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잡지로부터 재난 뒤 남겨진 동물의 삶을 다룬 글을 청탁받은 일이 있다. 온갖 자연현상으로 받는 타격을 뜻하는 재난을 인간사회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동물의 현실을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 그리하여 나는 여러 각도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한 편의 글을 지어 잡지에 보내었던 것이다.
한 편 글을 짓기까지 읽은 책이 여럿이었다. 그 중에는 사진집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 또 후쿠시마 일대 축산농가와 그들의 소가 겪은 비극을 다룬 르포 <소와 흙>이 있었으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그곳을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 만들어가는 이들을 다룬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도 있었다. 특히 앞의 두 편은 후쿠시마 일대 동물들의 삶에 집중한 저술로써, 재난 가운데 인간을 제한 동물들이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짓밟히는지를 생생히 일깨운다.
이 책들 가운데서 유독 충격적이었던 몇 장면이 있다. 방사능 누출 뒤 인간에게 철수령이 떨어지고 가축을 돌보던 이들이 죄다 빠져나간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서 갇힌 채로, 또 묶인 채로 굶어 죽은 가축이 얼마나 많았던지. 때때로 정 많은 활동가들이 일대에 잠입하여 축사 문을 부수어놓기도 했지마는, 풀려난 가축이라고 안전하게 살아가지는 못하였던 일이다. 특히 많은 수는 도시에 사는 우리네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죽음을 맞았는데, 다름아닌 수로에 빠져 굶어죽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