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JTBC <신성한, 이혼>은 좀처럼 알 수 없는 드라마다. 쌈박한 법정물 같다가도 썰렁한 코믹물로 변신하고, 그러면서도 휴머니즘이 녹아 있다. 이 조금 낯선 느낌의 드라마를 매력적이게 하는 이 휴머니즘의 실체는 바로 사람들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용기 내어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신성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은 이혼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선다.
 
그 중 드라마의 첫 번째 이혼 사연으로 등장해 변호사 사무실의 식구가 된 서진(한혜진)은 시련 속에서도 삶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매우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진의 마음을 통해 스스로를 수용하고 지켜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유명 라디오 DJ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서진은 남편의 집착에 가까운 통제와 의심에 숨 막히듯 살아오다 외도를 하고 만다. 그런데 이 외도 상대는 성관계 동영상을 유출 시키고 서진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외도에 따른 책임은 서진에게 있지만, 동영상 유출은 서진을 위축시키고, 사회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트라우마 같은 사건이었을 테다. 서진은 호텔에 숨어 죄책감과 분노가 뒤범벅된 힘든 시간들을 보낸다.
 
그런 서진이 호텔 밖을 나가 찾아간 곳은 '이혼 전문' 신성한 변호사(조승우) 사무실이다. 서진은 성한을 만나 "잘 이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서진의 사연을 알고 있는 성한은 "잘 이혼하긴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답한다. 그러자 서진은 이렇게 되묻는다.
 
"제가 원하는 바는 왜 안 물어보세요?" (1회, 서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서진의 분노는 세상과 가해자에 대한 원망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로 향한다. 즉, 이토록 강렬한 분노와 죄책감이 '무언가 내가 원하는 걸 잃거나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기'에 생겨났음을 알아차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하는가>의 저자인 심리학자 해리엇 러너가 말한 분노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데' 사용하는 바로 그 현명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 말은 성한에게도 가닿았고, 서진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건 '아이를 지키는 것'임을 알린다. 그리고 서진은 아이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내가 원하는 걸 물어봐달라'는 서진의 말에 성한은 서진에게 손을 내민다.

'내가 원하는 걸 물어봐달라'는 서진의 말에 성한은 서진에게 손을 내민다. ⓒ JTBC

 
그럼에도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하지만, 서진이 자신과 아이를 지켜냈다고 해서 마음 속 깊이 남은 불안과 두려움마저 털어낸 것은 아니다. 서진은 당당하게 법정에서 승소를 하고 아이와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만 느껴져도 흠찟흠찟 놀란다.
 
5회 성한의 친구 정식(정문성)이 축하의 의미로 꽃을 선물했을 때도, 서진은 자신을 '유명인' 대하듯 하는 시선에 몹시 불편해하며 즉시 위축된다. 아이와 함께 마트에도 가지 못하고, 의뢰인의 주변인들을 만나 취재를 해야 할 땐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하고 만다.
 
때론 2차 피해에 노출되기도 한다. 성한과 함께 했던 법정에서도 상대편 변호사의 말은 끊임없이 서진을 아프게 한다. 방송일을 그만 둔 서진에게 새로운 일을 제안하겠다는 한 PD는 서진에게 성인동영상 방송을 해보자고 한다. 이에 서진은 "불쾌하셨다면, 만약 그렇다면 그런 전제가 불쾌합니다"라고 당당하게 거절하지만(2회), 이후에도 계속 이들의 말을 떠올리며 수치스러워 한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복귀한 후에도, 서진은 여전히 땅을 보고 걷고, 악플 하나에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10회).
 
서진의 이런 반응들은 범죄의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매우 현실적인 모습들이다. 분노와 죄책감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마음을 지닌 서진마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이런 범죄가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아가기
 
하지만 서진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를 솔직히 말 할 수 있는 서진의 능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서진은 아이에게조차 자신의 상황을 둘러대지 않고 솔직히 인정하며 피치 못하게 준 상처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2회).
 
또한, 9회에 서진은 아이의 운동화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다 "신어봐야 맞는지 알지"라는 아이의 말에 용기를 내 아이와 함께 운동화를 고르러 간다. 이에 아이는 매우 기뻐하면서 서진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엄마 괜찮아?" 이 질문에도 서진은 자신이 다 나은 척하지 않고 솔직히 말한다.

"엄마는 솔직히 아직은 괜찮지 않아. 그치만 나 해볼거야. 엄마가 매일매일 미안해."

이렇게 '괜찮은 척'하지 않고 자신의 힘든 마음을 스스로 수용해줄 수 있었기에 서진은 힘들어하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서진은 아들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말하며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서진은 아들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말하며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 JTBC

 
여기에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더해진다. 서진의 마음을 헤아려주면서 동시에 "곧 자기 모드로, 이서진 모드로 돌아가길 바랍니다"(성한, 5회)라고 말해주는 신성한 변호사 사무실 식구들은 서진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성한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의뢰인들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됨을 알게 된 것도 서진에게 삶의 의미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특히, 7회 자살시도를 한 의뢰인 민정씨와의 만남에서 서진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선택이 낳은 고통은 우리의 몫"이지만 "아직 마트에서 장도 못 보면서 지하철 한 정거장을 차로 한 시간씩 밀려가면서도 언젠가는 행복해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의뢰인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성찰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삶에 책임을 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음을 깨달았음을 알린 부분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말은 의뢰인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고 서진 자신에게도 용기를 내게 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네. 이서진." (10회)

그리고 마침내 서진은 이렇게 인사를 건네며 인터넷 개인방송으로 복귀한다. 이는 서진이 그간의 여러 일들과 상처들을 마침내 수용하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음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흠집 나고, 아픈 나'지만 이런 나를 내가 받아들인다는 말 같아 뭉클한 순간이었다.
  
 자신을 수용하고, 분노를 원하는 것을 하는데 사용하면서, 서진은 마침내 방송에 복귀한다.

자신을 수용하고, 분노를 원하는 것을 하는데 사용하면서, 서진은 마침내 방송에 복귀한다. ⓒ JTBC

 
이처럼, 서진의 통합과 성장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알고 이를 수용해주는 것에 기반해있다. 또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대상에 대한 분노를 그들에 대한 복수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데 사용하면서 변화를 만들어 냈다. 타인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 욕구를 충족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이를 표현하면서 주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과오와 상처 모두를 내 안에서 통합해 내고 마침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우리 역시 때론 과오를 저지르기도 하고, 타인이 가한 상처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럴 때 <신성한, 이혼>의 서진을 떠올려보자. 서진처럼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고, 원하는 바를 실천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당당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요, 이게 바로 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신성한 이혼 조승우 한혜진 분노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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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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