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도보여행에선 빨래가 가장 큰 문제, 필수지참품은?

[국토대장정 ⑨] 9월 2일, 고산자연휴양림에서 묵다

등록 2012.09.03 10:59수정 2012.09.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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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규


임정엽 완주군수 멋쟁이,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어제(1일) 잠시 스치듯 만난 임 군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쩐지 인상이 좋더라니. 갑자기 임 군수 칭찬을 하는 건 그가 제공한 숙소 때문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의 고산자연휴양림. 임 군수가 국토대장정 팀에게 고생한다면서 고산자연휴양림을 숙소로 제공한 것이다.

어제와 그제, 이틀은 귀곡산장을 연상케 하는 오래된 모텔에서 잤다. 그제 묵은 모텔은 정읍에 있는 일명 '러브호텔'이었는데 이름이 무색하게 내부시설이 엉망이었다. 지은 지 오래되어 낡은 시설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이다. 한데 어젯밤에 묵은 모텔은 그곳에 비해 두어 술은 더 뜰만큼 심란했다. 방 안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뭉쳐서 풀풀 날아다닐 정도였다. 그만큼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오래 묵은 곰팡내도 풍기는 것 같았다. 화성시청 공보팀 박성진씨는 그 냄새 때문에 모텔에서 자는 게 너무 싫다고 툴툴거렸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쩌겠나. 하룻밤 묵어가야지.

시설이 너무 엉망이라 자정까지 미친 듯이 자료를 정리하고 기사를 쓰느라 호텔 시설 내부에 불만을 쏟아낼 겨를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할 일이 없이 우두커니 앉았더라면 정신없이 방안을 오가면서 육두문자를 쏟아냈을 지도 모르겠다.

홀로 배낭을 짊어지고 도보여행을 떠나면 해 질 녘에 늘 숙박지를 찾아 헤매곤 했는데, 그건 국토대장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어느 모텔에서 자야 하나,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모텔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정엽 완주군수가 채인석 화성시장의 국토대장정을 지지·응원하면서 편안한 숙소를 제공, 나까지 편안한 잠자리를 확보했으니 어찌 반갑고 고맙고 기쁘지 아니하겠나. 덕분에 오랜만에 쾌적한 산 속에서 자연의 공기를 흠뻑 마시면서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어둠 뚫고 울리는 "파이팅" 소리... 새벽바람이 제법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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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걸음을 옮기고 있는 채인석 시장 일행 ⓒ 정원규


오늘(9월 2일)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벽 4시 10분, 알람이 울렸고, 김진만(화성시청 공보담당관실) 주사가 4시 반에 정확하게 출발한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어제 걷기를 마친 김제시 금산면 통석교차로 부근까지 오전 5시 이전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사리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어둠을 헤치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국토대장정 9일차가 시작된 것이다. 채인석 시장은 오늘도 "어젯밤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채 시장은 어젯밤, 전주에서 일정을 마친 뒤 한옥마을의 한 민박집에 묵었다. 그의 방이 하필이면 공용화장실 앞에 있었더란다. 사람들이 화장실에 드나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삐걱거리면서 나는 문소리가 상당히 날카롭게 신경을 건드렸나 보다.

게다가 방과 방 사이의 벽이 어찌나 얇던지 옆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잘 들렸단다. 채 시장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 하루 일정이 무척이나 고됐을 텐데, 잠이 이루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생각이 많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도 3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하루쯤 일정을 접고 하루 종일 퍼지게 자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어둠을 뚫고 "화성시 파이팅" 구호 소리가 울렸다. 오늘 출발인원은 8명. 박승권 회장이 국토대장정 깃발을 들고 앞장섰고, 그 뒤를 채 시장과 고정석 바르게살기운동화성시협의회장이 따랐다. 그 뒤에 완주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한진안씨가 바싹 붙어서 따라간다.

새벽바람이 제법 차다. 해남 땅끝 마을에서 국토대장정을 출발할 때만 해도 새벽에도 더운 열기가 느껴졌는데,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일교차도 심해지고. 북상하는 가을을 따라 걷고 있나 보다.

오늘은 완주시 삼례읍까지 30km를 걸을 예정이지만, 28km밖에 걷지 못했다. 채 시장이 낮 12시에 서천에서 나소열 서천군수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오전 11시에 걸음을 멈춰야 했던 것이다. 하긴 28km가 짧은 거리는 아니다.

일요일인데도 자치단체장 일정은 빈 공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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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익산시장과 채인석 화성시장 ⓒ 정원규


채 시장은 여전히 오전에는 빡세게 걷고 오후에는 국토대장정 행로 인근 지역의 자치단체장을 만나 지지와 응원을 부탁하는 일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오후 6시에는 이한수 익산시장을 만날 예정이다.

