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준결승에서 한국의 임애지가 콜롬비아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의 안면에 공격을 적중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프로 복싱에 비하면 비인기종목에 가깝지만 아마추어 복싱은 지난 109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고 있을 만큼 역사가 깊은 종목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까지는 준결승에서 패한 2명이 동메달 결정전을 치렀지만 1952년 헬싱키 올림픽부터는 준결승에서 패한 2명이 공동으로 동메달을 받는다. 1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는 복싱에서 26명의 동메달리스트가 배출되는 이유다.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부상 방지를 위해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경기를 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헤드기어가 오히려 뇌진탕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발표하며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는 헤드기어를 쓰지 않는다. 다만 여자 선수들은 헤드기어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 파리 올림픽까지도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경기를 치른다. 물론 복싱은 판정시비 등으로 꾸준히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복싱은 파리 올림픽에서도 6개 체급에서 메달의 주인공을 가린다. 지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선수를 출전시켰던 한국 여자복싱은 두 번째 도전 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여자 -54kg급에서 4강에 진출하며 여자복싱 역대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게 된 임애지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 노메달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 복싱은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종목이었다. 한국전쟁 이전인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플라이급의 고 한수안이 동메달을 따면서 역도의 고 김성집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안겼고 휴전 전에 열렸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고 강준호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고 송순천이 한국 선수단 첫 올림픽 은메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1970년대까지 올림픽에서 꾸준히 성과를 올린 복싱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75kg급의 신준섭이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신준섭은 메달 유망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세계의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해 홈팀 미국의 버질 힐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따냈다. 신준섭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추가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복싱 종목에서 무려 2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LA 올림픽 1회전 탈락 후 1986 서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기량을 끌어올린 김광선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플라이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광선은 1990년 프로로 전향해 1992년 세계복싱평의회(WBC)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프로무대에서는 세계 챔피언에 오르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1988년 김광선의 금메달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의 12번째 금메달을 따낸 박시헌의 판정시비 때문이었다. 당시 박시헌은 미국의 스타 복서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땄는데 이는 편파 판정으로 인한 '부정한 금메달'로 취급 받았다. 결국 박시헌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다소 이른 나이에 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한국 복싱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끝으로 단 하나의 금메달도 추가하지 못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이승배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한순철이 은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홍성식, 이승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조석환, 김정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김정주가 동메달을 따냈을 뿐이다. 특히 남자복싱은 리우 올림픽의 함상명을 끝으로 두 대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메달 확정 후에도 한국 복싱 미래 걱정하는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