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냥 엎드려 당할 전두광이 아니다. 그는 친구인 노태건을 비롯해 하나회 소속 군인들을 모아 제 계획을 전한다. 정상호를 납치해 김동규와의 연루 혐의를 뒤집어 씌울 수만 있다면 군에서 하나회에 저항할 이는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제라면 대통령의 재가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경우 하극상을 넘어 반란이 된다는 것, 꺼려하는 이들을 한편으론 다독이고 한편으론 윽박질러가면서 전두광은 반란을 모의한다.
사전에 반란모의를 알지 못했으나 정상호에게도 수는 있었다. 하나회와 척을 지고 있는 강직한 군인들을 필요한 자리에 배치했던 것이다. 서울을 방위하는 수도경비사령관에 이태신(정우성 분)을 임명한 것도 그중 하나다. 12.12 군사반란에 맞선 장태완 사령관을 모델로 한 인물로, 영화 속 반란군을 저지하기 위해 그야말로 동분서주한다.
영화는 역사 속 사실을 거의 그대로 따라 밟는다. 반란을 모의한 전두광이 연회를 빙자하여 참모총장 계열로 분류되는 수도방위 요직 장성들을 요정으로 유인해 붙들어 놓는 것부터, 정상호를 납치한 뒤 최한규 대통령(정동환 분)에게 재가를 받으려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것, 반란사실이 알려지고 육군본부 수뇌들이 B2벙커에 모여 진압군을 결성한 것, 진압군이 반란군의 계략에 그대로 속아 대세가 기울고 홀로 남은 이태신이 끝까지 저항하려 드는 것 등이 모두 그렇다.
이태신이 단신으로 행주대교를 건너오는 반란군 측 2공수여단을 가로막는 장면처럼 일부 극화된 대목이 없지 않지만, 이야기의 중추는 어디까지나 고증된 사실 그대로를 따라간다.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해선 MBC가 1995년 제작한 <제4공화국>과 2005년의 <제5공화국>이 당시 상황을 충실히 그린 바 있고, <서울의 봄> 역시 큰 틀에서 그를 벗어나지 않는다. 위 드라마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라면 거칠고 괄괄한 성격으로 알려진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이미지가 겹치는 전두광 배역과 대비하고자 조용하고 묵묵한 성품의 이태신으로 빚은 정도랄까.
비겁과 무력은 나라를 좀먹는다
아무튼 영화는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이 반란군에게 무참하게 패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재구성한다. 사전에 모의하여 일시에 참모총장을 납치한다는 이들의 계획은 그 시작부터 막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하나회가 수도권 인근에서 대규모 병력 동원이 가능한 군단이며 사단을 장악하고 있었고, 보안사를 통해 통신망을 감청하며, 청와대 경호실까지 마음대로 움직이는 판에 손쓸 도리가 없이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이 감금되어 버렸다.
이태신 소장이 나서 어떻게든 일을 수습하고 반란을 진압하려 하지만 동원가능한 부대 대부분이 하나회에게 장악돼 있어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다. 뿐인가. 대장이 하나회가 아니더라도 휘하 장교가 하나회인 경우가 적잖고, 진압에 대한 항명 또한 줄을 이어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태신이 전화로 실권을 가진 장군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담아내지만, 이 모든 통화가 감청돼 반란군 측에게 사전에 차단되는 과정 또한 그려낸다.
<서울의 봄>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건 영화 속 '똥별'로 지칭되는 대다수 장성들의 무력함이다. 누구보다 군의 생리며 전략전술을 잘 이해하고 조국수호에 앞장서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이들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사태가 벌어지자 대부분은 우왕좌왕할 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B2 벙커에서 진압군을 결성하고도 적극적인 초기대응은커녕 상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결정만을 반복한다.
오국상 국방부 장관(김의성 분)은 또 어떤가.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의 상관은 오로지 두 사람뿐, 하나가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가 국방부 장관이 아닌가. 반란을 합법으로 만들겠다는 반란군의 계획은 전두광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하며 틀어지게 된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던 최한규는 전두광의 말만으로는 재가해줄 수가 없다며 국방부 장관의 동의를 얻어오라 하는데 그가 어디 숨었는지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자의 외로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