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있은 '충청포럼'이라는 모임에서 딕 아드보카트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례적으로 자신이 어렵게 성장한 과정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갔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태어난 1947년은 아시는 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2년이 지난해로 독일 점령군에 의해 그의 조국 네덜란드는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 져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사정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부모는 다섯 자녀를 키우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일해야 했다고 합니다. 우리네 부모의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눈물겨운 시절이었을 겁니다. 운동을 좋아했던 소년 아드보카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축구공이었습니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축구에 매달렸습니다. 그가 축구를 한 것은 그 시절에 가장 값싸게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40여 년을 뒤로 날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1960년대에 제가 잠시 다닌 서울 은평국민(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는데 아동복지시설에 있는 친구들이 주력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 축구는 우리 모두에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국가대표 경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36살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프로 클럽에서 500경기 이상 뛰어 지도자의 자질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행운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주변에는 그를 도와준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축구팬들도 잘 아는 리누스 미셸 감독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하루종일 축구에 대해 공부한 게 오늘의 자신을 이끌었다고 말했습니다. 행운이 아닌 것입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그에게 자신감이란 훈장이 달린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는 자기소개 때는 물론 참석자들과 나눈 질의응답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말에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그를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4년 전 저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서 아드보카트 감독과 같은 자신감을 봤습니다. 다음은 지금부터 4년4개월여 전에 제가 쓴 기사입니다. 다소 길지만 아드보카트 감독과 히딩크 감독을 들여다 보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아드보카트 감독(좌)과 히딩크 감독(우)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히딩크 감독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습니다. 물론 수다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말을 쏟아 냈습니다. 특히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해 많은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게 아니라 각급 학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둬 달라고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습니다. 감독 자신의 스케줄도 워낙 빡빡했지만 인터뷰에 합류할 허정무, 신문선 두 분의 일정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일정을 잡았는데 결국 허정무 위원은 방송녹화 관계로 약속시간인 오후 6시30분(2001년 11월 29일,서울 하얏트호텔=히딩크감독 숙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진행중에 들어온 허정무 위원을, 히딩크감독은 '융무'라고 크게 부르며 반갑게 맞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조추첨행사 이틀 전에 있었는데 조추첨행사가 끝나고 나니 히딩크 감독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군요. 히딩크 감독은 "감독 자신부터 용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수들에겐 '파괴적인 투쟁력'을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이야기해 왔던 '정신력'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내용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주요 국제대회를 앞두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도 하기 전에 주눅이 들어 준비했던 내용을 보여 주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2년 대회에서는 이 같은 일이 없어야겠지요.

한국은 세계 최강 수준 나라들과의 경기에서 선전한 예가 꽤 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2-3 승부, 1994년 미국월드컵의 스페인전 2-2 무승부, 같은 대회 독일과의 2-3 대접전 등. 포르투갈도 위의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더구나 1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붙게 돼 있잖습니까.

2시간에 가까운 인터뷰였는데 대한축구협회 허진 언론담당관이나 제 후배 박정욱 기자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이 그렇게 긴 시간, 열정적으로 인터뷰한 것은 한국에 온 이후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긴 인터뷰를 해도 '신문용 답변'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기자로서는 그 같은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합니다만. 감독으로서 특정선수를 거론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부분입니다. 바로 그 부분을 찔러 봤습니다. 송종국 선수에 대해 곧바로 물었습니다. "그를 계속 중앙수비수로 쓸 것인가."

히딩크 감독은 송종국에 대해 상당한 믿음이 있는 듯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당시 23살의 스탐이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력 수비수로 훌륭한 경기내용을 보여 줬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어린 선수여도 경기를 잘하면 카리스마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축구의 끝이 아니다. 한국축구는 이 대회를 계기로 더욱 발전해야 한다. 솔직히 한국축구의 약점을 지적해 달라"고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해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특유의 위계질서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짚었습니다. 대부분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언젠가는 제대로 된 체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만 그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번 정리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용감했습니다. 저는 2002년 대회에 나서는 국가대표팀도 용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축구팬도 용감해야 합니다. 있는 기량을 제대로 다 보여 주자는 겁니다.

히딩크 감독은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세계수준급 나라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당연한 의무라면서.
2006-04-07 13:5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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