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슈퍼파워!'
 
JTBC 드라마 <힘쎈 여자 강남순>을 보고 나면 이렇게 시작되는 주제가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슈퍼파워'를 가진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거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모습은 주제가 만큼이나 신이 나고 통쾌하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단지 신체적인 힘만 쎈 것이 아니다. 어마무시한 경제력까지 지닌 중간-금주-남순 3대의 모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숭상하는 '권력'을 지닌 여자들이다.
 
나는 이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성주의 상담에서 이야기하는 '권력' 개념이 떠올랐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돕는 데 중점을 두는 여성주의 상담은 개인의 '권력 강화'를 상담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권력'이란 '자신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또는 '내가 원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의 소유와 사용'으로 정의된다. 이 개념에 맞추어 세 모녀를 살펴보면 세 모녀가 비록 유전적으로 힘을 물려 받았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힘의 면면들을 살펴본다.
 
[할머니 중간] 자신의 욕망에 집중
 
 중간은 자신의 힘을 주로 개인적인 이유로 사용한다.

중간은 자신의 힘을 주로 개인적인 이유로 사용한다. ⓒ JTBC

 
힘쎈 모녀의 대장격인 중간(김해숙)은 젊은 시절 마장동에서 정육점을 하며 경제력을 키운다. 마장동 상권을 조직 폭력배가 통제하려 들 때 중간은 자신의 힘으로 조폭들 수십 명을 때려눕히며 상권을 지켜낸다. 그 후 곰탕집을 연 그녀는 맨손으로 소, 돼지의 뼈를 부러뜨려 '손맛' 있는 곰탕을 끓이며 이 또한 성공을 거둔다. 중간은 힘을 이용해 이처럼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쌓는 동시에 각종 범죄자들을 잡아내 경찰에 넘기기도 한다. 이로 인해 용감한 시민상 표창도 받는다(9회).
 
하지만, 중간의 권력 사용은 어디까지나 매우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에 기반해 있다. 불법주차 차량의 차주를 벌할 때 그녀는 "감히 내 차를 막아?"라며 응징하듯 힘을 쓴다. 7회 자신이 마음에 품은 준희(정보석)가 보이스 피싱 피해를 입자 중간은 경찰관에게 "빨리 잡아내라"고 윽박을 지른다. 그도 잘 되지 않자 직접 범인들의 위치를 추적해 소탕하는데 이런 힘의 사용은 모두 준희와 연애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 것이다. 10회 딸 금주가 "지금 우리 사회에 매우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때에도 중간은 금주가 하는 그 일보다는 오직 딸의 안위에만 관심을 둔다.
 
이처럼 중간은 자신의 힘을 나쁜 곳에 사용하지는 않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나 사회적 관심은 부족한 인물이다. 9회 시상식장에서 연락두절되었던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대에서 그대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그녀가 오직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충실할 뿐,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중간의 권력 행사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때로는 유아적이다.

[엄마 금주] 모성과 연민에 기반한 힘의 사용
 
 금주는 모성과 연민에 기반해 힘을 사용하지만, 가족 내 남자들은 함부로 대한다.

금주는 모성과 연민에 기반해 힘을 사용하지만, 가족 내 남자들은 함부로 대한다. ⓒ JTBC

 
반면 중간의 딸이자 남순(이유미)의 엄마 금주(김정은)의 권력 행사는 모성과 타인에 대한 연민에 기반해 있다. 어릴 때부터 돈에 관한 감각이 탁월했던 금주는 엄청난 자산가다. 전당포를 직접 운영하는 그녀는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의 사정을 공감하는 마음으로 듣는다.
 
2회 금주는 고객이었던 남 사장이 마약으로 사망해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아무런 대가 없이 "그분 물건 곱게 돌려드려"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리곤 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마약 공급자들을 소탕하는 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에 대해 비서가 "왜 이렇게 생태계를 솔선수범 막 휘젓고 다니시는 거예요?"라고 묻자 금주는 이렇게 답한다.
 
