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 코앞에 오류시장이 있다. 한 때는 200여 곳의 점포와 이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 시장은 흉물처럼 방치된 지 십 수 년이 지났다. 문을 연 가게보다 닫은 점포가 훨씬 많고, 시장 거리엔 오가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정비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온갖 잡음 끝에 번번이 좌절됐고 적잖은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는 상인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지난 7월 서울시는 시장정비사업심의위원회를 열고 오류시장 위치에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현대화하겠다는 안을 가결했다. 구로구는 기다렸다는 듯 자료를 내고 노후화된 시설을 현대화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모두 괜찮은 걸까.
 
최종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류시장>은 뉴스가 담지 못한 오류시장의 진짜 이야기를 전한다. 1968년 출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곳에 터를 잡고 버텨온 상인들과 그곳에서 삶을 지켜온 주민들을 만나 그 속내를 듣는 것이 시작이다. 시와 구, 언론이 살피지 못한, 또 자본과 개발의 논리가 짓밟고 있는 귀한 얘기를 담는다.

65분의 짤막한 다큐 한 편은 구로구의 몰락한 재래시장의 역사일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온 개발의 폐해를 지적하는 언론의 역할을 외로이 수행한다. 그로부터 대체 한국의 수많은 언론이 어째서 이를 살피지 않는가를, 별 시덥지 않은 문제들에 날파리처럼 달라붙으면서도 사람들이 가까이 얽혀 있는 이와 같은 문제는 왜 다루지 않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류시장 스틸컷
오류시장스틸컷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떡집장사 40년, 누가 이 부부를 거리로 내몰았나
 
영화는 오류시장에서 여전히 영업 중인 점포 16곳 중 하나를 중심으로 한다. 셔터 내려진 가게들과 깜깜한 골목은 전등 한둘로는 밝혀지지 않는다. 어둑한 시장 골목으로 오가려는 사람들도 없어 남은 가게들은 점점 장사가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거래해온 단골들만 찾는 이 시장 가운데서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는 떡집 하나가 있다. 김영동, 서효숙 부부는 한 자리에서 성원떡집을 40년 동안 운영해왔다. 매일 새벽같이 나와 장사를 준비하는 이들 부부에겐 장사 외에도 또 다른 일거리가 있는데, 다름 아닌 시장을 지키는 일이다.
 
그 뿌리가 벌써 십 수 년이나 된 싸움으로, 상대는 이 시장을 개발하겠다는 이들이다. 이중 큰 지분을 이어받아 제 권리를 주장하는 개발업체 신산디앤아이(이하 신산)가 있다. 2011년 나타난 신산은 몇몇 상인들을 명도소송으로 쫓아내고 2016년부터는 시장 자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다. 어마어마한 수익이 따를 개발 사업이다. 지자체는 반대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남은 상인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평생을 한 자리에서 쉴 새 없이 일해 온 이들이다. 떠난 이들은 떠났고, 남은 이들만 남았다. 200여 곳 중에서 16곳뿐이다. 이리 될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상인들을 하나로 뭉쳐야 했을 테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하나로 똘똘 뭉쳐서 위기를 버텨낸 다른 재래시장의 모습들이 이들은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라도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은 상인들이 하나로 뭉쳐서는 업체의 계획을 막아선다. 평생을 지킨 상인들이 개발에서 소외되선 안 되는 일이다.
 
서울시의 시장정비사업엔 규정이 있다. 땅을 많이 갖든 적게 갖든 지분 소유자 총수의 60% 이상이 사업에 동의해야만 한다. 신산은 시장 지분의 80% 이상을 가졌지만 소유자 숫자로는 동의율을 채울 수 없다. 여기서 '지분 쪼개기' 꼼수가 등장한다. 지분을 여러 사람 이름으로 나누어서 동의자 수를 늘리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를 쟁점으로 상인들과 신산이 첨예하게 맞선다.
 
오류시장 스틸컷
오류시장스틸컷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떠나가는 상인들, 외면하는 지자체
 
황당한 것은 지자체가 업체의 손을 들어주고 나섰다는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공무원이며 의원들의 발언은 문제에 이해관계가 없는 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의 입장을 듣지는 않고 법대로 하라는 식이다.
 
2년 간 이어온 재판은 상인들의 승리로 끝난다. 법원은 지분 쪼개기의 문제를 인정해 사업을 무효화한다. 기쁨도 잠시, 사업 승인 취소 공고가 나온 지 나흘 만에 신산은 다시 시장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취임한 문헌일 구청장은 공약을 뒤집고 공공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달라진 건 무엇도 없다.
 
영화 속 떡집 아줌마 서효숙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 곁에는 한 청년이 나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서효숙이 감독에게 말한다. 한때 자기는 저런 사람들은 힘들게 왜 나와서 저런 일을 하나 했다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할 것이지 하고 말이다. 그랬던 그녀가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든다. 사람 앞에 서길 두려워하고 낯설어 하던 그녀가 말이다.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가 땅 위에 뿌리내리고 오래 살아왔던 이들을 위협한다. 한 순간 실수로 밀려나는 이들이 있고 간신히 제 자리를 지켜내는 이들이 있다. 지켜낸 이들은 좀처럼 밀려나는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밀려나는 이들 중 다수는 밀려날 뿐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싸우는 이들은 더 큰 피해를 입기 일쑤다. 사람들의 자리가, 또 공공의 영역이 하나씩 사라지는 동안 책임 있는 이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물러서고만 있다. 공직자가, 언론이 그렇다.
 
오류시장 스틸컷
오류시장스틸컷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굴하지 않는, 굴할 수 없는
 
보는 이에게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전하기엔 다큐 곳곳에서 투박함이 묻어나는 게 사실이다. 오류시장을 넘어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로 나아가려는 의지 또한 잘 읽히지 않는다. 주요한 몇몇 인물을 제외하곤 시장의 다른 상인들의 목소리도 생생히 들려오지 않는다. 영화 속 구로FM과 마을방송이 이 다큐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큐는 결국 해내야 할 것을 어느 정도는 해내고 있다. 오류시장 개발사업의 진면목을 내보이고, 그곳에서 희생되었고 또 희생될 수 있는 것의 표정을 담아내는 일이다. 다큐와 카메라의 본령이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본 뒤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영화를 만들며 든 생각을 물었다. 다음은 최종호 감독의 변이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류시장을 만나온 시간동안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반응이기도 한데요. 성원떡집을 비롯한 오류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을 만나며 그 어쩔 수 없음에 굴하지 않는, 굴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그것이 현실에 순응하는 흐름 못지 않게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이 시간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감독은 어쩔 수 없음에 굴하지 않는, 굴할 수 없는 마음을 배웠다고 말한다. 가끔은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전해지는 귀한 마음과 만난다. 감독이 영화로써 다른 이들과 나누려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마음이었을 테다. <주역> '계사전'은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는다고 했다. <춘추>는 여러 사람의 마음이면 성도 쌓는다고 했다. 쇠처럼 강한 위협 앞에서 기댈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듯한 위기 속에서 옛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라고 하였다. 쇠도 끊고 성도 쌓는 그 마음을.

조만간 성원떡집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세상에 어느 귀한 것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았다.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위안이 있기를 바라며.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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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류시장 최종호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다큐멘터리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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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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