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세게 걸으려다 '제대로' 넘어졌다

[국토대장정 ⑧] 9월 1일, 하루가 너무 길어

등록 2012.09.02 12:36수정 2012.09.0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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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을 걸으면서 호흡을 조절하는 채인석 시장 ⓒ 정원규


국토대장정 8일차, 채인석 화성시장이 조금씩 지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어지간하면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그가 지나가는 말로 컨디션을 물어본 내게 "오늘은 힘드네요" 하면서 속내를 드러냈던 것이다. 왜 힘들지 않겠나. 8일째 이른 새벽부터 시속 6km의 속도로 하루에 25km 이상을 걷는 강행군을 하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을까? 나도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있구만.

힘들다는 핑계로 지난 이틀간 제대로 걷지 않고 게으름을 피웠더니 오늘(9월 1일)은 빡세게 제대로 걷고 싶어졌다. 어제는 새벽 4시에 별을 보면서 대장정을 시작했지만, 채 시장이 지친 탓인지 오늘은 오전 5시 30분으로 출발시간이 늦췄다. 새벽 4시경에 일찌감치 일어나서 두꺼운 양말을 찾아 신고 신발끈을 단단히 조였다. 오늘은 신나게 한 번 걸어보자.

5시 40분, 채 시장은 준비체조를 마치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내 페이스대로 걷던 다른 때와 달리 채 시장이 걷는 속도에 맞춰 걸으리라 작정했다. 역시나 채 시장의 걸음은 여전히 빨랐다. 채 시장과 함께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조를 맞춰 걸었던 박승권 회장과 한진안씨가 오늘도 여전히 채 시장의 곁과 뒤에서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짐작컨대 채 시장 외에 그 두 사람 만이 522km 국토대장정을 완주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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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안씨, 채인석 시장, 박승권 회장이 완주를 다짐했다. ⓒ 정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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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완주 예정 3인방의 튼실한 종아리들. 누구 종아리가 가장 굵을까? ⓒ 정원규


채 시장도 대단하지만 이들 두 사람도 대단하다. 발에 물집이 잡혀서 반창고와 밴드를 덕지덕지 붙였지만 아프다는 불평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정도쯤이야 참을 수 있어, 하는 것이다.

채 시장과 이들 두 사람 뒤를 따라 걷는 건 솔직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여전히 이들은 시속 6km 이상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체화되어 버린 것 같은 인상마저 풍긴다. 내 평균 속도인 시속 4km에 2km를 보태 열심히 걸었다. 평소보다 1.5배의 속력을 낸 것이다.

예상보다 힘들지 않다. 나도 빠르게 걸으면 걸을 수 있다. 그렇게 걷지 않고 '놀멘 놀멘' 걸을 뿐이지. 그런데, 날을 잘못 골랐다. 도보가 아니라 경보 수준인 채 시장 일행의 걸음이 오늘따라 구보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었던 것.

1호선 국도와 옛 국도를 따라 걷노라면 건널목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런 구간은 질주하는 자동차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존재. 때문에 그런 구간을 지날 때면 거의 달음박질치다시피 해야 한다. 그러니 자연히 도보가 구보로 변할 수밖에.


걷다가 뒤로 자빠져 봤어도 앞으로 엎어지기는 또 처음이네

그래도 빡세게 걸을 작정을 해서인지 채 시장과 일행을 놓치지 않고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붙었다. 문제는 1시간 반가량 걸은 뒤에 일어났다. 내 뒤에서 걸어오던 일행 한 사람이 내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었던 것. 그 순간 그 사람의 발에 내 발이 걸려 몸의 균형을 잃고 그대로 팍 엎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팔을 앞으로 쭉 편 상태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넘어졌다.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그 상황에서도 이거 박살난 거 아냐,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로. 나중에 확인하니 다행히 멀쩡했다.