일요일인데도 자치단체장의 일정은 빈 공간이 없다. 주말에도 계속 빡세게 걷고 있는 채 시장도 그렇지만, 나소열 서천군수나 이한수 익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익산시장은 민방위복을 입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는데 태풍 때문에 수해를 입은 복구현장을 방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채 시장 일행은 오전 5시부터 7시 20분까지 13km를 걸었다. 처음 며칠은 엄청나게 빨리, 많이 걸었다면서 감탄을 했지만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된 것이다. 채 시장과 계속 보조를 맞춰 걸었던 사람들도 더 이상 채 시장의 걸음이 빠르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롭게 국토대장정에 참석한 사람들은 여전히 채 시장의 빠른 걸음에 놀라곤 한다. 직접 같이 걸으니 채 시장의 걸음을 따라잡으려면 구보를 하듯이 뛰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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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아침식사. ⓒ 정원규


그런데 오늘,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길 위에 나선 채 시장의 걸음이 평소와 다르다. 그의 뒤를 바싹 따라 걸으면서 속도가 줄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걷는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속도는 확실히 늦춰졌다. 5km에서 5.5km 정도 되는 것 같다. 채 시장은 앞만 보면서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슬쩍 물었다. 아픈 데는 없느냐고? "출발할 때는 컨디션이 좋았는데 막상 걸으니 힘이 들더라"고 채 시장이 말했다. 그가 양말을 벗었을 때 걷는 속도가 늦춰진 이유가 드러났다. 왼발 뒤꿈치에 물집이 잡혀 있었던 것. 이전에 잡혔던 물집은 아물어 가고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새로운 물집이 길게 생겨났다. 박승권 회장이 팽팽하게 부어오른 물집을 이불 꿰매는 큰 바늘로 푹 찌르고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맑은 진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오전 11시, 채 시장 일행은 전주 월드컵 경기장 부근에서 걸음을 멈췄다. 전주 제1관문 앞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채 시장은 지원차량을 타고 나소열 서천군수를 만나러 서천으로 출발했다.

오후에는 채 시장은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함께 새만금방조제가 내려다보이는 만경천 부근의 전망대에 들렀다. 이 사무처장은 새만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조리 있게 채 시장에게 설명했다. 새만금 역시 담수화에 실패, 2015년에 해수유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담수화를 하려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수질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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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새만금을 보면서 채인석 시장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유혜준


해수유통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새만금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이 사무처장은 지적했고, 채 시장 역시 공감을 나타냈다. 화성호 역시 새만금처럼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채 시장은 화성호 담수화를 반대하고 해수유통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발뒤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슬리퍼를 신은 채 시장은 이동하면서 다리를 절룩거렸다. 9일째 걸어서 뭉쳤던 다리 근육이 풀렸다고는 하나, 28km를 걸은 후유증이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하긴 나 역시 다리가 시원치 않은 상태다. 어제 넘어져서 다친 부위가 걸었더니 덧난 모양이다. 왼쪽 무릎이 걸을 때마다 욱신거리면서 쑤신다. 턱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오랜 기간 길 위에 머물면 빨래가 가장 큰 문제

저녁식사를 마치고 고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한 건 오후 8시 즈음. 일요일 저녁이라 어둠이 깊게 깔린 휴양림은 한산한 편이다. 숲을 건드리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고즈넉한 숲을 뒷짐을 지고 유유자적 걷고 싶다. 하지만 이번 국토대장정에 그런 여유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빨래를 해야 한다.

이번처럼 20일이 넘는 오랜 기간 길 위에 머물면 빨래가 가장 큰 문제다. 속옷에 양말과 손수건, 웃옷과 바지 등등을 숙소에서 빨아 넣어야 하는데 세탁기가 없으니 손빨래를 해야 한다. 문제는 느긋하게 빨래를 말릴 틈이 없다는 것. 덕분에 지원차량 뒤에는 빨랫줄이 걸렸고, 양말과 수건, 바지와 셔츠들이 줄줄이 널렸다. 빨래만 보면 이건 뭐, 난민이다.

이번 국토대장정에 합류한 참가자들 대부분이 다 마찬가지다. 숙소 앞에도 빨랫줄이 걸리고 빨래가 줄줄이 널려 있는 모습을 늘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 도보여행을 떠날 때 옷걸이는 필수 지참품목이다. 철사로 만든, 세탁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옷걸이는 가볍고 휴대하기에 부담이 없어 아주 좋다. 참고하시라.

[오늘 걸은 길] 김제시 금산면 통사리 - 용산리 - 금구리 - 전주대학교 - 온고을로 - 전주 월드컵경기장. 총 28km.
#채인석 #국토대장정 #화성호 #새만금 #임정엽 완주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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