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에무필름즈
로맨스의 핵심
러시아의 예술이론가 블라디미르 프로프가 말한 민담 혹은 옛이야기의 31가지 기능이나, 이것을 압축하여 영화 서사에 맞춰 설명한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은 더 명확한 구조화를 꾀한다.
'영웅의 여정'은 ▲일상 세계(Ordinary World) ▲모험의 부름(Call to Adventure) ▲거부(Refusal of the Call) ▲조력자와 만남(Meeting with the Mentor) ▲첫 번째 관문 통과(Crossing the First Threshold) ▲시험, 동료, 적(Tests, Allies, and Enemies) ▲접근(Approach to the Inmost Cave) ▲중대한 시험(The Ordeal) ▲보상(Reward) ▲돌아오는 길(The Road Back) ▲부활(The Resurrection) ▲엘릭서(Return with the Elixir)의 12개로 구성돼 개수가 많은 프로프 이론보다 자주 인용된다.
많은 팬이 이 영화를 '인생 로맨스'로 꼽는다. 그 이유는 스토리가 시원하게 풀려나가고 국면 전환이 빠르지만 내내 로맨스의 핵심을 꽉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플로차트에 들어갈 요소를 모두 채워 넣어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보글러의 '영웅의 여정'의 요소를 모두 채웠다고 '인생 로맨스'가 되지는 않는다. 요소마다 사랑의 심리나 감정을 잘 버무렸기에, 즉 디테일을 살렸기에 영화 팬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시작과 끝에 집중해 극을 전개한 데서 생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사랑한 기간은 별로 길지 않다. 17살의 짧은 첫사랑의 열병과 헤어짐, 24살의 재회와 결합은 구조상 액자영화에 가깝다. 동시에 본 줄거리이기도 하다. 여기에, 치매에 걸린 앨리와 그를 옆에서 지키며 옛날 그들의 사랑을 회고하는 노아 두 사람의 인생 끝자락이 따라붙는다.
회고는 구성상 부수적 줄거리가 돼야 하지만, 의미상으론 그렇지 않다. 두 노인은 같은 날 밤에 함께 늙어 죽는다. 선형으로 배치하지 않았고, 별개처럼 구성했지만 하나인 이 이야기에서 빠진 것은 시작과 끝 사이의, 더는 극적이지 않고 대부분 평범하며 때로 지루한, 사랑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삶이다.
플래시백으로 구성해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외양을 취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두 청춘의 사랑이 열매를 맺는 장면으로 끝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마무리한 셈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 영화가 '인생 로맨스'로 각인됐다면, 동화에서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선언만 하고 행복의 실체를 생략한 것과 달리 영화에서 그 실체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행복한 결말에서 열정적인 시작을 추적한다. 결말까지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행복한 결말의 선언을 작정하고 보여준 연출은 또 다른 동화적 진술이다. 실화에 바탕했다는, 결과를 제시하는 동화적 진술에 따른 행복의 실체의 제시는 착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식의 사랑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만큼 감독은 같은 시간에 죽는 마무리 설정을 통해 관객에게 그러한 인상을 심어준다.
두 사람 사랑의 실제 삶이 불행했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행복한 부부의 삶도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 순간의 기쁨과는 다르다. 엄밀하게 그것은, 종종 사랑을 완전히 배신하기도 하는, 사랑에서 파생한 삶이다. 즉 둘은 완벽하게 다른 종류의 감정이자 삶의 양태이다. 닉 카사베츠 감독은 다른 두 개를 교묘하게 엮어서 전체로서 하나인 것처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보글러의 '영웅의 여정'의 마지막은 엘릭서(Elixir)를 지니고 돌아오는 것이다. 엘릭서는 마법의 약이나 불로장생의 약을 뜻한다. 연금술에서는 생명을 연장하거나 모든 병을 치유하는 신비의 물질로 간주했다. 서사에서 엘릭서는 상징으로 의미가 확대된다. 영웅이 모험을 통해 얻는 귀중한 보상으로, 물질적인 것일 수 있지만, 지혜, 통찰 같은 추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사랑이다.
<노트북>이 영웅서사라면 영웅은 남자 주인공인 노아로 여겨진다. 가부장제에 입각한 서사라는 비판이 가능해 보이는데, 모르는 척 넘어가 줘도 되지 싶다. 가부장제 시대의 사랑을 그렸기에 가부장제의 그늘이 어리는 걸 피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노트북에무필름즈
이 영화에서 사랑이 엘릭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여러 후보 중에 나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공책'이 가장 강력한 엘릭서 후보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는 노아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공책을 전해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걸 나에게 읽어줘요.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돌아갈게요(Read this to me, and I'll come back to you)."
여기서 당신이 누구인지 자명하다. 카사베츠 감독은 인생의 종점에서 앨리가 최고의 전리품을 얻는 것으로 설정한다. 생성된 배경이나 화자, 시기 등을 감안할 때 노아에겐 공책이 확실히 엘릭서이다. 시작과 끝을 관통함으로써 사랑의 존엄을 그리고자 한 제작진의 의도는 노아의 화답에 해당하는 다음 대사를 통해 달성된다. 요양원에서 아버지(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집에 돌아오라는 자녀들의 요청에 대답한 말이다.
"너희들 엄마가 내 집이야(Your mother is my home)."
사랑이라는 기적
사람들은 사랑에 흔히 운명이란 단어를 결부시키기 좋아한다. 애매한 결부이다. 운명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랑하는 이의 주체적 관여 없이 사랑의 운명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아가 앨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지었기 때문에 앨리가 노아를 다시 찾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랑은 그 집 앞을 서성이거나 과거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걷는 등 무의식적으로 운명에 자신을 매어두려는 욕망에 근거함으로써 운명이 된다.
사랑의 기적이란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사랑 자체에는 기적이 깃들지 않았다. 사랑의 기적을 믿는 연인에게 기적이 일어날 뿐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지적하였듯 신앙과 같은 맥락에서 사랑은 기적을 믿을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필연적 추락이 자신에게만 유일하게 예외일 것이라는 비합리성을 믿고 추앙한다는 점 자체부터 기적이다. 기적 없는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그런 믿음을 지녀서 얼마나 다행인가. <노트북>은 사랑이라는 환상을 교묘하게 기적으로 연출한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9일 재개봉.
안치용 영화평론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