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용의 영화리뷰 아노라] 신데렐라에겐 왕자가 떠나도 다른 왕자가 곧 나타난다 영화 '아노라'에 대해 버라이어티지는 낭만적이고 반항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평가했다. 만일 이 영화가 신데렐라 스토리라면 왜 낭만적이고 반항적일까. 버라이어티의 평가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애초에 낭만적이지 않다는 전제가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낭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신데렐라 스토리가 낭만적인지 아닌지가 달라질 것이기에 이 논의는 그만하자. 다만 신데렐라 스토리가 낭만적이지 않다는 버라이어티의 관점이 건강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반항적이라는 평가는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게 영화 '아노라'를 애초에 신데렐라 스토리로 보아야 하는지가 애매하다. #아노라 #신데렐라 #션베이커 #미키매디슨 ⓒ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아노라>에 대해 버라이어티지는 "낭만적이고 반항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평가했다. 만일 이 영화가 신데렐라 스토리라면 왜 낭만적이고 반항적일까. 버라이어티의 평가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애초에 낭만적이지 않다는 전제가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낭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신데렐라 스토리가 낭만적인지 아닌지가 달라질 것이기에 이 논의는 그만하자. 다만 신데렐라 스토리가 낭만적이지 않다는 버라이어티의 관점이 건강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반항적'이라는 평가는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게 영화 <아노라>를 애초에 신데렐라 스토리로 보아야 하는지가 애매하다.
신데렐라?
영화의 줄거리만으론 버라이어티의 평가가 맞아들어가는 듯하다. 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미키 매디슨)는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만난 철부지 러시아 재벌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벼락같은 사랑에 빠져 충동적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한다.
그러나 이 결혼은 신데렐라 스토리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신데렐라 스토리에서는 결혼이 결말이지만, <아노라>에선 결혼이 시작이다. 충동적 결혼을 해소하는 과정이 영화의 얼개다.
이후 줄거리는 '1 대 1'에서 '1 대 다'로 바뀐다. 러시아에 있는 이반의 부모가 아들의 결혼을 전해 듣고 미국에 있는 수하 3인방에게 결혼을 무효로 하고 둘을 갈라놓으라고 지시한다. 이들이 들이닥치자 부모를 두려워하는 이반은 무책임하게 도망치고, 아노라와 3인방이 철부지 이반을 찾아 헤맨다. 결혼을 지키려는 아노라와 어떻게든 결혼을 무효화해야 하는 3인방의 기이한 동행에 미국으로 서둘러 날라온 이반의 부모가 가세하며 환장할 추격전이 빚어진다.
션 베이커가 연출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아노라다. 겉보기로도 아노라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무엇보다 결말이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니다.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 혹은 이혼과정에서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했지만, 아노라는 생각보다 순순히 '신데렐라' 자리에서 내려온다.
베이커 감독이 초점을 맞춘 건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유사 신데렐라 스토리를 통한 아노라의 자아 탐색과 진정한 사랑의 발견이다. 부엌데기나 다름없는 처지에 신데렐라의 기회가 주어지자 기민하게 그 기회를 거머쥐고, 거머쥔 다음엔 악착까지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손에 꽉 쥔 것을 확 놓아버리는 일종의 실존적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