같이 걷던 이들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는 기척이 느껴졌다. 서둘러 일어났는데 정신이 없다.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심호흡을 했다. 거참, 걷다가 뒤로 자빠져 봤어도 앞으로 엎어지기는 또 처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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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규


눈을 감고 몸에 어떤 통증이 느껴지는지 확인했다. 손은 도보용 장갑을 꼈기 때문에 다치지 않았다. 한데 왼쪽 턱 부위가 아프다. 혹이 만져진다. 엎어질 때 아스팔트에 정통으로 부딪힌 모양이다. 다른 부위는 멀쩡한 것 같다. 별다른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얼떨결에 당한 일이라 아프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걸을 수 있겠어? 누군가 물었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아마도 밤이 되면 아파올 지도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일행은 벌써 백여 미터 이상 떨어져 무리를 이룬 채 걷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구보를 하는 수밖에 없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들 꽁무니에 붙어 섰다. 별다른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크게 다친 부위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정도라면 계속 걸을 수 있다. 여전히 빡세게 6km 속도로 걸을 기운은 남아 있네. 그러면 걸어야지.

2시간 20분 정도 걸은 뒤 일행이 걸음을 멈춘 곳은 정읍시 제2청사 앞. 오늘 아침 출발지인 접지 마을회관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14km 남짓. 다들 아침밥도 안 먹고 무슨 기운으로 그렇게 펄펄 날듯이 걸은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속보로 걸은 탓에 사람들의 옷은 죄다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 역시 땀투성이고. 그래도 다들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그건 채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완주군에서 감동 받은 채 시장, 완주군민 1만여 명 지지 서명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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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석 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 ⓒ 유혜준


채 시장은 정읍 제2청사 앞에서 아침밥을 먹은 뒤 12km를 더 걸었다. 오늘 그가 걸은 총거리는 26km. 일정대로라면 2~3km를 더 걸어야하지만, 임정엽 완주 군수와 면담이 잡혀 있어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전 11시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채 시장을 감동시켰다.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임 군수는 완주군민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왔던 것이다. '자연사박물관 화성 유치, 매향리 생태공원 전액 국비 지원, 화성호 담수화 반대'를 지지하는 완주군민 1만여 명이 서명한 서명록은 제법 두툼했다. 그것을 임 군수는 채 시장에게 건넸고, 그것을 받아든 채 시장은 오전의 고단함을 잊고 활짝 웃었다.

"하나씩 둘씩 반응이 온다.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응원해주시는 단체장들이 너무 고맙다. 새로운 화성시의 역사를 쓰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화성을 많이 변화하고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화성시민들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부딪혀야 무엇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확인했다. 그래서 몸은 점점 무거워지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볍다."

이어 채 시장은 전주시의 전주한옥마을과 전주 영화의 거리로 이동, 화성시 남양동과 서신면 주민들이 지지서명을 받고 있는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멀리 전주까지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을 응원하러 찾아온 화성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채 시장은 자신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계속 꾹꾹 눌렀다. 처음에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의 손동작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그가 허벅지 근육을 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육통이 심해서 근육을 마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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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와 전북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채인석 시장 ⓒ 유혜준


채 시장은 김완주 전북도지사를 만나 화성시의 지역현안을 설명하고 지지를 부탁했고, 이후에 문규현 신부가 운영하는 카페 '그들이 희망이다'에 들러 전북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문규현 신부는 채 시장이 화성화 담수화를 반대하고 해수유통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자치단체장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수유통을 주장하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며 흔쾌히 서명록에 서명하면서 지지를 표명했다.

국토대장정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하루가 짧은 적 없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것은 오후 8시 30분경. 이제 숙소로 이동할 시간이다. 정말이지 긴 하루였다. 하긴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하루가 짧은 적이 없었다. 새벽 4시를 전후해서 일어나 자정까지 깨어 있으니, 하루가 길고 또 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 시장을 보니, 내가 더 피로가 쌓이는 것 같다. 솔직히 이런 강행군을 할 줄 알았으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새벽별을 보면서 긴 하루를 시작할 줄 알았으면 채 시장을 쉽게 따라나서겠다는 작정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채 시장이야 원래부터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난 '아침형 인간'이지만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설치는 건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 아니겠나. 이번 국토대장정이 아니라면 내가 채인석 화성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날것 그대로 지켜볼 기회가 있겠는가. 그것도 스무 날이 넘게 말이다.

현재 채 시장은 평생 잊지 못할 값진 경험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지. 그런데, 내 얼굴빛이 채 시장과 마찬가지로 구릿빛으로 변하고 있다. 서울로 돌아갈 때쯤이 되면 아주 시커멓게 변할 것 같으니, 이를 어쩐다.
#채인석 #국토대장정 #화성시장 #문규현 #임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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