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널어놓고 '기념촬영', 이젠 아무렇지 않아요

[국토대장정 ⑫] 9월 5일, 세종시에 도착... 339km를 걸었다

등록 2012.09.06 11:12수정 2012.09.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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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규


국토대장정 12일차, 총 거리 522km가운데 339km 지점에 도착했다. 점점 걸어야 하는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집에 갈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집 떠난 지 열흘이 넘어서자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점점 노숙자의 자세를 갖춰가고 있다. 그건 대장정에 참여해서 걷는 이나 옆에서 보조를 하는 이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숙소인 마을회관에 도착하면 빨래를 하기 바쁘고, 볕이 사라지기 전에 빨래를 널어 말리려는 경쟁마저 벌어진다. 특히 비가 내려 전신이 흠뻑 젖은 날은 더 심하다. 빗물에 푹 젖은 신발도 말려야 하니 더더욱 그렇다.

지원업무를 담당한 이들 역시 지원차량이 조금 오래 멈춰 선다 싶으면 볕에 빨래를 말리기 바쁘다. 차량 지붕 위에 팬티를 걸어놓는 것쯤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단계에 들어섰다. 볕에 널어놓은 팬티가 사라졌다면서 수소문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팬티를 널어놓고 옆에 서서 기념촬영도 서슴지 않는 철면피(?)가 되어 가는 중이다.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냥 보기만 해도 알겠는 것을...

채인석 화성시장은 오늘(9월 5일), 대전시 흑석동 마을회관부터 세종시 금남면 용포리 마을회관까지 29km를 걸었다. 확실히 어제, 무리했다. 37km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리고 오늘, 연이어 29km를 걸었으니, 엄청난 강행군이 아닐 수 없다. 일정을 마친 채 시장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힘겹게 걸었다.

대장정 일정이 끝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근육이 축 늘어지는 것 같아 앉거나 일어서기가 쉽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 또한 만만치 않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에구구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걸었던 날 중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을 것이다.

평소보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하니 채 시장은 말없이 그냥 웃는다.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냥 보기만 해도 알겠는 것을.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친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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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규


어젯밤 채 시장 일행이 묵었던 흑석동 마을회관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지 내부시설이 아주 깔끔하면서 널찍했다. 마을 어르신들도 밝은 표정으로 채 시장 일행을 맞이했다. 이 마을회관의 어르신들은 마음이 넉넉해 보인다. 확실히 들르는 마을회관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땅이 다르고, 사는 사람이 다르고, 형편이 각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는 흑석동 마을회관이 아닌 다른 지역의 마을회관에서 묵을 예정이었는데, 숙박을 거절당했다. 그래서 급하게 오늘밤에 묵을 마을회관을 하루 앞당겨서 어제 묵기로 한 것이다.

채 시장은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마을회관들을 들러보니 "화성시로 돌아가면 마을회관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마을회관이 경로당의 기능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네를 찾은 손님들의 숙박시설을 겸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마을회관 덕을 톡톡히 보는 것도 채 시장의 이런 결심에 한몫을 거들고 있는 셈이다.

오늘, 새벽 5시 20분쯤 마을회관 안을 들여다보면서 기웃거리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슬쩍 친다. 채 시장이다. 어, 마을회관에서 안 주무셨나? 물었더니 차에서 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제 그렇게 무리를 했는데 차에서 잤어요? 어젯밤 늦게 손님들이 찾아와서 채 시장은 결국 차에서 잤다고 누군가 귀띔을 한다. 힘들게 걸은 뒤에는 푹 쉬는 게 가장 중요한데,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다,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모절차 통해 가장 적합한 곳 선정해달라는 것"

새벽 5시 반, 어제보다 어둠이 더 짙은 것 같다. 흐린 날씨 탓이리라. 비가 몇 방울 흩뿌려지고 있었다. 오늘도 비가 오려나?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어둠이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선뜩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진짜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오늘 준비체조에 참여한 인원은 12명. 5시 45분, 어둠을 뚫고 채 시장 일행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도 채 시장은 오늘 일정인 29km를 오전에 다 걸을 예정이었다. 오후에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면담한다.

