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 포도 송이채 들고 따 먹으며 걷는 맛, 일품이네

[국토대장정 ③] 8월 26일, 26km를 걷다

등록 2012.08.27 12:48수정 2012.08.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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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3일째. ⓒ 유혜준


신성마을 마을회관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겉으로 볼 때는 그리 허술하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면 지린내가 진동했다. 그 냄새, 온 마을회관 안에 퍼져 있어서 잠을 잘 때도 벗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뿐인가, 개미들은 어찌나 많던지 회관 안에 개미집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국토대장정 이틀 일정을 마친 채인석 화성시장은 계곡면사무소 마당 안에 텐트를 치고 잤기 때문에 지린내의 공습을 면할 수 있었다. 지린내 때문에 자다가 깨다가 반복하면서 나도 면사무소 앞에 텐트를 치고 잤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채 시장을 부러워했다.

오늘도 정해진 출발시간은 새벽 5시. 어제 아침보다 새벽어둠이 더 짙은 것 같았다. 어젯밤 쏟아질 것처럼 초롱거리면서 빛나던 별들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다. 체조로 가볍게 몸을 푼 채인석 시장은 "사흘째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걸어야 할 것 같다"며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오늘 걸어야 할 길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해남읍 계곡면사무소 앞에서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녹색체험관까지 거리는 26km. 어젯밤, 별이 초롱거리면서 빛났으니 분명히 비는 내리지 않을 터. 날씨는 맑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태풍 볼라벤이 올라오고 있다는데 그런 징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채 시장은 북상하는 태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국토대장정을 하고 있지만,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해서 화성시가 피해를 입게 된다면 시장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걱정이다. 태풍이 화성시 인근에 상륙한다는 28일에는 화성시에 있어야 할 것 같다. 태풍이 다행히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물러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토대장정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태풍 피해 입는다면 국토대장정 접어야 하는 상황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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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은 뒤 땀에 젖은 머리를 씻고 있는 채인석 화성시장 ⓒ 최규석


채 시장은 일정이 하루 당겨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오늘 일정을 전부 소화한 뒤 오후에 내일 걸어야 하는 구간 10km를 더 걸어야할 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래야 일정을 더 늘리지 않고 522km를 완주할 수 있다는 게 채 시장의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채 시장은 오늘 예정된 구간만 완주했다. 용주사 인해 스님이 채 시장을 격려차 방문했고, 하만용 화성시의장 역시 채 시장 응원하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하 의장은 목포 평화공원에서 마도면 주민들과 함께 채 시장 국토대장정 지지 서명을 받았다.

새벽 5시 10분, 어둠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길에 채 시장은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길 위로 나서는 채 시장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보였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양발의 엄지발가락 밑 부분 발바닥에 물집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물집이 마르지 않는 샘도 아니건만 짜내도 짜내도 투명한 진물이 퐁퐁 솟아났다. 거기다가 덤으로 통증까지 팍팍 느껴졌다.

이 상태로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스러워졌다. 그래도 일단은 걸어보자. 정 걷기 힘들면 그 때 가서 포기해도 된다. 통증은 걸을 때는 덜 느껴지지 않던가. 고작 사흘째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남은 18일의 일정은 어쩌려고? 걱정스러웠다. 쌩쌩하게 걸음을 내딛는 채 시장이 어찌나 부럽던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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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석


오늘 채 시장과 함께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사람은 대략 15명 정도. 채 시장의 죽마고우가 중학교 3학년인 딸과 함께 참여했고, 화성시 이장단에서 몇몇 사람이 동참해서 인원이 늘어난 것이다. 어제 채 시장과 빡세게 걸었던 이 가운데 몇몇은 발 혹은 발목에 탈이 나서 걷기를 포기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채 시장이 너무 빨리 걸어서 따라 잡으려다가 탈이 났다"고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들은 걷기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는 발바닥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지만, 10여 분쯤 걸으니 점점 느낌이 둔해졌다. 그렇더라도 통증이 쉬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발과 오른발에 번갈아 가며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아픔이라면 오늘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채 시장 일행은 걷기 시작한지 십여 분이 채 되기 전에 벌써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길 위에는 나 홀로 남았다. 오늘도 나는 내 페이스대로 걸으리라, 마음을 다졌다. 조금씩 사위가 밝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길 끝에는 안개가 끼었다. 한 아낙이 농사용 수레를 밀면서 안개 속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농촌마을 역시 아침이 일찍 시작된다.

포도 몇 알이면 갈증과 허기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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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은 뒤 일행과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채인석 시장 ⓒ 유혜준


화성시는 송산면의 포도가 유명하다. 그 사실을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송산면에서 생산된 송산포도를 주민들이 잔뜩 실어 보낸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그 포도로 만든 포도즙 역시 보내왔다. 단맛이 폭 든 송산 포도는 정말 맛있었다.

이른 아침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한 시간 남짓 걷다보면 슬슬 갈증과 허기가 몰려온다. 아침식사 예정시간은 오전 8시. 최소한 2시간 이상은 허기를 참고 걸어야한다는 결론. 이럴 때 포도 몇 알이면 갈증과 허기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포도를 송이채 들고 한 알 한 알 따서 먹으면서 걷는 맛, 아주 일품이다.

