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에픽하이(왼쪽부터 미쓰라 진, 타블로, 투컷)의 20주년 콘서트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아워즈
나는 '에픽하이 키즈'다. 학창 시절에는 에픽하이로부터 힙합을 배웠다. 사춘기의 셀 수 없는 밤을 그들의 노래로 위로받았다. 에픽하이의 문학적인 가사를 달달 외우며 중학생 시절의 문화적 허영심도 충전했다.
나이가 조금 들고 나서는 그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에 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에픽하이는 자신들의 커리어를 주가의 등락에 비유했다. 타블로의 멘트를 빌리자면, 나는 그들의 '가장 O 같은 순간'과 다시 화려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렇게 20여 년의 시간 동안 에픽하이와 동시대를 함께 했다.
지난 12월 15일부터 17일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에픽하이의 20주년 콘서트가 열렸다. 20주년이라는 상징성에 맞게, 전광판에는 에픽하이가 지금까지 발표한 열 장의 정규 앨범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명반 4집 < Remapping The Human Soul > (2007)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백야'의 비트가 둥둥거렸다.
"알기도 전에 느낀 고독이란 단어의 뜻, 세상은 쉽게 변해 매 순간이 과거의 끝..."
- '백야' 중
공중에 떠 있는 무대에서 타블로가 랩을 하면서 등장했다. 이윽고 관중석 앞 무대에서 배턴을 이어받은 미쓰라는 2005년 발표곡인 'Lesson 3'를 부르며 등장했다. 관객들은 잊고 지냈던 옛 명곡 앞에 열광했다. 그리고 이어진 'Fan'을 비롯해 'Fly',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연애소설', 'One' 등 모두를 아우르는 히트곡도 빠지지 않았다.
팬들은 추억을 자극하는 옛 명곡들에 열광했다. 'Map The Soul', '연필깎이' 같은 곡이 울려 퍼질 때는 그들의 앨범을 CDP로 듣던 10대의 어느 밤으로 돌아간 듯했다. 에픽하이의 출사표였던 'Go'(2003), 그리고 에픽하이의 20년 역사를 노래하는 'Prequel'(2022)를 섞은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찬란한 현재와 미숙한 과거가 절묘하게 조우했다.
화려한 게스트 군단 역시 눈을 모았다. 15일에는 다이나믹 듀오와 하동균, 16일에는 넬과 싸이가 등장했다. 17일에는 성시경, 그리고 '에픽하이 제 4의 멤버'로 불리는 윤하가 가세했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 윤하는 공연 후반부에 '우산'을 부르러 다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윤하와 에픽하이의 오랜 우정처럼, 에픽하이의 팬덤 '하이 스쿨'도 윤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세 시간의 공연에서 빛난 것은 베테랑의 노련함이다. 개그맨처럼 익살스러운 멘트도 붕 뜨지 않고 셋 리스트(선곡표)에 녹아 들었다. 본 무대부터 플로어, 2층까지 공연장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는 연출도 훌륭했다. 물론 세 남자가 빚어내는 호흡과 라이브 실력 역시 흠이 없었다. 여러 곡을 소화한 상태에서도 'New Beautiful'을 부르면서 전력 질주하기도 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공연 경험이 쌓은 공력이다.
진지한 음악 색깔과는 별개로, 에픽하이는 공연 내내 특유의 유쾌한 태도를 고수했다. 무대 여러 곳을 오가며 관객과 소통했다. 투컷이 영화 <바비>의 켄(라이언 고슬링 분)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영상, 공익 광고를 연상하게 하는 영상으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윽고 이어진 노래는 슬픈 랩 발라드 '1분 1초'였다.)
공연에 앞서 화제가 된 에픽하이의 첫 응원봉 '박규봉' 역시 공연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중앙 통제에 따라 수천 개의 박규봉이 곡에 맞춰 반짝거렸다. 팬들이 아티스트를 향해 단체로 욕설을 내뱉는 듯한, 독특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 장면이 하이 스쿨과 에픽하이의 독특한 유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20년 동안 바뀐 것, 바뀌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