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화제리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연인>의 두 번째 파트가 곧 시작된다. <연인> 1부는 병자호란이라는 위기 속에서 스스로와 사랑하는 이들, 혹은 나라와 임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삶을 그렸다.

여러 설정과 캐릭터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케 했지만, <연인>엔 한 개인의 마음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가 매우 잘 드러나 있었다.
 
2부 방영을 앞두고, <연인> 1부가 보여준 '마음의 실체'를 정리해 본다.
 
사사로운 마음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1부는 평화롭던 능군리에 병자호란 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한다. 이에 '선비의 삶'을 갈망하는 연준(이학주)을 비롯한 능군리 청년들은 임금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에 자원한다. 하지만, 장현(남궁민)은 참전하는 대신 피난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연준과 장현의 마음이 대립한다. 장현은 능군리 청년들의 의결에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하였는데 왜 백성이 임금을 구해야 한단 말입니까?"(3회)라고 응수한다. 이에 연준은 "임금과 사대부는 백성을 지킬 의무가 있다"(5회)며 도리와 대의를 강조한다.
  
 장현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장현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 MBC

 
하지만, 장현도 결국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선비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피난을 가던 장현은 능군리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해된 모습을 보고 "내 이 놈들을 잡아야겠다"며 오랑캐 무리들을 추적한다. 여기엔 연모하는 길채(안은진)를 지키겠다는 마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처럼 장현은 대의보다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이후 장현은 전쟁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적진에 위장해 들어가고, 청나라까지 가서 세자를 보필하는데 이는 모두 길채의 마음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의도에서 시작된다. 이런 그의 사적인 마음은 의병과 길채 일행을 구하고, 병자호란을 끝내는데 큰 공을 세운다. 반면, 대의를 품은 연준 일행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다.
 
장현의 이런 모습들은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마음과 욕망들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돌아보면, 연준 역시 완전히 대의만을 위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8회 은애(이다인)와 다시 만난 연준이 "부모 잃은 나를 키워준 능군리 어른들께 내가 임금을 성군으로 만드는 훌륭한 사람이 되면 뿌듯해 할 것 아니냐"고 고백한다. 이는 그 역시 '대의'보다는 '인정'받고 싶은 사사로운 마음이 컸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세상은 개인의 마음을 바꾼다
 
반면, 사회 역시 한 개인의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길채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전쟁이 나기 전 길채는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며 무엇보다 연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활달하지만 새침한 양가집 규수였다. 그네에서 떨어지는 쇼를 벌여서라도 자신의 인기를 확인하고, 연준의 관심을 끌려 하는 그녀의 모습은 철없기만 했다.
 
하지만, 전쟁이 나고,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했을 때 길채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길채는 피난 중 만난 적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함께 피난 길에 오른 이들도 돌본다. 방두네(권소현)의 출산을 용기 내어 돕고, 아기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굴 밖으로 나간다. 은애가 겁탈당할 뻔 했을 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며 현실적인 판단으로 위로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에도 길채는 용기와 현실감각을 발휘한다. 대장간을 운영하며 가족을 궁핍에서 구해낸 그녀는 더이상 철없는 규수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 주체적인 한 사람이 된다. 나아가 이렇게 새롭게 발견하고 획득한 자신의 모습을 존중하며 더 이상 남자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다. 10회 원무(지승현)의 청혼에 길채는 당당히 이렇게 말한다.
 
"사내들은 제가 웃으면 상냥한 아내가 될 거라 여기고 제가 다정하면 조신한 며느리가 될 거라 짐작하죠. 지금은 잠시 앙큼해도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전 달라지지 않아요. 제 웃는 얼굴을 좋아하는 사내는 많아도 제 고약한 모습까지 좋아하는 사내는 없죠. 하지만, 나리. 전 제가 가진 것 중 이것은 가져가고 저것은 남겨둘 수 없답니다. "
 
이는 길채가 남자들에게 의존하려던 모습에서 벗어나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수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대사였다. 사회의 변화는 때로는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던 길채는 병자호란을 겪으며 스스로에게 당당한 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던 길채는 병자호란을 겪으며 스스로에게 당당한 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 MBC

   
그래서 지레 짐작하는 마음은 위험하다
 
이처럼 한 사람의 마음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영향을 받아 변해간다. 더구나 그 상호작용의 정도와 방향은 모두 다르다. 너무나 심오하고 다채로운 이런 마음의 면면들은 나 자신의 마음을 섣불리 단정 짓거나, 타인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장현과 길채는 세상과 크게 상호작용하며 하며 변해왔음에도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쉽게 단정 짓고 짐작해 버린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엇갈리기만 한 것은 바로 마음을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길채는 꿈에 나오는 운명의 남자가 연준이라고 단정짓고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시선과 마음이 장현에게 가 있음에도 '운명의 남자는 연준'이라는 생각에 갇혀 장현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무시한다. 그녀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한 후에야 '운명의 남자는 연준'이라는 생각의 틀에 의문을 달기 시작한다.
 
'내 꿈속 도련님은 반드시 연준 도련님이어야 했어. 근데 연준 도련님이 나 아닌 은애를 연모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그닥 슬프지 않아. 뭐가 사라진 걸까? 아니 내 마음에 무엇이 새로 돋아난 걸까?' (8회)
 
길채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은 그제서야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간극이 있음을 깨달았음을 의미했다. 길채는 이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반면 장현은 자기 자신의 마음은 잘 알아차렸지만, 길채의 마음을 지레 짐작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장현은 길채가 왜 연준을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는지 한 번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 슬쩍 길채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길채가 받아주지 않으면 떠나 버리기를 반복한다. 장현은 마침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10회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설명한다.
 
"날 기다리게 한 것은 낭자야. 무엇이든 손에 쥐면 시시한 여인이지. 낭자가 연준도령을 오래 품은 이유가 무엇인가. 잡히지 않는 사내여서였어. 나 역시 쉽게 잡히면 금방 시시할 거라 여겼어. 해서 결심했지. 낭자에게 잡히지 않는 사내가 되겠다고 말이야."
 
이는 장현이 길채의 마음을 완전히 오해한 채 지내왔음을 의미하는 대사였다. 타인의 마음을 짐작으로 판단하고 이를 '진실'이라 믿어 온 장현의 태도는 교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마음을 열린 시선으로 관찰하지 못한 길채와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 행동한 장현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장현과 길채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엇갈리는 운명 속에 놓인다.

장현과 길채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엇갈리는 운명 속에 놓인다. ⓒ MBC

 
<연인>의 인물들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어 간다. 사사로운 한 개인의 마음은 때로는 사회를 바꿀 만큼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반대로 사회의 영향을 받아 변해가고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 혹은 타인의 마음을 기존 관념의 틀에 끼워 맞추거나, 지레 짐작해 행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장현과 길채의 엇갈림은 이런 마음의 복잡함을 무시한 채 스스로와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아마도 장현과 길채는 고통스러운 이별을 통해 이런 마음의 실체를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곧 시작될 <연인> 2부에서는 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보다 세밀히 관찰하고 존중할 수 있을지, 세상을 바꿀 만큼 큰 마음의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해진다. 부디 1부에서의 교훈들이 헛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연인 남궁민 안은진 이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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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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