국토대장정 일행 가운데는 송산면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 집에서 재배한 포도가 가장 맛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송산면 중송리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윤통일 한국농업경영인 화성시연합회장은 "우리 집 게 최고다. 다른 건 우리 것을 못 따라 온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송산면의 포도는 한 송이씩 종이로 싸서 재배하기 때문에 농약 걱정이 없다는 것이 윤 회장의 주장이다.

하긴 걸으면서 먹은 포도는 씻지 않고 비닐 포장에서 곧바로 꺼내 먹었다. 다들 그렇게 먹었기 때문에 나도 그랬는데, 포도 생산자들이 그렇게 먹는다는 건 그만큼 포도의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지.

한 시간쯤 걸은 뒤 채 시장과 일행은 버스정류장 앞에 털썩 주저앉아 갈증을 달래기 위해 포도즙을 마셨다. "우리 화성시 것은 다르다"는 주장에 나도 하나 받아서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하긴 걸으면서 땀을 흠뻑 흘린 상황에서 무엇인들 맛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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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7시 30분, 길가의 식당에서 콩나물국밥과 곰탕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2시간 20분 만에 채 시장은 12km를 걸었다. 여전히 기운 찬 채 시장의 발걸음 덕분에 그와 함께 보조를 맞추던 이들은 가끔은 구르듯이 달려서 채 시장을 따라가야 했다고 불평을 했다. 하지만 불평은 할 때뿐이고 그들은 다시 길 위로 나서면 채 시장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걸었다.

채 시장은 오늘도 26km 행군을 오전 11시에 마쳤다. 목적지인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녹색체험관에 도착한 채 시장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에 얼굴이 익은 탓도 있지만, 오늘은 걷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흘째가 고비라더니 사실이더라고 채 시장은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말했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무거워졌더란다. 그뿐만 아니라 발뒤꿈치에 물집이 4개나 잡혔단다. 물집이 잡히니까 걷는 것보다 달리는 게 덜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채 시장은 털어놓았다. 오늘 채 시장을 괴롭힌 것은 무섭게 내리쬐인 뙤약볕. 덕분에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비가 내릴 때 걷는 게 확실히 좋았다. 땡볕 아래를 걷는 게 더 힘들더라. 땀도 쏟아지고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일정을 마칠 수 있어서 좋다."

사흘째가 고비라더니... 뙤약볕 아래서 물집으로 고생한 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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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다른 이들은 이로써 일정이 끝났지만 채 시장의 일정은 남아 있었다. 목포 평화공원과 목포역에서 화성시 마도면과 팔탄면 주민들이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을 나선 이유를 알리고 지지서명을 받고 있었던 것. 그들을 만나러 채 시장은 풀리기 시작한 근육을 추스르면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는 채 시장의 뒷모습이 비틀거렸다. 사흘 동안 78km를 걸었으니 온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당연할 터.

채 시장은 오늘 일정을 잘 소화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5km를 남겨둔 지점에서 결국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발바닥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 '오늘만 날이 아니다. 내일을 기약하자'면서 보조차량에 몸을 실었다. 이런 경우, 솔직히 분하고 억울하고 안타까워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더라. 차에 올라타니 마냥 편하고 좋더라는 얘기. 그래도 오늘 20km는 걸었잖아,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예 안 걸은 것은 아니니까.

내일은 다시 걷기에 도전할 작정이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도저히 못 걸을 것 같으면 그 때 포기해도 늦지 않으리.

목포 앞바다가 잔잔하게 펼쳐진 목포 평화공원에서는 화성시 마도면 주민들이 땡볕 아래서 지지서명을 받고 있었다. 채인석 시장이 522km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이유는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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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방문을 한 용주사 인해스님이 채인석 시장에게 전통차를 선물했다. ⓒ 최규석


한국의 유일한 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화석이 발견된 화성시에 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 매향리 미군 사격장에 생태공원을 전액 국비를 들여서 조성해달라는 것, 화성호를 담수화 하지 말고 해수유통을 하게 놔두라는 것. 이 세 가지는 기초자치단체장인 채인석 화성시장의 능력을 넘어 중앙정부에 권한이 있기 때문에 채 시장은 이를 관철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토대장정을 선택했다.

일부에서는 채 시장의 이런 행보를 '쇼'라면서 비난하기도 한다. 채 시장은 이런 비난에 대해 "진정성이 있다면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있을 것"이라면서 낙관하고 있다. 이런 채 시장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위해 화성시민들은 번갈아가며 해남까지 내려와 채 시장과 함께 걷고 있다.

현재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의 최대 변수는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는 태풍 '볼라벤'이다. 볼라벤은 28일 오후 3시경 화성 인근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태풍이 큰 피해 없이 물러간다면 채 시장은 부담 없이 다시 길 위로 나설 수 있겠지만, 만일 피해가 생긴다면 화성시의 현안을 놔둔 채 화성시를 떠날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다.

내일 채 시장은 망호리 녹색체험관에서 출발해 나주시까지 28km를 걸을 뒤, 다시 화성으로 돌아가 밤새 화성시청에서 대기하면서 태풍의 상황을 체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토대장정 ①] 8월 24일, 화성 원님, 522km 걷는 '개고생' 왜 선택했나
[국토대장정 ②] 8월 25일, 이게 무슨 국토대장정이야... 볼멘 소리 왜?
#채인석 #국토대장정 #화성시장 #볼라벤 #송산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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