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스틸컷
대원미디어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서울 합정역에 다 큰 어른 일곱 명이 모였다. 영화 한 편을 보고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제작된 지 40년 가까이가, 한국에서 개봉한 지도 20년은 족히 지난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자는 제안에 귀한 주말 시간을 내어 응한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함께 영화를 보겠다고 모인다는 말인가. OTT 서비스로 언제든 편히 제 안 방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는 이 시대에 말이다.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열망, 그를 자극하는 좋은 영화라는 뜻이겠다. <천공의 성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우리가 함께 본 바로 그 영화가 되겠다.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얘기다. 그가 세운 지브리 스튜디오도 꼭 그만한 명성을 가졌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월트 디즈니 픽처스의 디즈니 스튜디오, 또 디즈니가 인수한 픽사 스튜디오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석권한 지 오래다. 그러나 지브리 만큼은 변방을 중심처럼 일구고, 중심에서 다시 변방처럼 일어나서 저만의 색채를 간직한 작품을 꾸준히 낳아왔다.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미야자키의 색채
<천공의 성 라퓨타>는 미야자키의 초기 작품이자 대표작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그가 내어 놓은 십 수 편의 작품군, 그 가운데 반복돼 온 취향이며 선호가 날 것 그대로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전쟁과 폭력, 특히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에 반대한다는 것, 세련되지 못한 전 시대 사람들과 그들이 일궈온 산업이며 노동에 존중을 표한다는 것, 현대 과학의 오만을 경계하고 불신한다는 것, 나아가 그로부터 끝끝내 살아남는 자연의 힘에 나름의 경외심을 드러낸다는 것 등이 그렇다.
이야기는 어느 비행선이 해적의 습격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말 그대로 비행선, 하늘 위를 날아가는 기체를 일군의 해적들이 습격한다. 총을 쏘고 독가스탄을 터뜨리고 어지럽게 침입하는 해적들의 기세가 매섭다. 그 와중에 어느 선실에선 안경 낀 남자가 웬 돌을 가지고 어떤 작업을 하려고 든다. 그 돌이 대단한 보물인 듯, 해적들 또한 그를 노리고 달려든다.
바로 그때,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돌을 낚아채는 이가 있으니 그 곁에 있던 소녀 쉬타가 되겠다. 쉬타는 돌이 달린 목걸이를 제 목에 묶고서는 비행선 바깥으로 나가 숨으려다, 그만, 추락하고 만다.
쉬타의 추락, 그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돌과 함께 추락하는 듯했던 쉬타는, 그러나 살아남는다. 쉬타가 목에 맨 돌에는 기이한 힘이 있는 듯하다. 그녀는 떨어지는 대신 둥둥 떠서 천천히 내려선다. 돌이 내는 빛을 보고 달려온 땅 아래 마을의 소년 파즈가 쉬타를 받아든다. 파즈와 쉬타의 만남은 그토록 우연적이다. 우연적이란 말은 곧 운명적이란 말이기도 하다.
좌충우돌 모험이 주는 박진감
영화는 쉬타와 파즈를 쫓는 두 무리, 즉 비행선을 습격한 해적들과 그들의 습격을 받은 안경 낀 남자의 일당을 비춘다. 안경 낀 남자는 정부 고관과 선이 닿아 있는 듯, 군대를 수족처럼 부린다. 막장이 드러난 외딴 탄광마을로 군부대가 들어오고, 해적까지 출몰하니 조용히 낡아가던 마을이 어느새 북적댄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돌은 안경 낀 남자의 손으로 들어가고 만다. 라퓨타로 향해 그를 지배하려는 안경 낀 사내 무스타, 그의 야욕을 막기 위해 쉬타와 파즈는 그가 탄 전함을 뒤쫓기 시작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당대 유행하던 어드벤처물의 구성을 차용해 기획한 대작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미지의 유물을 찾으려는 여러 악당과 주인공이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누구와는 손을 잡고 또 다른 누구와는 끝끝내 적대한다는 점은 이미 수차례씩 반복돼 온 이야기의 구성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저 하늘 위엔 천공의 성이라 불리는 거대한 섬들이 둥둥 떠 있고, 그 커다란 섬을 공중에 띄울 만한 에너지의 근원이 담겨져 있으며, 그를 가능케 했던 문명은 이미 소실돼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설정은 당대로선 여러모로 새로운 것이었다. 떠다니는 섬은 작중 언급되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속 라퓨타를 본뜬 것이지만, 그 힘의 근원을 특별한 힘을 지닌 비행석으로 설정하는 등 독자적 상상력을 덧댄 점이 인상적이다.
순수함이 파멸을 막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