"시작은 내 딸 남순이 때문이었지.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신이 남순이를 지켜줄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 평생의 사명이 됐지.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아."
 
이는 금주의 권력 사용이 모성에 기반해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그래서 금주는 툭하면 힘으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중간과 달리 사람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는다. 8회 오토바이를 탄 남자들이 금주에게 성희롱을 하며 접근했을 때에도 직접 해하기보다는 헬멧만 부수며 간접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 타인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애쓴다.
 
심지어 금주는 가짜 딸 행사를 하다 들킨 화자(최희진)가 '나쁜 짓'을 하며 살지 않도록 배려하고, 남순을 죽이려 했다는 걸 알면서도 "반성하고 착하게 살면 너도 내 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곤 정말로 화자에게 집과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처럼 금주의 권력사용은 중간보다 훨씬 성숙하고 건강하며 타인과 세상을 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금주는 집안 남자들에게서는 '독재자' 소리를 듣는다. 금주는 전 남편 봉고(이승준)를 자신의 마음 대로 통제하려 들고, 이혼 후에도 날이 선 감정으로 대한다. 가족 중 남자 구성원인 아들 남인(한상조)과 동생 금동(김기두)도 은근히 무시한다. 모성과 연민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정작 가까운 이들의 마음엔 관심이 없는 금주의 권력 사용은 어딘지 불균형해 보인다. 결국 금주는 마약범죄를 소탕하려 애쓰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 남인이 마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뒤늦게 알아채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10회).
 
[딸 남순] 연대할 줄 아는 파워
 
 남순은 남을 돕는데 힘을 사용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연대한다.

남순은 남을 돕는데 힘을 사용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연대한다. ⓒ JTBC

 
이에 비해 5살 때부터 몽골에서 살다 부모를 찾아 한국에 온 남순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에 대한 성찰을 통해 힘을 사용한다. 4회 금주와 대화하며 남순은 "난 누굴 도와줄 때 정말 행복해. 난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라고 말한다.
 
정말로 남순이 힘을 행사하는 순간은 대부분 남을 돕기 위한 때다. 비행기 사고의 위험을 막고(1회), 화재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고(3회), 함부로 갑질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데 자신의 힘을 쓴다.
 
이런 과정에서 남순은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들지 않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때로는 연대할 줄도 안다. 한국에 오자마자 사기를 당했을 땐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금주를 만나기 전 한강에 게르를 짓고 살 때에는 노숙자 커플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기도 한다. 그 후 본격적으로 마약범죄를 소탕하겠다고 나섰을 때에도 남순은 희식(옹성우)과 철저한 공조를 한다. 희식의 조언을 듣고, 작전에 함께 하며, 타인의 행동을 유심히 살핀다.
 
공적인 관계에서 이처럼 '연대'할 줄 아는 남순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남순과 희식은 점차 연애모드로 나아가고 있는데 남순이 희식을 대하는 방식은 엄마 금주가 아빠 봉고와 연애했던 방식과는 매우 달라 보인다. 금주는 봉고를 통제하려 들고, 자신의 마음 대로 휘둘렀다면 남순은 희식을 존중하고 연애에 있어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남순의 이런 권력 행사는 할머니 중간과 엄마 금주에 비해 성숙하고 진정성 있어 보였다.
 
<힘쎈 여자 강남순>은 '권력'을 지닌 여성들이 활약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닐까. '권력 강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주의 상담에서는 평등을 추구하고 타인과 연결될 때 힘을 보다 잘 사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면에서 세 모녀의 권력 행사는 대를 이어가며 보다 좋은 방향으로 진보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간이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힘을 사용했다면, 금주는 모성과 연민에 기반하지만 가까운 이와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 반면 남순은 가까운 이들과 타인 모두를 배려하며 평등과 연대를 실천하며 힘을 행사하니 말이다.
 
드라마의 남은 회차 동안 이들의 권력이 평등과 연대에 기반해 행사되는 모습이 더 많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또한, 현실에서도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사용하며 진보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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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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