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노단테의 '지옥'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인페르노>에서 상징을 해석하는 랭던(톰 행크스 분). 그의 이런 능력은 <본>시리즈 주인공 제이슨 본의 막강한 격투능력 못지 않게 매력적이다.
컬럼비아 픽처스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했고 영리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에 가끔은 감탄까지 했던 나로서는 단 한 줄도 동의할 수 없는 엉터리 평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오랜만에 등받이에 기댄 몸을 일으켜 양 주먹을 꼭 쥔 채 스크린에 빠져든 나를 발견한 영화였고 드물게 만나는 멋스러운 장치들도 엿보였다.
소설 원작이 지닌 장점, 그러니까 속도감과 몰입감도 충분했는데 이는 소설이 가진 치밀하고 다양한 장치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오히려 영화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소품과 이야깃거리를 섬세한 추리극의 핵심재료로 활용하기보다는 가볍게 보여주고 지나가는 눈요깃거리로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선택이 영화의 풍미를 더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그 표현방식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평론을 읽어 보면 꽤 많은 독자와 관객, 심지어는 평론가들조차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은 치밀한 설계와 다양한 소품, 충분한 대화를 한껏 활용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가능하지만, 극장 안에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전제로 펼쳐지는 영화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소설 속 대화 몇 마디를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십수 분이 훌쩍 지나가고 퀴즈 하나를 치밀하게 풀어내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원작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원작과 같은 매력을 독자에게 내보이는 것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속도감과 빨려들 듯한 몰입감, 적절한 낭만에 지적 자극까지 주었다면 론 하워드의 영화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와 같은 매력을 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소설 원작과 같은 방식을 선택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 작품을 아주 많이 알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원작과 같은 표현방식을 선택하는데 전력을 기울인 것들이었다.
<인페르노>와 <본 아이덴티티>는 데칼코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