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피닉스(Phoenix)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부산에서 만난 '멋진 아저씨'는 피닉스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오지상(아저씨) 밴드'라고 소개한 일본 펑크 밴드 10-FEET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제가 '第ゼロ感(제제로감)'을 두 번이나 부르며 관객을 광란으로 인도했다.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하고, 한국어 멘트 역시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농구 좋아하세요?', '그래 나는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등 슬램덩크의 한국판 명대사를 외치는가 하면, '부산 아이가', '롯데 자이언츠 최고'라며 부산 주민과의 거리를 좁히기도 했다.
10-FEET가 공연을 펼치는 동시간대, 아시안게임 축구 한일전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행사장에서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밴드가 '대-한민국'을 연호하면, 한국 관객이 손뼉을 치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한일 양국의 국제적 관계와 별개로, 음악을 매개로 한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해 보였다.
국내 밴드의 자존심인 넬은 록적인 선곡으로 무장했다. 히트곡 '기억을 걷는 시간'과 'Stay'를 초반에 몰아서 부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선곡한 노래 중 90퍼센트를 강력한 음압의 록 넘버로 채웠다. 부슬비 속에서 울려 퍼진 '기생충'과 'Promise Me'는 올드 팬들을 열광시켰다. 지난해 넬이 겪은 음향 사고의 아쉬움을 씻기에 충분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리버 스테이지'에는 데이식스의 영케이, FT 아일랜드 아이돌 출신의 밴드 뮤지션이 여럿 출연했다. FT 아일랜드의 보컬 이홍기는 '17년 동안 짓밟힌 끝에 여기에 왔다'며 아이돌 밴드로서 겪어온 편견을 토로했다. '록'을 지향하는 이들의 인정 투쟁은 성공적이었다. '바래'를 제외하면 '사랑앓이' 등의 옛 히트곡은 하나도 부르지 않았다. 'PRAY' 등 거친 록 넘버를 연주하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변화를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들이 새로 걷는 길도 존중해야 한다.
다음 세대 주자의 시작 단계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페스티벌의 미덕이다. 최근 EP <이상비행>을 발표한 한로로는 많은 청중의 수에 들떠 하면서도, 당차게 자신의 세계를 드러냈다. 이외에도 스킵잭, 카디, 터치드 등 최근 1~2년 동안 이름을 알린 밴드들이 뜨거운 호응을 이끌었다. 실리카겔과 새소년 역시 여유롭게 차세대 헤드라이너의 자격을 입증했다.
'부산 락페'가 남긴 것