풀이를 합니다. 방법만 다를 뿐이죠.

컬러 TV가 보급되고 한국 축구가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외형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1980년대에도 축구 응원문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면 동네 아저씨들이 구멍가게 앞에 모여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컬러 TV로 대표팀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한 정도입니다.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나 1986년 멕시코월드컵대회 때나 집에서 TV를 보며 소리를 지르는 게 가장 열렬한 응원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경기기도 했지만 축구 응원이 아직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994년 미국월드컵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년여 전 축구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붉은 악마'가 광화문에 나타난 겁니다.

저는 그 해 6월 21일 새벽 광화문 네거리를 잊지 못합니다. 네덜란드에 0-5 참패. 멕시코에 1-3으로 진 데 이어 월드컵 1라운드 통과의 꿈은 또 사라졌습니다. 그날도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는 한국 선수들은 풀이 잔뜩 죽어 있었습니다.

몇몇 열혈 '붉은 악마'는 차도에 걸터앉아 "꺼이꺼이" 소리 내며 울고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 나이도 꽤 먹었지만 그 장면을 보고 저도 울컥했습니다. '다음에는 잘 하겠지' 그렇게 혼자 생각하며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축구와 관련된, 스치듯 지나가는 이런 생각들 속에는 그때는 투박했지만 순수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론 왠지 요즘은 '축구'외 것들이 끼어들면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 1973년 11월 벌어진 한국-호주의 1974년 서독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최종 2차전 경기 장면입니다.
ⓒ 대한축구협회
사진에서 보듯 1970년대 서울운동장에서 주요 국제경기가 열리면 관중석 통로까지 축구팬들이 들어차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김재한, 고재욱의 골로 2-0으로 앞서 나갔으나, 호주의 반격에 밀려 2-2로 비겼습니다. 시드니 원정 1차전에서 0-0으로 비겨 2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한국과 호주는 홍콩에서 최종 3차전을 치렀습니다.

다 잡은 본선 티켓을 놓쳐 맥이 빠진 한국은 0-1로 져 본선 진출의 꿈을 12년 뒤로 미루게 됩니다. 호주는 이때 월드컵 본선에 처음 나간 뒤 스코틀랜드(1986년 멕시코 대회), 아르헨티나(1994년 미국 대회), 이란(1998년 프랑스 대회), 우루과이(2002년 한일대회) 등과의 대륙 간 플레이오프에서 잇따라 쓴 잔을 마시다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우루과이와의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르게 됐습니다.
2006-05-24 16:3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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