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 다중우주는 디즈니에게 독이 든 성배였다. 지구를 초월하는, 또 지구수준의, 지역적인 영향력만 지닌, 그야말로 다양한 층위의 다채로운 캐릭터가 존재하는 마블 작품들을 하나의 세계관 아래 불러 모으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성장한 마블 캐릭터를 <어벤져스>로 한 데 모으고, 다시 규모를 거듭 키워가는 과정에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라 불리는 세계관을 조정하고 정립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관계를 정립하여 수많은 캐릭터를 한 세계관 아래 불러 모아야만 한 영화를 본 팬이 다른 영화까지 마저 챙겨보도록 하는 폐쇄적 연쇄고리가 작동될 수 있었던 때문이다.
<어벤져스> 시리즈로 2010년대 영화판을 주도한 디즈니는 <닥터 스트레인지>부터 멀티버스 세계관을 적극 반영해 실사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써 어벤져스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아가고,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캐릭터들이 공존하며, 사실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판타지적 소재가 적극 채택되기에 이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어벤져스>, <엑스맨>과 <판타스틱4>, 심지어는 <퍼니셔>와 <엘렉트라>, <고스트 라이더> 등까지 공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