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스틸컷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시간이 창작자, 나아가 예술가에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한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순간은 오프닝이다. 팀 버튼에게 있어 영혼의 단짝이라 해도 좋을 영화음악가 대니 엘프먼의 스코어가 관객을 단박에 추억과 감격으로 몰고 간다. 시간이 한 분야의 대가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그 스타일과는 별개로 제가 과거보다 얼마나 기술적으로 나아진 실력을 갖추었는지를 엘프먼의 스코어가 여실히 증명한다.
대니 엘프먼이 누구인가.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엔니오 모리꼬네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존 윌리엄스가 있다면 팀 버튼의 짝지가 바로 대니 엘프먼이다. 버튼 외에도 샘 레이미, 구스 반 산트, 데이비드 O. 러셀 등 이름난 감독들과 작품을 같이 했지만 엘프먼과 버튼을 함께 떠올리지 않는 영화팬이 없을 정도다. 특유의 어두운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버튼의 영화세계와 꼭 맞아떨어진 탓이다. 서로가 서로와 꼭 맞는 작품세계를 가졌단 점에서 그들이 일찌감치 만나 같은 시대를 함께 헤쳐왔다는 건 축복이라 해도 좋겠다.
엘프먼의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팀 버튼의 영상은 과연 대단하다 해도 좋겠다. 단박에 1988년 원작의 정취를 살려내는 동시에, 그때는 갖지 못했고 오늘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시킨다. 영상의 세련됨은 전과 비할 수 없다. 재치로 눙치고 넘어갔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제가 할리우드의 대가가 됐음을, 충분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세련된 감독이란 사실을 알린다.
그로부터 영화는 그저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분위기를 내보이는 첫 장면, 매끄러운 카메라워킹과 압도적이라 할 만한 음향만으로 관객의 관심을 빼어잡는다. 36년 만에 나온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비틀쥬스를 세 번 외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 또 '산자가 굳이 보려하지 않았던 죽은 자의 세계가 가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첫 장면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화면 가득 채워지는 위노나 라이더의 달라진 외모는, 다듬어지지 않은 표정과 몸짓, 발화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를 매혹적으로 느끼게 했던 십대 시절의 배우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단 걸 확인시킨다. 감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위노나 라이더에게 영화의 첫 인상을 책임지도록 하는데, 그건 그대로 원작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지난 시간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완숙해진 버튼이며 엘프만과 달리 결국 외모며 분위기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배우, 즉 위노나와 키튼은 지난 36년의 세월이 제게 남긴 것을 정면에서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비틀쥬스>가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되기까지, 그대로 캐스팅된 배우의 쉽지 않은 책임을 이들은 맡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한때는 파격적이고 매혹적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완숙한 배우가 돼 전체 이야기와의 균형이며 경험 적은 배우와의 조화를 생각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더없이 참신한 원작에서 평이한 가족드라마로
귀신을 보는 강렬한 캐릭터를 앞세워 전체 극을 지배하던 캐릭터가 이제는 제 딸을 지키려고 동분서주하는 전형적인 아줌마가 되고, 또 독보적 존재감을 과시하던 저승의 괴짜요괴는 전보다 한층 줄어든 비중에도 감초역할을 소화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그렇게 옛것과 지금 것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구성이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원작이 심령현상의 일종인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유령에 의해 물건이 움직이고 소음이 발생하는 현상을 소재 삼아 어느 집의 죽은 주인들이 새로 이사온 가족을 쫓아내려 하는 이야기였다면, 신작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모험 가운데 모녀의 갈등이 해소된다는 판타지 속 가족드라마의 형식을 취한다. 요컨대 공포 가운데 판타지와 코미디를 다채롭게 취한 전작에서 기본적인 가족드라마로 회귀한 꼴이다.
주인공은 영매로 제법 이름을 날리게 된 리디아(위노나 라이더 분)와 그녀의 사춘기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 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스트리드에게 그나마 할아버지 찰스는 기댈 언덕이다. 유령을 본다는 엄마와 괴짜 할머니가 그녀에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며 온 가족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니 아스트리드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는 우연한 계기로 저승으로 끌려들어간 아스트리드를 구하는 리디아의 이야기, 또 한편으로 저승에서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악령이자 비틀쥬스의 전처 델로레스(모니카 벨루치 분)가 예기치 못한 활약을 거듭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혹은 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찾아 저승까지 가 그녀를 구출하려 든 오르페우스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는 줄거리 가운데 저승에 끌려간 아스트리드를 구출하려는 리디아의 분투, 또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탐해 도움을 주는 비틀쥬스의 이야기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새로운 시도 대신 성공 방정식을 답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