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러시아 소치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나는 그녀가 수치스런 협잡의 공범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소트니코바는 가해자이고 김연아는 피해자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안톤 오노가 금메달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동성이 편파판정의 억울한 피해자이며 오노는 자격 없는 공범자라 믿었다. 그리하여 피해는 고스란히 김동성이 보았고, 오노는 그로부터 크나큰 득을 보게 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꼭 그와 같은 것은 아니라고, 미처 모르는 새 내게도 그릇된 편견이 깃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편파는 밀어 떨어뜨린 이만이 아니라 감싸 이기게끔 한 이에게도 독이 될 수 있음을, 그로부터 마땅히 가져야 할 미덕, 이를테면 스포츠맨십이라거나 수고에 따른 정당한 대가라거나 오랜 고통 뒤에 얻어지는 성장의 기회를 앗아가고 만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한없이 가벼워만 보이던 영화 <카운트>가 내게 알린 것이 꼭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