오늘은 대전시로 들어온 만큼 대전 시내 일부를 통과한다. 확실히 대도시의 도로는 다르다. 달리는 차량이 많다. 거대한 트럭이 지날 때마다 거친 바람이 일면서 몸이 흔들린다. 횡단보도도 여러 차례 건너야 했다.

대장정 깃발을 앞세우고 걷는 채 시장 일행은 어딜 가나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홍보효과는 제대로 거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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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규


오늘 채 시장 일행은 대전시를 통과해 세종시에 들어간다. 최종 목적지인 용포리 마을회관이 바로 세종시에 속한다. 세종시는 자연사박물관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 세종시에 자연사박물관이 건립되는 게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채 시장을 포함한 화성시청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린 것처럼 보인다.

"화성시에 무조건 자연사 박물관을 유치하겠다는 건 아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모절차를 통해서 가장 적합한 곳을 선정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화성시가 공룡화석이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었고,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기 때문에 최적지라고 생각한다. 공모절차를 거친다면 자연사 박물관 유치 의사를 가진 자치단체들이 응모할 것이고, 그 가운데 가장 적합한 곳을 선정하면 되지 않겠나."

채 시장은 오늘도 이렇게 강조했다.

완주 예정 3인방 중 1인 한진안씨 "지역 현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비가 내릴 것처럼 꾸물거리던 날씨가 해가 뜨면서 차츰 맑아지기 시작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또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다시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을 걷는 이들의 발소리가 도로를 울린다. 잿빛 구름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구름 색깔이 맑게 변해간다. 그리고 갑자기 쨍하면서 햇볕이 나기 시작했다. 땡볕이 시작될 조짐이다.

채 시장의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인다. 국토대장정 12일차, 피로의 무게가 두 어깨를 잔뜩 짓누르고 있을 터. 그건 아마도 이번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쉬고 싶고, 걸음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국토대장정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지역 현안에 눈을 뜨게 되어 끝까지 걷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게 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화성시민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완주 예정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한진안씨는 "국토대장정에 참여하고 싶어 회사에 휴가를 냈고, 화성시청에 국토대장정을 하는 동안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처음에는 국토대장정만 생각했는데 채 시장과 같이 걸으면서 지역 현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자연사박물관을 우리 화성시가 꼭 유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걷고 있다"고 강조했다.

12km를 걸은 뒤,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낮 12시 20분경 오늘의 목적지인 세종시 금남면 용포리에 도착했다. 어제는 폭우가 쏟아지더니 오늘은 땡볕이 이어졌다. 오전에 걷는 일정을 다 소화했기에 망정이지, 오후까지 계속 걸었다면 땡볕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용포리 인근 식당에서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을 서둘러 비운 채 시장은 새롭게 잡힌 물집을 터뜨릴 겨를도 없이 지원차량에 올라 대전시로 출발했다. 오늘은 대전복합버스터미널에 화성시 기배동과 화산동 주민들이 서명 부스를 세웠기 때문이다. 50~60명은 족히 될 것 같은 화성시민들이 땡볕 아래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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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와 만난 채인석 화성시장 ⓒ 정원규


오후 3시 10분경, 채 시장은 충남도청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었으나, 안 지사는 채 시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채 시장은 안 지사에게 화성에서 화석이 발견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공룡 그림을 보여주면서 자연사박물관 유치를 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안 지사는 집무실로 채 시장 일행을 안내, 구글지도를 통해 화석이 발견된 장소를 같이 확인했다.

안희정 지사는 자연사박물관과 관련, 지지 서명을 할 수 없는 입장임을 설명하면서 채 시장의 노력에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는 의사를 밝혔다. 채 시장의 주장대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화성시가 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사표시였다. 안 지사는 매향리 생태공원과 화성호 해수유통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찬성의사를 나타냈다.

"안 지사의 따뜻한 환대가 정말 고맙다. 안 지사는 언제 만나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분이다. 힘들여 걸어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안 지사를 만나고 나오면서 채 시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채인석 #국토대장정 #화성시 #안희정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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