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5일, 27일, 28일에 걸쳐 내한 공연을 펼친 뮤지션 노엘 갤러거
지난 11월 25일, 27일, 28일에 걸쳐 내한 공연을 펼친 뮤지션 노엘 갤러거노엘 갤러거 공식 SNS
 
영하의 날씨가 서울을 강타한 지난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은 수천 명이 빚어내는 온기 덕분에 따뜻했다.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이하 노엘 갤러거)의 내한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때문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Oasis)의 리더 겸 기타리스트다. 특히 노엘 갤러거는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 'Live Forever', 'Supersonic', 'Champagne Supernova' 등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명곡을 모두 직접 만든 명 작곡가다.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 경은 그를 두고 '그의 세대 최고의 작곡가'라며 엄지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오아시스는 1994년 데뷔 이후 형 노엘 갤러거와 동생 리암 갤러거의 극심한 대립으로 2009년 해체했지만, 오아시스의 생명력은 끝나지 않았다. 티켓 판매 역시 이를 증명했다. 노엘 갤러거는 지난 25일, 2천명 규모의 소규모 공연장인 명화라이브홀에서 팬들을 먼저 만났고 27, 28일 양일간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약 16,000명 이상의 관객을 만났다.

뜨거운 함성 가운데, 가죽 재킷을 입은 노엘 갤러거와 밴드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오아시스의 멤버였던 겜 아쳐 역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 FC'의 오랜 팬답게, 구단의 감독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형상화한 등신대 역시 무대에 함께 올랐다.

노엘 갤러거는 오아시스 해체 후 솔로 활동에 돌입하면서 싸이키델릭, 디스코, 포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록이라는 골격은 단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공연 역시 예상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다. 첫 곡 'Pretty Boy'를 시작으로, 신보 의 수록곡을 비롯한 '하이 플라잉 버즈'의 최신곡을 연주했다.

 'Dead In The Water', 'If I had a gun' 등 잔잔한 노래가 울려 퍼질 땐 사방에서 휴대폰 플래쉬라이트가 켜졌다.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아느냐"며 관객들에게 너스레를 떨던 노엘은 후반부에는 'The Masterplan', 'Little By Little' 등 오아시스 시절을 대표하는 명곡을 선사했다. 공연의 문을 닫은 것 역시 록 음악의 송가로 기록된 'Live Forever'와' 'Don't Look Back In Anger'였다. 추억 속 명곡들의 힘은 가공할만했다.  8천명의 관객은 5만 관객 부럽지 않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이 공연에 온 관객의 절대 다수는 노엘의 솔로 프로젝트인 '하이 플라잉 버즈'의 팬이 아니라 '오아시스'의 팬일 것이다. 1990년대 밴드 오아시스에 열광하는 팬들은 대부분 젊었다. 판매처인 인터파크 통계에 따르면 관객의 절대 다수는 2030 세대였다. (20대 56.4%, 30대 23.3%)  교복을 입은 청소년 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공연에 앞서 플랜카드 이벤트를 준비하고, 'Half The World Away'에 맞춰 일제히 박수를 치는 모습은 아이돌 팬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객들이 앵콜을 재촉하면서 오아시스의 명곡 'Wonderwall'을 무반주로 부르는 장관도 연출되었다.

오아시스에 열광하는 MZ세대
 
 지난 11월 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노엘 갤러거 내한 공연
지난 11월 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노엘 갤러거 내한 공연이현파(본인 촬영)
 
1967년생인 노엘 갤러거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움푹 파인 주름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많이 느껴졌다. 오아시스의 해체는 어느덧 14년 전의 일이며, 그들의 전성기는 1990년대에 끝났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록에 입문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관문은 오아시스의 쉽고 편안한 멜로디다. 1990년대 청춘의 밤을 수놓았던 오아시스의 노래는 Z세대 음악팬의 교과서가 되고, 새로운 추억을 낳으며, 삶의 동반자가 된다. 명곡 'Live Forever'에 담긴 긍정의 태도 역시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지난해와 올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록의 새로운 생명력을 보았다. 록의 시대를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록팬이 계속 신에 유입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엘 갤러거 같은 아티스트의 존재는 소중하다. 노엘 갤러거는 끊임없이 좋은 멜로디를 빚어내고 있는 장인이자, 록의 마지막 전성기를 알려줄 수 있는 친절한 증인이다.

노엘 갤러거는 과거 캐나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팬들을 언급하면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젊은 비영어권 국가 팬들에게 내 노래가 큰 의미로 와닿을 줄 알았다면, 나는 곡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받는 박수의 무게를 알았다. 전성기였던 1990년대, 노엘 갤러거는 무대에서나, 기자에게나 오만한 독설가였다. 그러나 이날 그는 젊고 어린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따스한 자세로 임했다.

노엘 갤러거는 "사랑한다"는 관객의 외침에 "내가 더"라고 응수하고, 한 팬의 생일을 축하했다. 관객들이 전한 선물과 크리스마스 카드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가까운 날에 만나자"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위층의 관객들을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마지막 곡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부르기 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 역시 보냈다.

세월이 독설가를 더 뭉툭하게 만든 것일까? 그건 다음에 만났을 때 생각해보아야겠다. 노엘 갤러거는 머지않아 다시 한국 팬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팬들은 목이 터져라 'So sally can wait'이라는, 애매모호한 노랫말을 외칠 것이다.

"My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내 영혼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화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아요.
당신의 그 말을 들었어요.)
- 'Don't Look Back In Anger(오아시스) 중'
노엘갤러거 오아시스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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