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걸려왔다. 약속을 미루자는 이야기다. 몇 주 전부터 잡아둔 약속이었다. 보름에 걸친 여행을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 약속 때문에라도 막 귀국한 참이었다. 그럼에도 약속을 미루자는 게 어딘지 기꺼웠다. 그에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또 그 바쁨이 얼마나 반가운 것인지를 충분히 짐작하였기 때문이다.
조성현 PD가 다큐에 막 착수하던 때, 또 한창 제작에 들어가 있던 시기, 나는 몇 차례쯤 그와 만난 일이 있다. 나는 기자로, 그는 PD로 같은 주제를 다룬 적이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간 서로를 인정하게 된 참이었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책을 내었고 그는 다큐를 찍었으니 서로의 결과물을 어떻게 보았는지도 관심이 있던 터였다. 출국 전 그가 보내온 예고편만 보고도 제법 기대가 되었으나 솔직히 지금과 같은 파급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